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의 평범한 아침 총좌빙(파전병)과 두유. 숙소 부근에서 테이크아웃 정성을 보였지만 아침을 거르는 딸은 거부. 기름과 밀가루, 계란, 치즈의 맛이다.
숙소에서 걸어서 6분, 2.28 평화기념공원이 있다. 1947년 2월28일 단속반의 노점상 폭행에 분개한 시민들을 상대로 정부가 발포, 끝내 3만명이 실종되고 살해된 비극이다. 봉기의 발단은 '아랍의 봄'을 비롯해 권위주의 정부에서 흔한 형태로 시작됐으나 그때는 SNS도 없었고, 정부는 더 무자비했다. 계엄령으로 이후 40여년 묻혔던 2.28은 1987년 계엄 해제 후 1997년에야 정부가 공식 사과했다고 한다. 공원은 국립대만박물관 뒷편으로 덩치 큰 청설모, 백로를 비롯한 큰 새들, 거북이까지 거의 동물원 느낌이다.
오늘 목표는 딘타이펑 오픈런. 10시30분 맞춰갔더니 이미 줄이 어마어마. 마침 남서점은 10시50분 오픈으로 우리는 간신히 제때 입장했다. 사실 무려 11만원을 들여 2인 식사권을 1월에 미리 구입했는데, 날짜를 1월로 입력하는 바람에 날린 줄... 바우처 유효기간을 들이밀어볼까 했는데 별 문제 없이 쓸 수 있었다. 게와 닭 소품 표시 귀엽고, 트러플 샤롱바오 풍미 훌륭. 야채와 버섯 샤롱바오가 식감도 향도 좋았다. 가성비 꽝이지만 보통 2시간 줄선다는데 30분 대기로 줄여주는 값이다. 십수년만의 모녀여행에 뭘 아끼겠나. 그래도 두번은 안갈듯
남서점은 미츠코시 백화점 지하인데, 와 바나나맛우유 위상이 저 정도라니. 블핑 로제 얼굴 괜히 반갑더라.
고작 3일째 만난 타이베이 거리는 조금 낡은 분위기. 1년에 300일쯤 비가 오기 때문에 건물 외벽을 덜 망가지는 잿빛으로 했다는 것 같던데, 우리 같으면 벌써 재개발 난리쳤을 상황이다. 여긴 뭐가 다를까.
다음 목표는 용산사. 대만은 불교와 도교를 함께 믿는데, 이 절은 두 종교를 다 품었다. 절 앞에 누워계신 분, 뭔가 요상한 분위기로 줄지어 앉아계신 승려 분들도 분위기 남달랐지만 오늘은 마침 연휴. 새해 복을 비는 참배객들로 북새통이었다.
일단 지붕 위에 화려한 용들이 노닐고 있으면 이건 도교 사원.
종이 말 장식 사이로 기도하는 사람들 틈에서 같이 순례 모드.
과자와 음료, 과일, 꽃 등 뭔가 제물을 바치면서 부처님 뿐 아니라 그 옆에 관운장 등 도교의 여러 신들에게 기도한다. 무병장수 기원하면 도교라는데, 대만 사람들은 종교적 관용과 포용이 남다른 것일까. 대표 사찰에 두 종교가 공존하다니.
다음 목적지는 서점. 타이베이 책방 탐방이다. 시먼딩 골목 어드메 건물 3층에 성품서점(eslite bookstore)이 있다. 문구 덕후인 딸에게 종이가 다르다는 고오오급 노트를 상납했으니 미션 완료. 책방은 특이사항 없음. 교보랑 유사함.
다만 <내가 키운 S급들>, 저게 한국 웹소설이 원작이라고? 대만 작화가 더 끝내준다고? K컨텐츠에 감탄하다가 옆 코너 BL 만화 표지들에 쓰러짐.. 19금 만화를 왜 이런 서점에서..
타이베이 오기 전에 여러 친구들에게 물어봤는데 10번 이상 다녀온 ㄹㅎ님은 "개인적으로 타이베이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면 디화제(迪化街, dihuajie)와 다다오청(大稻程, dadaocheng)"이라고 했다. 용산사에서 시먼딩까지 걸어서 20~30분 거리, 시먼딩에서 디화제도 비슷한데 중간중간 버스도 타면서 슬슬 걸었다. 어쩐지 명동과 꼭닮은 시먼딩보다 디화제가 훨씬 이국적? 대만 같다. 허름한 건물들 속에 숨어있는 핫플들 보면 성수동 같고, 망원동 같지만 곧 대만 명물들로 채운 거리가 나온다. 시먼딩보다 훨씬 괜찮았다.
평점 좋은 카페들은 웨이팅 있고, 운좋게 북바1920 야외석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동방미인차, 딸은 피치우롱맛 병맥? 술과 차 파는 책방 반갑다! 본인들이 대만 문화의 영적 허브라고 홍보하는데, 한국 작가 송유정이 <기억 서점> 번역본과 내가 요즘 열심히 팔던 R.F.쿠앙의 <옐로페이스> 번역본이 눈에 띈다.
120만원 다기셋트를 비롯해 대만의 고오오급 차문화도 곁눈질하고..
디화제도 좋았지만 걷다보면 다다오청, 말하자면 한강 공원 같은 곳이 나온다. 순두부에 시럽과 땅콩 강정 얹은 것만 같은 두부 푸딩을 맛보며 희희낙낙. 돗자리 펼친 이들, 농구하는 이들, 공원 풍경이 넘 익숙해서 좋았다.
다다오칭에서 야경까지 보고 싶었지만 슬슬 바람이 차가웠고, 우리는 ㄹㅎ님이 오픈런 권해준 moon moon food(쌍월 식품사)로. 8년째 미슐랭 빕구르망 식당인데 5시 반쯤 가서 30분 기다렸다. 매콤 참깨소스 마장면이 대표적 추천 메뉴. 농어조림과 짭쪼름 돼지고기 얹은 루로우판, 참기름 돼지고기탕까지 4개 메뉴 합쳐서 390대만달러(약 18000원), 양이 적어 둘이 먹기에 좋다ㅋ 루로우판은 삼겹살 껍질 부분이라 기름지고, 돼지고기탕은 간이 싱겁다는게 딸의 평. 나야 다 좋았...
ㄹㅎ님 추천해준 미츠코시 백화점 지하 춘수당의 철관음라떼, 역시 ㄹㅎ님 추천해준 광남 무슨 문구마트까지, 알고보면 숙소 옆에 모든게 다 있구나. 타이베이 셋째날, 2만보 일정이었다. 문구점서 붓펜까지 득템한 따님 만족했으니 됐다.
백화점 지하의 진진분식, 문구점 1층의 라면 매대..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