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출구는 안에 있다.
그들이 아니다. 당신이다
그곳이 아니다. 여기다.
그때가 아니다. 지금이다“
- 레너드 제이콥슨 ‘고요한 현존’, - 바라나시책골목 입구 칠판에서 인용.
제주시 북쪽 바닷가 횟집 거리에 마치 낯선 별에 떨어진 우주선 같은 공간 #바라나시책골목. 구석구석 숨어서, 널부러져서 책보는 분들 있음. 여행, 음악, 철학 신간들 눈에 띄고.. 천정에 체 게바라까지 뭔가 귀여운 혼종. 내년엔 조천으로 이사가신다고.
점심 먹고 어디 가볼까 검색해서 바로 걸린 책방에 삘 받아 4분 거리 #고씨주택 방문. 70년 넘은 한옥이 단정한 책방으로 변신. 주로 제주 책.
이번 여행 키워드는 한치원정대. 투명하고 쫄깃한 한치가 맛있어서 슬펐다. 얘는 소주랑 페어링 필수. 금주인은 2% 부족한 맛.
아는 해변 카페 찾다가 잘못 들어간 #휘카. 역시 뷰맛집.
저녁은 그동안 겁나 비싸서 못가봤던 곳. 오늘 엔빵으로 우리끼리 호사를 누렸다. 산방산과 바다가 보이는 2층 방에 과거 오셨던 분들이 다들 일국의 리더. 다금바리보다 비싼 돌돔에 마지막 고등어 시래기 조림과 미역지리까지 끝내주는데 압권은 역시 풍경인 집.
보통 주5회쯤 새벽 2~3시에 퇴근한다는 판사님 얘기를 듣다보니 법원은 리더십 문제가 심각하다. 다들 갈아넣고 사는걸 우리 때도 그랬다며 그러려니 허다니. 기업도 저러면 클난다..
무튼 카발란 안주로 보이차 마시는 제주의 밤이다.
한밤의 해장 파스타. 저녁 식당에서 먹고 남은거 다 싸들고 온 보람…
둘째날
“질문이 없으면 못써요.
그 질문으로 3~4년 헤매다 보면 그 다음 질문이 옵니다.“
5일 오후 제주 동쪽 평대리의 일년서가에서 김탁환 작가님의 ’이 강의 잘 들으면 소설가 된다‘ 강연이 열렸다. 과연?? 오늘 말씀으로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 그건 보장하지 않으셨지만 김 작가님은 글 못지 않게 말도 예쁜 분. 마침 제주에 놀러온 김에 일행들 이끌고 와버렸다. 산방산 숙소에서 동쪽 바닷가까지 1시간 40분 거리. 광활한 제주에서 그저 제주라는 이유로 반가워 먼 길 가는 건 서울 사람이다.
인간은 얼마나 절망해야 혁명을 꿈꿀 수 있는가?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은 그 질문에서 나왔구나.
글은 마음으로 쓰는 것? 운동도 산책도 않고 골방이나 카페에 틀어박혀서?
그럴리가. 절반은 마음으로, 나머지 절반은 몸으로 쓰는 것.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
틈이 보일 때까지 곁으로 가라..
곁으로 가서 틈을 발견하라..
세가지 틈에 주목해야 하는데..
인간 시간 공간.. 세가지 ‘간’, 틈을 생각해보고.
초고는 달려나가는 거라면 퇴고는 무릎으로 기어가며 단어를 찍고 계속 덧칠하는 것… 덧칠하며 고치는 건 AI가 못한다. (물론 첫 느낌으로 칠해버리는 수채화형 작가도 있..)
장편소설은 1000번 질문과 삶을 곱씹는 예술. 구상 1년 초고 1년 퇴고 1년.. 기본 3년 작업이란다. 조금 더 큰 작품은 10년 굴리는 것.
앞부분은 좀 놓쳤지만 작가님 오늘 강연은 소설가의 10계명으로 구성됐는데 몇가지만 담아도 조금 충만해진 느낌이다. 내가 뭘 모르는지 깨닫는 과정, 글쓰기를 다시 본다.
일년서가 창에 쓰인 파울로 코엘료의 말도 다르게 와닿는다.
글을 쓰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사랑해야 합니다”
삶을 글로 채우고 비우는 일. 힘의 안배를 능숙하게 하고 계신 탁환 쌤 얘기에 홀리다보면 마치 우리도 뭔가 할 수 있을 것만 같지만ㅎㅎ who kn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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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둘째날, 밤새 달린 일행들 덕에 아침 거르고 산방탄산온천 후 동쪽으로. 평대리 아래 세화리의 세화민속오일장으로 갔다가 한치 손질은 안된다기에 바로 옆 섬나기라횟집. 어제보다 반찬 실하고 가격도 착하고. 메로지리도 강추.
