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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호 May 22. 2024

학교에 가듯이 요가를 해요

Day 54


하타요가 두 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어떤 동작들을 할까. 이 동작들을 통해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


새로운 경험은 설레임도 주지만 때때로 낙오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젠 어느 정도 연연해하지 않는 내가 되었다(될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이젠 동작이 잘 되지 않아도 주눅 들거나 스트레스받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지난 주말 내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 저녁마다 20여분씩 머리서기 연습을 했다. 아쉬탕가시간에 어느 정도 다른 동작들이 되어가니 이젠 ‘응당’ 머리서기 동작 또한 되어야 할 때라는 나의 고질병이 돋았다.


그놈의 ‘당연히’, ‘응당’, ‘이 정도면’ 같은 멋대로의 당위성 같은 것들이 도진 거다.


수업시간에 배운 대로 차근차근하는데 자꾸만 힘없이 뒤로 고꾸라진다.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다.

‘이 즈음에서 이렇게 복근에 힘을 주고 하는 것 같은데 왜 자꾸 스르르 미끄러지지?’

‘도대체 어느 타이밍에서 복근에 힘을 주는 거야?’

‘내 정수리가 유니크한 거야? 왜 자꾸 구르지?’


하다 하다 안되어 유튜브에 초보자를 위한 머리서기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이분은 요가 한 달 만에 머리서기를 성공했단다. 요령이 없어서 그렇지 요령과 감을 알면 근력이 없어도 유연함이 없어도 할 수 있단다.

그분의 영상대로 시도했는데 결과는 역시나 똑같다.

'이 정도 시도하면 다리는 90도 정도 굽힌 채로라도 역 ㄱ자로 버틸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은데 나 진짜 가망이 없는 거야?'


조바심을 내다 이내 또 주눅이 든다.


"여태 그래도 꽤 근력을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근육들이었어."


주눅 들면서도 조바심이 나니 또 시도하고 또 시도한다.

그러다 아까부터 곁눈으로 지켜보던 남편이 말한다.


“그러다 다쳐. 그냥 그거 안 하면 안 돼?”

“응? 왜?! 이게 요가의 왕 이래! 하고 싶어. 해보고 싶어!”

“다칠까 봐 걱정돼서 그러지. 요가의 왕이라면 그게 요가 동작 중에서도 어려운 동작이겠네. 왕이면 쉽게 되지 않겠지.”

“아… 하긴. 그래도 이젠 해보고 싶어. 욕심나.”

“차근차근 하다 보면 언젠간 될 거야. 오늘은 그만해.”


입꼬리가 축 늘어진 채로 누워있다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시도!


하지만 이미 앞에 힘을 다 써버린 상태라 엉덩이로 구르기도 전에 몸에 힘이 빠진다.


“으아잇!!!!!!!”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소리를 내어버렸다.


“그만해 그만해.”

“허… 엉… 힘들다. 조바심 내다가 다치겠지?“

“그렇지.”


바닥에 널브러져 쉬다가 가만히 요가를 배운 개월수를 세어보았다.

“하나…둘…셋, 넷, 다섯… 나 이제 요가 배운 지 꽉 찬 5개월이야.”

“벌써 그렇게 됐어? 꽤 했네!”

“그러게! 근데 생각해 보니까 나는 앞으로 요가를 30년은 더 하고 싶거든.”

“오래 하면 좋지.”

“응… 그러면 머리서기 따위 아무래도 괜찮은 것 같아.”

“계속한다는 게 중요한 거지.”

“응응. 맞아 맞아.”


오래 할 거라 생각하니 당장의 머리서기 따위 집착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되는대로 하자. 되는대로.’


'영원히 못하면 어때. 다른 동작들은 정성껏 하면 되지.'


‘무엇보다도 남과 비교하지 말자. 내 페이스대로, 내 몸에 맞게 가는 게 본질이야.’


다시 또 당위성을 본질론으로 누르며 한바탕 머리서기의 소동을 끝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타 요가를 갔다.

하타 요가 중엔 유독 꼬거나 비틀거나 뒤집는 동작들이 많다.

정적인 것 같지만 꽤나 하드코어다.


당연히 안 되는 것들 투성이다.

전에 같으면 또 ‘이 정도면 해야 되는 것 아냐? 해내 보이고 말 거야.’ 했지만 오늘은 다르다.


'이거 뭐… 고장 난 오징어가 따로 없잖아?ㅋㅋ'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오늘따라 왼쪽 오른쪽도 헷갈린다.


주눅 들기보다 웃어 보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불태워 다 해버리겠단 마음보단 오래도록 다정하게 함께 가는 마음이 훨씬 좋은 것 같다.


수업이 끝나고 요가원을 나오는데 같은 방향의 회원님과 같이 가게 되었다.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아 전에도 한 번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 분이다. 꽤 오래 다니셨는데 확실히 머리서기도 잘하시고 늘 내가 (티는 안내도) 부러운 눈으로 보는 회원님들 중 한 분.


"어우. 한 번씩 동작하시는 거 보게 되는데 너무 잘하셔요."

"어유. 아니에요. 제가 40대 후반에 요가를 시작했는데 이제 10년 차거든요. 남들은 이 정도면 요가 강사 자격증도 따던데 저는 잘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진짜 잘하셔요… 저는 아직 멀었어요. 뭣보다 저도 그렇게 오래도록 해보고 싶어요.”

"오래 하려면 그냥 해요. 그냥. 뭐 이거 못한다고 혼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점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난 학교 가듯이 와요."하시고는 크게 웃어 보이 신다.

화통한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같이 큰 소리로 웃게 되었다.


"푸하하. 맞아요! 저도 그렇게 오려고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그래요. 그게 좋죠. 그럼 내일 또 만나요!"

"네! 들어가세요~!"


흐.

10년의 마음가짐이란 이런 거구나. 뭔가 지난 주말 내가 느낀 바와 같아 뿌듯했다.


"학교에 가듯이 와요."


왜인지 모르게 가슴에 다정하게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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