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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산책

종묘, 신줏단지 모신 영혼의 사당에서

by 마냐 정혜승

"비상계엄 이후 모든 고비마다 인생 역대급 똥바가지를 뒤집어 쓴 느낌이야. 살면서 이런 모욕은 당해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어.

내가 견결한 민주주의자, 평등주의자라 분개하는게 아니야. 저들이 우리를 모두 개돼지로 보잖아. 모욕을 주기 위해 저들이 저러는구나 싶어. 한덕수가 그 둘과 함께 마은혁 재판관 임명하는 건, 니네 이거나 먹어라 개뼈다귀 던져주는 거였고, 생중계로 대법원 난리 끝에 한덕수 출마회견? 이런 패키지를 준비했다고?"


봄나들이 나선 우리 대화의 시작은 이랬다. 덩달아 깨닫는다. 아.. 그 모욕을 견디느라 겨울이 그리 힘들었구나. 지들만 잘난 엘리트(라고 쓰고 이젠 쓰레기라 읽는다)들이 시민을 개돼지로 아니까, 저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구나...


나름 산책 포스팅 시작이 이 모양인건, 그러려니. 시대가 나를 고장낸 탓이리. 무튼

종로3가와 4가 사이, 종묘는 신비한 정원으로 첫인상을 남긴다. 그런데 곧바로 신로神路? 신의 길이 시작된다. 종묘(宗廟), 조선 왕들의 혼을 모신 사당이 일반 공원과 같을 수는 없지.

도심에서 보기 어려운 울창한 정원이 이어지지만 이건 종묘의 작은 조각. 여기서 차담회를 가진 김건희.. 음.


종묘는 신주(神主)를 모신 곳이다. 보수 공사로 4년 전 창덕궁에 옮겨졌던 종묘의 신주가 지난달 종묘 정전으로 복귀했다는 얘기를 L언니가 하던 중..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보세요"라고 지나가던 어떤 남자분이 말을 걸었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를 흘려 듣기에는 어딘지 아쉬우셨던 모양. 무식한 나는 신주가 뭐냐는 질문부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주(神主), 신줏단지 모신다는 말 들어보셨죠? 영혼을 모시는 함이어요. 영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좌우 위아래 구멍을 내는데 그게 사통팔달이죠. 종묘에는 왕과 왕비들 신주가 있어요. 태조 이성계 4대조까지 처음 모시면서 만들어졌고, 이후 모실 분들이 늘어나면서 계속 증축했죠. 종묘사직이란 말이 있잖아요? 경복궁 양 옆으로 좌종묘 우사직."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데, 왕이 하늘이죠. 왕의 옷엔 둥근 문양이 있고, 신하의 옷에는 네모난 문양이 있잖아요? 네모난 땅인데 안에 나무를 심으면 어려울 곤(困)이 됩니다. 그래서 궁의 네모 안에는 나무가 없어요. 뒷편에 후원을 만들죠. 종묘 정전 앞쪽 나무들요? 수령 오래된 거 아닙니다. 그나마 전쟁통에 다 땔감으로 쓰고 이후 다시 심은 거여요."


이분 뭐지? 우리의 온갖 질문에 청산유수 설명이 이어졌다.

"저기 문을 보면 아랫쪽에 살짝 뒤틀려 벌어졌어요. 혼이 드나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이번에 보수공사 하면서 7만장 기와도 다 손으로 만든 걸로 바꿨어요. 동쪽 문으로 들어오셨다고요? 원래 왕도 그 문으로 들어왔어요. 정문은 신로를 따라 혼이 들어오는 길이니까요. 옛날 종묘대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지냈어요. (지금은 5월 첫 일요일에..)

"우리나라는 기록의 나라여요. 남아있는 옛날 기록 중에 우리가 해석한 건 아직 18% 정도 밖에 안됩니다. 좋은 일이죠. 앞으로 할 일들이 있다는 거니까"

창덕궁 건너가시는 길에 가르침을 베풀어주신 고고학자 교수님. 감사합니다!!

언뜻 보니 후원 나무들이 좀 더 키가 큰 듯도 하고.

태조의 4대조 신주를 모셨다는 영녕전.

종묘는 창경궁, 창덕궁과 이어진다. 서울대병원 특실 뷰가 궁이란다.

김금희 작가님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본 독자로서 무척 반가웠던 대온실.


중국에서 들여왔다는 백송도 특이하게 아름답다.

멀리 보이는 남산 타워.


순라길 시작하는 입구에 '개성'. 남양주 본점은 허영만쌤 백반기행에 소개된 집이라고. 개성식 만둣국 '편수', 국물 한 숟가락 맛보는 순간 이 집을 고르길 잘했다 크게 안도. 국물도 만두도 고명 쇠고기도 각자 훌륭하고 서로 조화롭다. 제육도 부드러운데 찍어먹는 양념장이 슴슴간간 맛있네..메뉴 달랑 두개인데 그 두 가지 다 흡족했다.


옥상에서 차 한잔 하면서 익선동 구경. 지붕 위의 고양이라니.


기록용이니까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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