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맨 임시 전출

송파캠프 지원

by 화월

2022 0206

오늘 저녁부터는 근무지가 바뀐다. 내가 원해서 가는 곳은 아니다. 누구나 가기 싫어하는 쿠팡 송파 3 캠프이다. 서초 캠프에서 그곳에 하루 지원 나갔다 오는 쿠친들은 한결같이 지옥이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몇 번을 지원으로 나가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2주 지원을 명 받은 것은 처음이다. 출근 시간이 배로 늦어 부담스럽던 차에 회사의 팀즈에 혹시 근처 숙소 지원은 되나고 물어도 이틀 동안 말이 없다. 동네 구멍가게도 직원을 출장 보내면 출장비를 지급하는데 세계의 경제도시 그리고 배꼽인 뉴욕 증시에 상장된 회사가 왜 이럴까 사다리 타기로 선발된 나의 질문을 회피할까? 우리 캠프 1조에서 라이트는 4명이 사다리를 탔다. 그 사다리에는 3명은 패스 나는 선발 표시가 되어있다. 영어로 pass는 선발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이곳에서의 영어의 의미는 아무래도 불합격인 모양이다.

송파에 가기 위해서는 집에서 ‘서글픈 언덕’을 5백여 미터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11 정거장 20분을 이동한 후 신대방역에서 기다렸다가 2호선을 타고 14 정거장을 이동하여 잠실역에서 177m를 걸어서 환승해 또 5개 역을 더 이동한다. 총 30 정거장이다. 그리고 오후 6시부터 장지역 3번 출구에서 운행한다는 셔틀 밴을 타야 한다. 다행히 이곳부터 걸어가면 1킬로에 가까운데 다행히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아무튼 출퇴근이 거의 4시간에 육박한다. 내 경험으로는 출근은 그래도 수월한데 밤새 뛰어다니면 기프트를 들고 몸을 써야 하는 노동자에게는 퇴근길이 어렵다. 거의 백발오십중은 대중교통에서 자다가 목적지를 지나친다. 출근은 늘 두려움을 주고 퇴근은 잠을 선사한다. 인간이 잠을 자야 하는 이유는 이 시간이 소중한 에너지 충전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잠을 줄이고 오랫동안 깨어야 하는 이런 갑작스러운 근무지 이동에 당황하는 이유이다. 몸과 잠을 쪼개 회사에 노동력을 추가로 제공하면 반대급부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왜 그들은 침묵할까? 나의 질문이 수준 이하의 비상식적인 질문이거나 나의 질문에 어안이 벙벙하기 때문이리라. 답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답변은 언제나 나올까?

노동은 인간 육체의 근력과 지력을 상품으로 판다. 거기에 시간을 사용한다. 노동과 시간의 추가는 당연한 급여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생리이다. 그냥 20세기처럼 애사심에 기대어 노동자의 골수에 빨대를 꽂아서 피를 빨아야 하겠는가? 사실 어제 이제는 퇴직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눈 내린 빙판과 영하 15도의 추위 하루 저녁 물 6통을 마시며 땀을 흠뻑 적시면 달렸던 지난여름의 지난했던 추억을 이제 잊어야 하는가?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그래 당장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살기 위해서 오늘 밤도 깊은 주택가를 서성거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쿠팡맨이 가지고 있는 특권의 하나는 남의 집에 합법적으로 들어가 기프트를 배송하면서 덤으로 이 도시나 시골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일이다. 일단 긍정적으로 이번 지원은 첫 번째이고 우리 조원들이 모두 다녀왔기에 가보기로 한다. 평소보다 2시간 이른 5시에 출발하여 첫 번째 셔틀을 타고 송파 쿠팡 1 센터에 가서 쿠팡카를 잡고 PDA를 수령하여 일찌감치 준비를 해보자. 그리고 요령이 생기면 다른 출근 방법을 알아보자 다짐해 본다. 내일 아침 퇴근할 때는 버스나 전철에서 자지 말아야 할 텐데.


세상은 코로나라는 녀석의 습격으로 변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배달의 민족이라는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배송의 시대를 맞고 있다. 기승전 치킨집의 시대에서 기승전 배송의 시대이다. 치킨 집은 하다가 망한 사람이 많았는데 배송의 시대에는 부상을 입고 치료 중인 쿠팡맨이 많다. 세상의 밑바닥에는 늘 희생이나 어찔할 수 없는 일들이 삶을 힘들게 한다. 우리 조 총 30여 명 중에 4명이 상해를 입어 휴직 중이다. 노동자는 몸과 건강이 최고이다. 다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기프트의 무게와 산더미 같은 물량에 지지 말고 우리는 뛰자. 영하의 날씨에 땀이 나도록 뛰다 보면 언젠가는 깨우침이 있으리라.


어제오늘의 추위로 입춘의 시샘은 막을 내렸다고 본다. 앞으로는 추위 싸울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고 출퇴근과 수면욕과의 싸움이다. 오늘 바람이 있다면 적당한 가구 수를 받아 시간 안에 배송을 마무리하고 여유 있게 휴식을 취하고 2라운드 배송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일 퇴근할 때는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우리 동네 골목길과 ‘서글픈 언덕’을 찬찬히 걷고 싶다. 이제 봄꽃이 피려면 잠깐이다. 겨울을 견디는 힘은 봄이 온다는 믿음이며 우리가 밤새 노동하며 자위를 하는 까닭은 언젠가는 하염없는 노동의 시간을 견디고 자유의 시간이 오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봄날 잠깐은 오수를 즐기고 5시에 송파의 새로운 근무지로 이동하련다. ‘슬픈 몰골의 기사’ 돈키호테가 야윈 ‘로시난테’를 타고 모험을 떠났듯이 나는 쿠팡맨이다. 길을 누비느라 닳고 닳은 쿠팡카를 타고 오늘 밤 이 세상에 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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