평대리 일월서가 행사에서 일행들에게 탁환쌤의 #거짓말이다 #이토록고고한연예 #참좋았더라 선물. 먼길 마다않고 함께 와준데다 진심 즐겨줬다..
고 생각ㅋ
평대리에서 조금 올라가면 월정리. 파도 하나 없는 잔잔한 바다에서 서핑 연습하는 이들ㅎㅎ 물은 시원한게 지금 딱 좋다.
월정리 안쪽 #책방오후, 높은 서가에 나름 쥔장 취향 보이는 큐레이션.
평대리 안쪽 #달책방, 예약제로만 운영해서 구경 실패. 이용료 내고 호적한 시간을 구매하는 방식인듯.
서점 지도 보면 욕심나지만 이쯤하고 산방산으로 고잉홈. 제주 근무중인 H님이 강추했다는 #춘미향식당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돼지목살 90g, 전복성게미역국, 옥돔튀김, 멜조림 정식 2.2만원. 정식 2인분에 갈치조림 소짜(4만원)면 4인 행복한 과식. 고기 퀄도 고퀄, 멜조림과 갈치조림은 살짝 달지만 숟가락 뗄 수 없는 맛. 옥돔 통구이 훌륭하고 바로 부쳐주는 밑반찬 전조차 남기기 싫은 밥상이다.
날마다 다른 모습이라는 산방산엔 오늘 구름 할아버지가 걸려있고
어제 쎄게 달린 일행들 오늘은 다들 술 끊었다고. 하나둘 뻗는 밤이다.
셋째날. 산방산 형님을 위한 하루 코스
아침은 3분 거리 중앙식당이다. 십수년 전 산방산 형님네 왔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맛있다. 초신선해야 가능한 맑은 갈치국, 고소하고 진한 보말미역국, 두툼하고 쫄깃한 고등어구이로 셋이서 나눠먹으면 호텔 조식 부럽잖은 호사다.
편의점에서 2+1 커피 사들고 또 3분만 가면 안덕계곡. 형님은 정작 한번도 와보지 않으셨다는데 딱 30~40분 별천지다. 큰 도로에 입구가 있는데 갑자기? 가벼운 아침 산책이 심산유곡 느낌이라니.
거기서 7분 거리 안덕면 테라로사는 성채다. 계곡 산책 후 도시인으로 변신, 커피와 공간을 즐기고.
다이소 암막커튼을 창에 설치하는 가벼운 집안일과 청소 거들고 또 밥먹으러 가네?
다시 6분 거리 #새물국수, 돔베고기(200g, 1.5만원)는 시키지 않았어야. 고기국수는 물론 멸고국수, 비빔국수에도 고기가 넘나 푸짐해서 셋이서 해치우는데 힘들었다. 바로 앞 화순별곡 레트로 감성에 커피 달달하고.
소화시키러 20분 거리 도립곶자왈공원을 찾았다. 여름엔 울창한 곶자왈이지. 숲은 바깥처럼 덥지 않은데 습하네. 쪼리 신은 친구도 걸을 수 있는 데크 1코스와 전망대 다녀오면 대략 50분 코스. 전망대에선 한라산이 보인다! 여기도 풀코스는 3시간 걸린다는데, 정말 놀라운 건 곶자왈이 아파트 단지 바로 옆이다. 뭔뭔 에듀 고급 아파트 동네다. 국제학교 베드타운인가? 곶자왈공원이 아파트 앞뜰이라고?
형님네 돌아와서 씼고 에어컨 바람을 즐기니 이것이 피서. 거실 산방산 뷰가 끝내주는데 어라.. 산방산 주변에 웬 아파트가 저리 많지? 저기 어떻게 허가 났지? 도무지 이해 안됨.
느긋하게 쉬엄쉬엄 여행도 오랜만. 저녁까지 형님네에서 3분 거리 이탈리안 #비스트로낭. 제주 감자 뇨끼 최고. 돌문어 파스타와 피자까지 빠지는 메뉴 없음. 각 메뉴 2만원대로 꽤 괜찮은 다이닝.
헌신적으로 일만 했던 형님이 제주에서 좀 편하고 재미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검색검색한 일정들이 우리 맘에도 좋았다. 아무 계획 없이 왔다가 그때그때 찾아서 돌아다녀도 충분히 괜찮은 제주다. 무엇보다 오랜 친구들과 새 친구들 모두 별나게 잼난 이들. 여행은 사람이 시작과 끝이구나.
#마냐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