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3일> 용산사, 디화제, 다다오청,이게 대만
3박4일, 마지막날 일정은 중정기념당, 장개석, 장졔스의 이름이 중정이었구나.
숙소에서 걸어서 20분. 가는 길에 2.28 기념공원 분수도 보고, 아침 산책 괜찮아야 마땅한데 덥다. 한국 돌아가는 날이라고 두꺼운 옷 꺼냈는데 왜 하필 오늘 덥지. 반팔과 패딩 차림이 공존해서 흥미로웠는데 날씨가 종잡을 수 없다.
멀리 거대한 정문이 보인다. 자유광장이라고 이름을 바꿨다며? 정문 너머 멀리 보이는 기념당.
본래 '포부가 크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며, 지극히 바르다'는 뜻의 사자성어 '大中至正(대중지정)'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천수이볜 정부 시절인 2007년에 이걸 '自由廣場(자유광장)'이라고 바꿔 버렸다고.
장졔스, 중정 자체가 논쟁적 인물이다. 대만의 독립파를 탄압하던 독재자, 학살자 칭호가 따라붙는다.
이 곳, 광활하다. 너무 넓고 크다. 중국 본토의 쑨원 중산릉, 미국 링컨기념관보다 크게 지으려 했다더니, 뜻대로 권위적이다. 그러나 장제스를 지우고 대만 민주화 과정을 더 기념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한다. 정권 바뀔 때 마다 시끄러운 모양. 각국의 역사는 비슷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권위주의 지도자가 집권하고, 탄압하고, 시대가 바뀌고, 역사 수정 논란 나오고..
방문객을 압도하는 스케일. 막상 들어가면 달랑 동상 하나다. 이럴수가.
아래층에 그를 기념하는 물건들이 있다는데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논란을 뒤로하고, 그 장제스의 증손자 장완안이 지금 타이베이 시장이고, 차기 대만 총통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78년생 마흔여덟 정치인. 흥미롭다.
다음 일정은 또 걸어서 15분? 난먼시장(남문시장), 식자재 보러갔지만, 연휴라 문 닫았다. 영업중이라던 구글맵은 매번 틀린다. 여행의 묘미는 예상이 깨지는데 있다지만. 흑.
근데 남문시장 일정이 무산되는 바람에, 지하철역 하나 거리인 융캉제로 고고. 1963년부터 영업한 융캉우육면을 영접했다. 11시 오픈 시간에서 10분 지났는데 이미 줄. 20분 정도 기다렸다. 이때가 가장 줄이 짧을 때란다. 대만 음식 중에는 꽤 비싼 편. 홍소탕과 청탕, 매운만두까지 780대만달러(약 3.6만원)인데 고기와 힘줄이 실하다. 홍소 국물은 아는 맛이고 청탕은 맑고 진하다. 매운만두는 마장면 소스 비슷하다.
여기에 망고빙수까지 먹었으니 융캉제에서 할거 다 했...
융캉제는 예쁜 가게들이 아기자기하다. 홍대 앞 분위기. 거리가 길지 않은데 어떻게 다들 융캉제가 반나절 일정에 있지? 딸이 말했다. 친구와 왔으면 융캉제 카페에서 2~3시간 노닥거리면서 반나절 순삭이라고. 어디로든 계속 뚜벅뚜벅 움직이는 엄마 일정은 빡세다고. 놀멘놀멘 다니자고 했지만 나란 인간..
다시 숙소 주변으로. 지구촌 어학원 간판에 미, 일, 한이 쓰여있다. 한국어가 저 정도? 흠. 딸과 아이스티를 마시며 노닥노닥 했다. 딸은 대만이 음료의 나라라고 했다. 편의점에서도 차 종류가 엄청나더니, 곳곳에서 이 차 저 차 마셔본다.
타이베이역에서 공항철도 급행이 15분마다 출발한다. 마침 한대 놓쳐서 아쉬워했더니 그 다음차가 5분 만에 왔고, 종점이라 냉큼 앉았다. 늦게 타면 40분 가까이 서서 간다. 올때 우리가 그렇게 왔다. 앞 열차 놓치길 잘한거였다. 인생이란!
저가 항공이라 싸게 왔는데, 우리는 수하물 직접 들고 타는 티켓이란다. 그런 것도 안챙긴 나. 뭐 큰 문제는 아니다. 아, 그렇구나 할 뿐. 공항에서 대만 마지막 끼니. 동파육과 참깨닭고기탕. 참깨는 그만 시도하리…
3박4일로 아는척 해봐야 다들 얕은 속을 알테니 막 남겨본다.
대만은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높은 나라이지만, 타이베이만 봐서는 부자나라 치고 다소 칙칙하다. 재개발 안해서 투기는 덜할지 몰라도 청년 주택 문제가 해결된건 또 아닌듯. 공항 가는 길 뉴타이베이가 마치 판교처럼 매끈하지만 타이베이 중심가는 좀 아쉽지. 그렇지만 자꾸 더 들여다보게 된다. 왜? 비슷하니까. 백화점이나 대만 명동 시먼딩을 돌아다니면 한국 대만 일본이 같은 브랜드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신발을 신는다는 걸 확인한다. 대만은 좀 더 일본에 가깝다. 국민 3만명을 학살한 2.28 사태를 보니, 일제 강점기보다 장제스 시절이 더 가혹했다. 일본은 식민지 조선보다 식민지 대만에 온건했다. 심리적 장벽이 낮은 탓인지 타이베이 거리에는 대부분 일본 자동차. 백화점도 일본 미츠코시. 야시장의 놀거리들은 일본 마츠리에서 따왔고, 성기 모양 장난감, 광고판 등도 한국에선 상상 못한다. 일본과 가까운건 분명하고, 한국은? 중국과 수교하며 대만을 배신했던 나라 아닌가? 미국이 주도해온 질서가 무너진 시대에 대만의 운명이 어찌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윈윈할 수 있는 뭔가가 있겠지. 가까운 이웃으로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대만 호감 팍팍 높이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