시작은 <에보니>였다. 동생이 추천한 웹소설.
표지만 봐서는 내 취향인지 뭔지 잘 모르겠고.... 그러다가 갈급하게 달렸다.
약혼자를 죽인 혐의로 감옥에 갇힌 에보니. 가혹행위에 노출된 아가씨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매력적인 여주인공은 진짜 오랜만이라고 환호했다.
사랑도, 일도, 우정도 모두 주체적 인간. 모르는 것,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뭐든 애쓰는 주인공.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자야' 작가님의 작품을 골라보기 시작했다.
<여왕님 안돼요>는 살짝 아쉬웠지만, 4명의 후궁을 두는 여왕님 설정부터 웃겨서리. 그럭저럭 달리다가.. 자야 작가님 다른 작품 만난게 <마론후작>. 와, 날마다 결제했다ㅠ
희대의 악녀, 혹은 마녀라 알려졌지만, 사실 내 새끼 잘 챙기는, 그러다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그런데 일상엔 게으른 여자. 은근슬쩍, 혹은 노골적으로 개그 캐릭터다. 로판(로맨스판타지)에서 드물지 않은 역하렘물(여주인공 주변에 남자가 남자가...). 세계관이 무척 거창해지는 바람에 능력자 마론후작에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남주들 뿐 아니라 요정 도라지와 허브에서 마법 나무로 거듭난 로즈마리까지 조연들도 러블리.
그러나 자야 작가님 작품 중 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나쁜 시녀들>이었다. 율리아, 코코, 알렉사 세 여자는 단순히 뒷방 왕자 레위시아를 성군으로 키우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녀들은 세상을 뒤집는다. 율리아는 9번째 회귀한 인물인데, 죽지 못하는 회귀가 얼마나 불행한지, 회빙환 물이 판치는 마당에서 또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로판 트렌드이기도 한데, 자야 작가님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몇 가지.
- 그녀들은 머리가 좋다. 난국을 헤쳐나가는 똑똑함, 세상을 읽는 현명함을 갖고 있다. 거기에 죽도록 노력해서 뭐든 배운다.
- 그녀들은 독특하게 예쁘다. 전형적 미녀라기보다 대부분 눈빛이 깊거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살릴 줄 안다.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 자존감이 매력의 아우라를 만든다.
- 그녀들은 신분에 구애받지 않는다. 특히 조연 중에 유흥가에서 웃음을 팔든, 누군가의 정부이자 영민한 조언자가 되든 자유로운 영혼들이 있다. 신분에 대한 전복적 사고가 아무렇지도 않다.
- 그녀들은 사랑에 매달리지 않는다. 사랑에 헌신하는 것과 별개로 일과 우정 등 뭔가 스스로 해내는 성취에 은근 혹은 크게 기뻐한다. 물론 사랑도 해피엔딩인데, 남주들이 한결같이 너무 너무 너무 잘한다.
- 그녀들은 연대한다. 세상에 변화를 만들기 위해, 큰 꿈을 품은 대장부들이다.
- 그녀들은 자수성가에 성공한다. 여왕님조차 여자의 지배에 못마땅한 기득권 귀족들을 쳐바른다.
가부장 유교월드의 잔재가 남은 현실세계 대신 요즘 여자들이 SF 좋아한다더니. 판타지가 괜히 나오겠나. 우리의 의지가 투영된거지.
어느 댓글 보니, 자야님 아직 대학생인 거 같은데, 자야 월드를 만들어주셔서 감사. 크게 될 인물이라 믿습니다요.
자야 작가님 작품 중 안 본 마지막.. <악녀들을 위한 안내서>도 시작한 것은 안 비밀... 이제 더 작품이 없어서.. 아껴봐야 하는데ㅠ
그리고, 작품이 맘에 들어 그 작가님 다른 작품을 본게 하나 더 있으니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악역 황녀님은 과자집에서 살고 싶어>. 프리드리히 작가님.
제목이 도무지 끌리지 않는, 뭥미? 분위기인데.. 세상에.
내가 무협과 로판 세계를 꽤나 달렸지만, 악역 하나 없이 선한 기운으로만 내달리는 작품은 본 적 없다. 악역 없어도 스토리가 이어지고, 억지를 부리지 않아도 매끄럽고, 서로서로 마음을 다해 아껴주고, 세상 만물을 소중히 여기면 말이지... 예쁘다.
악역 황녀님은 베이킹 천재인데.. 진짜 디저트 만드는거 배우고 싶어지는게 함정.
바쁜 와중에 웹소설만 덜 봤어도.. 싶지만, 이 작품들이 내게 준 기쁨과 즐거움을 깍아내릴 수 없다. 자야 작가님, 프리드리히 작가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