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인가 노동인가

야간 배송

by 화월

1차에 라우트 세개를 받았다. 쿠치들 전문 용어로높다라고 한다. 우선 롤테에 높이 쌓인 기프틀 보면 기가 질린다. 또 아무리 쉬운 노선도 광역으로 배정되면 부담스럽다. 다니는 거리가 늘어나 그만큼 시간 소요가 많다. 412와 413을 통으로 받고 424D를 따로 받았다. 412와 413은 강남역 근처이고 424D는 강남성모 병원이다. 두군데 마치고 병원까지 가는 게 부담이다.


5일 연속 일을 한 후유증인지 졸린다. 뛰기라도 해야 시간에 맞춰 배송을 할 수 있는데 뛰는 것도 부담스럽다. 1차에 받은 가구수가 100가구가 넘는다. 언제부터인가 업무량이 늘어버려서 중간에 쉴 수도 없다. 저녁에 출근할 때마다 수도하는 사람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매일 나오는 로딩지에 나오는 지시대로 산더미 처럼 나오는 기프트를 하나하나 처리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배송이 완료되는 새벽이 밝아온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끔 여유가 생겨 일을 마치고 캠프에 복귀하면서 세상이 밝아오는 다양한 새벽의 모습을 관찰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내 경험으로 여름철 새벽 풍경이 가장 풍요로웠다. 한낮에 달궈진 대지가 밤새 쉬면서 다시 해가 떠오르면 시원해진 아침나절 부지런한 농부가 농사일을 해치우는 아침처럼 여름 새벽은 소중하다. 간밤의 무더위도 잘 이겨냈다. 여름 새벽의 이상한 활기는 길섶에 피어나는 나팔꽃처럼 자태가 곱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Plan 24'라는 괴상한 이름의 배송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며 쿠친들의 배송활동을 근로가 아닌 의미없는 노동의 기계로 만들고 있다. 그 계획은 근 반년 겪어보니 쿠친들의 팔다리 근육과 뼈를 배배꼬고 피를 빨아대는 착취에 다른말이 아니다. 너무하지 않은가? 밤새 쉬는 시간 한번 없이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뛰어야한다. 가끔은 인권 모독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쩔 수 없이 뛰는 내 모습이 처량하기도 하다.


대규모 투자를 받아 한국의 아마존을 꿈꾸며 새벽 배송 시장을 석권하고 있지만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는 업체 입장에서 경쟁력 확보 방안의 하나로 배송노동자의 고혈을 짜내고 있는 것은 개탄스럽다.


작년에는 조보임에도 일이 즐거웠는데 올해부터는 점점 자발적 노동이 아니라 형벌을 받는 시치포스라는 생각이 든다. 무거운 기프트를 양팔에 가득 안고 강남의 엘리베이터 없는 연립을 오르며 다리의 근육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낄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이게 수행의 일부인가 인귄의 유린인가? 하루 저녁 한시간은 쉬어야할 것 아닌가? 강제로 로켓배송 앱을 잠그고 쉬게한다지만 진정한 휴식은 기프트 숫자와 가구수를 합리적 수준으로 줄여야한다. 쿠친은 배달을 아무 고통없이 하는 배송로봇이 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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