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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특별전에 빠져든 이유

by 마냐 정혜승

모처럼 아름다움에 고양된 날... 늦은밤 좋은 기억을 정리하다가..빡치는 바람에 마무리를 못했다. 대충 남겨본다. 겸재 정선 전시, 꼭 가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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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 가고 싶어졌다. 겸재 정선은 금강산 전도사다. 그의 그림을 보면 금강산에 빠져든다. 일만이천봉이라더니, 기기묘묘 봉우리들이 웅장하다. 그중에서도 홀로 우뚝 솟은 비로봉은 아찔하다. ’금강전도‘는 이병철 선대 삼성 회장이 해방 직후 구입했다는데 재벌의 돈질이 이쯤되면 고맙지. 약 300년 전 거장의 그림들을 모으고 보관한 이들의 노력이 다 고맙지.


겸재 정선은 근면성실했다. 호암미술관 특별전에만 무려 164점이 전시됐다. 덕분에 후손이 다채롭게 눈호강한다. 하룻밤에 그린 그림도 있다지만 금강산만 해도 몇 작품을 남긴건가. 이리보고 저리보고 가까이 보고 멀리 보고. 이 느낌을 디지털로 구현한 화폭 영상에도 감탄했다.

겸재 정선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했다. 유람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림으로 위로했고, 유람할 이에겐 안내자가 됐다. 명승지 화첩이 몇이더냐. 관동명승첩, 장동팔경첩.. 그 시절 그의 화첩을 구경할 수 있는 건 특별한 호사였을터. 후손은 그저 눈이 즐겁다.


깨알처럼 작은 인물들이 그림마다 있다. 산천을 유람하는 이들이다. 나귀를 탄 주인과 시종이 자주 나온다. 본인일까 친구일까. 고개를 거의 180도 돌리다시피 절경을 쳐다보는 선비 좀 보소. 돋보기를 꺼내고 싶어지는 세밀함이 경이롭다. 힘차게 생동하는 필체도 그저 감탄.. (악필은 그저 울지요..)

그림 속 인물들이 모조리 남자란 것도 놀랍다. 산속 절경에서 여유를 만끽하고 뱃놀이를 즐기는 것은 다 남자다. 거문고 싸들고 폭포 앞에서 옷자락 풀어헤친 그림도 당연히 남자다. 그 시절 금강산 유람에 나선 능력자는 어떤 이들이었는지 궁금하지만, 그중에 여자도 있었을까? 그들은 얼마나 대단한 이들이었을까?

겸재 정선은 우정도 아름답다. 양천구청장 같은 양천현령 시절 정선은 친구 이병연과 그림과 시를 나눴다. 서로 영감을 나누는 우정이라니 삶과 예술의 콜라보다. 서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은 다섯살 나이 차이 상관없이 삶의 빛나는 순간을 나눴다. 중년 아재들이 그리 교유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창작 외엔 인생 뭐 없다는 선배 말씀도 떠오르고. (그 유명한 인왕제색도가 병석의 이병연을 지키며 70대의 정선이 그렸구나..)


세밀화도 경이로웠다

호암미술관의 정원 ’희원‘은 역시 짧게 즐기기엔 아깝다. 작약이 한창이었다. 한때 회장님의 정원은 구석구석 돈들인 티가 우아해서, 후대에 공개해줘 고맙다.

10시에 도착해 희원까지 보려면 점심이 늦어진다. 도시락이라도 준비하고 희원을 더 즐겼어야.. #삼미당막국수 1시반에도 대기 쫌 있지만 투박하고 구수한 메밀 좋고 편육도 살살 녹는다.

#마냐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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