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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점일기

[손으로 읽는 당신이 옳다] 마법의 시간이었던 북토크

by 마냐 정혜승



“심리상담은 말로 하는 수술이다. 상담실은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간 상처가 쩍 벌어져서 그대로 드러나는 현장이다. 심리적 비수에 찔려 피를 뚝뚝 흘리고 활활 타오르는 분노가 온몸으로 옮겨붙어 어떤 합리적 설명이나 설득도 소용없는 현장이다. 흐르는 피를 멈출 수 있어야 하고 분노의 화상으로 줄줄 흐르는 피고름도 2차 감염 없이 닦아내야 한다.

심리상담의 핵심은 정확한 공감이다. 그다지 아프지도 않은 곳을 어루만져주는 손은 고맙지도 미덥지도 않다. 도움도 안 된다.

정확한 공감은 누군가의 어떤 마음이나 감정이라도 이유가 있을 것이란 전제를 가지고 초집중해야 가능하다. 정확하게 공감하면 화자는 기꺼이 빠르게 무장을 해제한다. 수술이 필요한 부위를 스스로 활짝 열어 보인다.“- [손으로 읽는 당신이 옳다], 120~122쪽


8일 북살롱 오티움에서 열린 정혜신 작가님 북토크는 치유의 시원함으로 더위를 식혔습니다. 소름끼치게 놀라운 사례 설명도 한몫 했습니다. 더 똑똑해진 챗GPT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AI의 심리상담 사례는 감탄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게 했어요.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의 하소연을 접한 챗GPT는 능수능란하게 답합니다. 지금 당신 상태가 위험 신호를 보이고 있다는 점과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이유까지 조목조목 팩트로 정리하더니 당장 전문가 상담이 필요하다면서 실제 고민에 대한 조언, 일상 꿀팁까지 좌르르 쏟아냈습니다. 근데 이게 좀 과해요. 심리적 비수에 찔린 이에게 도움도 되는 동시에 뭔가 아쉽더군요.

이어 정혜신 쌤이 실제 상담한 사례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챗GPT는 ‘정확한 공감’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저 전문가가 할 수 있는 일반 조언을 많이 해줬더군요. 챗GPT의 상담은 현실적 고민을 해결해주지 못했지만 혜신 쌤의 정확한 공감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요즘 제 주변에서도 AI와 상담처럼 대화 나누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그 한계와 문제가 실감났어요. 심리상담을 토닥토닥 등 두드려주거나 심리분석을 바탕으로 적절한 조언을 제공하는 시간 정도로 여겼다면 착각입니다.

심장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심폐소생술(CPR) 교육을 받은 이가 누군가를 구할 수 있듯이, 심리적 CPR을 훈련하면 누구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심리적 CPR은 다른 이가 아니라 스스로를 구하기도 합니다. 정혜신 쌤이 [당신이 옳다]를 쓰신 이유죠. [손으로 읽는 당신이 옳다]는 그중에서도 핵심 문장을 필사하며, 그 과정에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정확한 공감’의 등대가 되어줍니다.

정혜신 쌤의 북토크는 치유와 공감의 시간이었습니다. 3시간 가까이 사람들에게 눈 맞추고 공감하며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지금 마음이 어때요? 어떤 것 같아요?

참석한 분들이 솔직하게 말을 꺼내면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혜신 쌤은 “내가 특별히 이상해서 그런게 아니구나, 사람들이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얘기구나, 이렇게 확인하는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진짜 그렇더라고요.


“30년 일했고, 쉬면서 즐거운 일을 해야지 했는데 막상 쉬었는데 보람이 없어요. 내가 밥만 축내는 것 같고, 생산성이 없는 거 같고. 일을 하려고 해도. 사업할 만한 기개도 없고, 글을 쓰고 싶은데 글재주는 없는거 같고, 직장생활 다시 하자니 너무 싫고, 내 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어느 분이 노트에 남겨주신 사연인데요. 혜신 쌤의 답은 이렇습니다.


“본인이 그 앞에 다 말씀하셨어요. 쉬면서 마음껏 즐거운 일 해야지 하는 마음, 보람 없고 자존감 떨어지고, 마땅치 않다는 마음. 둘 다 내 마음입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둘 중 어느게 내 마음일까? 사람은 단세포가 아녀요. 상호모순되지만, 그런 마음이 얼마든지 동시에 있을 수 있어요. 오히려 한쪽만 있으면 그건 미성숙한거죠. 다각도로 생각 못하면 분명 여러가지 일을 또 겪을 겁니다. 이게 성숙한 어른의 마음이어요.


마음은 일도양단의 결정, 정답, 이런거 아닙니다. 그런걸 요구하는게 심리적 폭력이죠. 30년 일하셨다는데, 평생 일만 하다가 퇴직하는 건, 장기수가 감옥에 있다가 처음 밖에 나온 것과 비슷해요. 규율, 규칙 있고, 해야 할 일 딱 정해져 있는데 맞춰서 30년 산거죠. 이제 석방된건데, 발 닿는데로 아무데나 갈 수 있다고 하면 한발짝도 못 움직여요. 내 맘이 뭘까요? 자유를 원했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죠. 내가 정상일까요? 망가진 걸까요? 천만에요. 그게 사람입니다. 무릎이 확 풀린다면 주저앉아야죠. 두리번 살펴야죠.

하고 싶은대로 하는게 어려운게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상태가 어려운 겁니다. 도리 없어요. 견디는 수 밖에. 그런 시간이 필요해요. 통과할 수 밖에 없어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어요.”

혜신 쌤의 조언은 가슴으로 파고들었고, 이런데서 발언할 거라고 상상 못했다는 분들이 차례로 마음 상태를 털어놓았습니다. 이쯤되면 마법의 시간이죠.

쓰러질 때까지 일하거나 공부 않으면 불안하던 시절을 털어놓은 분도 있었고요. 너무 행복해서 고민을 쓸게 없었다는 고3도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수시 전형 한 고비 마무리하고 죄책감 없이 쉬고 있는 상태라고요. 이날 모인 분들이 고민 많고 불행해서 온 건 아니라고 혜신 쌤은 말했습니다. 고민 있다고 해서 이상한 것 아니고요. 사람은 누구나 다면적, 입체적 존재라니까요. 스물셋 청년의 이야기, 또 그를 형님이라 부르는 스물하나 청년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고요. 언젠가 쓸쓸한 자신을 마주하고 손 잡는 법을 나눠주신 40대 청년도 있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듣는게 놀라운 경험이란 거, 우리는 심리적 CPR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조금 알게 됐습니다.

이날 북토크는 [당신이 옳다]를 믿는 다정한 응원과 연대로 풍성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비빌 언덕, 비덕님과 ㅎㅈ님이 무려 100개의 주먹밥, 70개의 티라미슈와 에그타르트를 준비해주셨습니다. ㅅㅎ님은 따끈한 떡 한 박스를 보내주셨고요. 저는 이렇게 기록으로 마음 포갭니다. 눈빛만 봐도 다정함이 쏟아지는 이들과 함께 한 시간은 한동안 우리 모두의 든든한 뒷배가 되겠죠. 대체 어떤 시간이었는지 궁금한 분들은 일단 [손으로 읽는 당신이 옳다]를 보세요. 필사도 해보고, 한번 써보세요. 내 마음의 이야기를. 혜신 쌤 당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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