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일기예보는 부산 일정 내내 많은 비. 살랑 원피스 포기하고 반바지와 우산 챙겼는데 비구름은 빠르게 남쪽으로 가버렸다.
덕분에 오후에 해운대 바다 영접. 입추 지났다고 물이 찼다. 수영복 챙길 생각도 않은 나는 반바지 살짝 젖을 정도로 버텼지만 친구들과 6학년 소녀는 신나서 본격 물놀이. 물만 차가운게 아니라 파도가 동해 마냥 거칠어서 놀기에 더 좋았다고.
밤바다는 더 환상적이었다. 노랗게 빛나는 달이 구름 밖으로 나왔다. 달님에게 간절히 기원하는 내 맘이 말이지.. 무튼 파도랑 놀면서 걸었다. 좀 많이 먹었거든..
- 덕평휴게소 쇠고기국밥 기대 이상 훌륭하고,
- 해운대하얀오징어집, 11년 만에 갔는데 실처럼 가느다란 오징어회는 여전히 살살 녹고, 오징어먹통찜은 고소하고 녹진한 내장맛에 살캉쫄깃 식감이 부드러웠다.
- 해운대 곰장어 골목에서 온갖 냄새에 홀렸다. 가게마다 직원들은 상당수 외국인. 구경만하다가 마지막에 밀면집 갔는데..음...쏘쏘.
-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2차가 중요했다. 골목의 뽀뽀통닭 치킨은 바로 튀겨주는 그맛. 작은 게 튀김과 오징어까지 챙겨서 해운대 바다로 고고. 편의점 맥주까지 세상 부러울게 없는 밤.
저녁 전에 해운대 돌아다니며 해리단길 구경. 해운대는 적응 안되는 초고층 병풍이 솟구치고 있는데 해운대역 윗쪽으로 오래된 동네에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자리잡았다. 낡은 빌라를 개조한 도시재생 시도들이 눈에 띄는데 북적이는 정도는 아니라서, 부디 동네 곳곳에 훈풍이 불기를. 그런데 여기 경기 좋아지면 또 초고층 올리려나. 낡은 것과 새것이 어우러지는 건 꿈일랑가.
둘째날
해운대에서 아저씨대구탕이냐 #속씨원한대구탕미포본점 이냐, 고수의 조언까지 받아서 아저씨 갔는데 둘째넷째 월욜 휴무. 바로 옆 플랜비로. 술 안 마신게 아쉬울 정도로 속씨원한 대구탕 환상적이었다. 이게 해운대의 아침이지. 이 대구탕 밀키트를 서울에서 받아볼 수 있다니 편한 세상이다.
바닷가 산책을 밤에도 하고, 아침에도 하고. 일기예보와 달리 비는 커녕 햇살이 따뜻하게 딱 좋아서 바다에서 내내 놀았다. 수영복 없어서 상하의로 된 잠옷 입고 들어갔다. 나름 예쁜건데 이거라도 가져가서 다행이라고 속으로 외침.
파도에 몸을 맡기고 물보라를 맞다보면 무아지경에 빠진다. 거센 파도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짠물을 들이키고, 한번씩 꼬르르 가라앉는데 기분은 미치게 좋았다. 바다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큰 곳이지만 어른이라고 다를리가. 바쁘다고 이 재미 못누리고 살아온 나의 지난날아 미안. 달과 지구의 움직임, 중력, 바람이 만들어낸 파도는 매번 기적이다.
오늘 또하나의 기적은 초강력 파도에 잃어버린 내 선글라스를 한참 뒤 찾았다. 몇년 전 이탈리아 가루다 호수에서 친구의 선글라스를 찾은건 물이 맑았기 때문. 거친 파도가 이어지는 바다에서는 되찾을 엄두도 못냈다. 그래도 틈틈이 바닥을 살펴보곤 했는데 내 발에 딱 걸렸다. 친구도 선글라스를 잃어버리고, 10대 소녀는 안경을 잃어버렸는데 못찾았다. 해운대 경찰서 유실물센터에 가면 선글라스와 안경이 몇박스란다. 내일이라도 찾을 수 있기를. 물살이 강한데 멀리 떠내려간 이들을 헤엄쳐서 끌고오는 안전요원들도 멋있고, 경찰 분들도 그렇다.
젖은 채로 발만 씻고 걸어갈 거리에 숙소를 잡은 친구를 칭찬해. 앞으로도 매년 파도를 타보리라 소박하게 결심했다. 3박4일 노는 친구들에게 빌붙어 나는 1박2일만 보내도 이렇게 즐거운걸. 호시탐탐 놀아야한다.
놀다가 점심 때를 놓쳤다. 저녁에 기차 타는 나를 위해 함꼐 차이나타운 나들이. 역시 11년 전 가보고 반했던 #신발원 노렸다. 그런데 오후 3시에도 웨이팅이라니. 30분 정도 기다렸고 우리는 전 메뉴를 다 주문했다. 부산만두, 부추당면만두, 백새우만두, 마라만두, 고기만두, 군만두, 새우만두, 찐만두, 물만두, 콩국과 과자, 쿵푸면, 고기숙주나물, 오이무침. 5명이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결국 만장일치 최고였던 물만두와 군만두, 오이무침은 추가 주문했다. 솔직히 어느 하나 거를 수 없게 다 맛있다. 5명 모두 행복하게 과식.
좀 걷기 위해 인근 국제시장 + 부평깡통시장으로. 비가 와도 돌아다닐만한 곳이다. 원래 일행 몇이 물떡을 먹겠다는 의지에 충만했으나 만두로 꽉 채워져 포기. 구경만 하다가 각자 어묵도 좀 사고, 10대 소녀는 일본 젤리를 좀 사고, 시장 재미란.
주차장 옆 #광복동커피 갈 때쯤엔 다들 터덜터덜 지쳤는데, 이집이 또 수준급. 디저트도 음료도 꽤 한다.
내일 일정 있어서 먼저 떠나는 나만 아쉽지. 저녁 제끼고 해운대로 돌아가는 친구들과 헤어져 기차를 탔다. 젖은옷 보따리 들고 집으로 가는 일은 처음인데 그저 웃음이 난다. 짧게 짧게 다녀도 좋은게 여행. 앞으로도 욕심낼거다.
#마냐여행 #해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