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친일기
2202년 1월 10일
용인세브란스병원에서 문진표를 작성하고 플래시 박스를 배송하고 투덜거리며 다음으로 향한 곳은 어두운 아파트였다. 경사는 가팔랐고 규모는 상당했다. 하지만 단지 내 조명이 어두워서 기괴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언덕길에 위태롭게 차를 주차하고 첫 배송지로 뛰어가는데 입구가 어디인지 출구가 어디인지 엘리베이터는 있는데 어느 곳은 이용해야 하는지 아찔하다. 긴 복도가 형무소의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자아내고 있었다. 간신히 뛰어다니다가 다음 배송지로 쿠팡카를 움직이는데 가파른 경사지에 복잡한 동배치로 입구를 찾는데 애를 먹는다.
엘리베이터에 쓰여있는 광고지나 안내문을 보니 아마도 실버타운인데 입주 자격이 안 되는 만 60세 입주민의 퇴거를 요구하는 글이 눈에 띈다. 무슨 곡절이 있는 듯 비싼 돈을 치르고 나이가 들어 편히 쉬로 왔을 터인데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규모와 시설은 웅장하여 위압감을 느끼게 할 정도이고 바로 옆이 세브란스 병원이라 노인들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서는 알맞은 곳일지도 모르지만 분위기 여느 아파트나 공공주택은 활기로움이 전혀 느낄 수 없다. 나이를 먹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런 곳에 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아파트 입구가 우선 침침하고 아무리 자정 가까운 시간이라지만 인적도 없다.
배달 기프트는 거의 각동에 평균 한 개 정도이다. 어플에서 알려주는 비번은 거의 맞는 게 없고 경비 호출을 하는데 불평 없이 재깍 열어준다. 경비도 실버타운의 정막 대신 호출하는 소음을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덕에 건축을 하다 보니 엘리베이터의 층수 표시도 어지럽다. 1층, L층, P층 등으로 표시되어있는데 올라갈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내려올 때 아주 엉뚱한 곳으로 내려서 전체 동을 빙빙 두 번이나 돌았다. 입구도 어떤 규칙이 있을 터인데 상식 밖으로 정해 두었고 무엇보다 입구가 어두워 동호수 표시가 안보였고 실버타운 밖에 동 표시도 보기가 어려웠다.
악몽을 꾼 듯 미로의 설계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이달로스가 했는지 첫 방문자는 입구와 출구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배송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상상한다. 도심은 좁은 원룸의 팍팍함은 느껴지지 않지만 이곳의 우선 활기가 전혀 없다. 실버타운이 너무 고급스러운데 실제 이곳에 입주해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운지는 모르겠다. 상업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고 대단지에 노인들만 모여서 사는데 너무 단조롭고 조용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럴 에는 전원에 아담한 주택을 짓고 사는 편이 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제일 좋은 방법은 도심의 한 복판에서 노년의 넘치는 여유를 다소는 소란하지만 부산 거림 속에 즐겨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노년의 여유를 어떻게 즐길 것인가. 혹시 실버타운에서 죽음을 준비하시는 편안하지만 안이한 선택을 준비할 것인가? 노년의 준비는 끝가지 현역에 남아서 분투하는 일은 아닐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경제력 체력 인맥 정서적 안정감 등 전제조건이 많이 존재하지만 건강하게 주위와 소통하면서 밝게 살아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엄청난 규모의 실버타운 자정 가까운 시간 그리고 새벽에 두 번에 걸친 실버타운 방문에서 아무리 밤이라지만 이미 불이 꺼져버린 쓸쓸한 모습을 보며 노년의 준비를 다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