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집을 나서 도서관을 향했다. 온라인으로 검색해 보니 한국어 책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이런 허당이 있나. 의욕만 앞서 도서관이 문을 닫았을 거라는생각을하지 못했다. 월요일은 <진실과 화해의 날>이었다.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에게 행해졌던 지난 역사의 과오를 인정하고 원주민 정부와의 화해를 청하며 2021년, 9월 30일을 공휴일로 제정했는데바로 그날이었다.
불이 꺼진 도서관만 바라보다 방향을 틀어 몰로 향했다. 몰을 둘러보던중 작은 서점이 눈에 들어왔다. 캐나다에 와서 줄곧대형서점만 가봤던 터라 작은 서점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다. 욕심이었지만 혹시라도 한국어 서적이 있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도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포켓 사이즈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휴대가 편하게 작은 크기로 나온 책이다. 캐나다에 온후 처음 서점에 갔을 때 이곳 책 무게에 놀랐었다. 책이란 자고로 어느 정도 묵직함이 느껴졌거늘, 크기와 두께를 보고 대략 짐작되는 무게가 있었다. 짐작을 바탕으로 책을 집어 들었는데 번쩍 솟아오르는 손이 무안해졌다. 이곳 책은 정말 가볍게 나온다. 어느 곳 하나 글자가 비어있는 곳이 없는데 너무 가벼워서 책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포켓 사이즈로 가볍게 나오는 캐나다의 책
이제 그 무게에 친숙해진 것도 있고 점점 나이가 드니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가벼운 책이 좋다. 묵직한 코트를 입다가초경량 패딩으로 갈아입은 느낌이다.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고 다녀도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 가볍다.
둘러보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Staff Picks> 코너.문득 황보름 작가님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생각이 나 발걸음을 멈췄다. '단발머리 책벌레 상수 씨가 읽는 책들' 대신 Staff Picks로 소개된 이곳은 Anara, Ese,Jordan, Ampebah, Pamela의 이름이 코너를 채우고 있다.
독립서점에 만난 직원 추천코너
이곳은 어떤 콘셉트의 서점일까?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크기에 비해 꽤 다양한 섹션이 있다. 장르가 다양한 걸 보니 특정 분야를 추구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면 이곳 주인도 휴남동 서점의 영주처럼 책을 선정하는 자신만의 어떤 철학과 원칙이 있는 걸까?
픽션 코너에 오니 원주민 이야기를 소재로 한 책들이 모여있다. <진실과 화해의 날>인 만큼 잠시 서서 책을 둘러본다.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상에서 원주민을 접하고 그 역사를 배울 기회는 많지 않다. 시민권 시험을 볼 때 정도만 원주민 역사를 공부한다. 원주민을 다룬 영화에서 그려지는 외형적인 특징들이 현실에서는 그리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지나치기가 쉽다. 주정부에 근무하는 나는 그들을 접할 기회가 있어도 외관만 보고 원주민을 구분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공간이 작아 대형서점과 다르게 신간 코너도소박하다. 신간코너에 새로 나온 책을 다 소개하기가 어려워 군데군데 신간임을 알리는 'New'라 쓰인 카드가 놓여있다.
독립서점의 소박한 신간 코너
왠지 책마다 자신의 생각을 적어둔 영주의 메모가어딘가에 끼워져 있을 것만 같다. 책을 꺼내 들고 휘리릭 넘기며 굳이 확인을 해보는 내가 웃겨서 웃음이 나는 찰나 책장과 책장 사이에 줄줄이 걸려있는 파란색의 작은 메모가 눈에 들어온다. 현실에서 휴남동 서점을 만난 기분이 들어 미소가 지어진다.
굽이굽이 돌아다니며해외 서적 코너가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보다가이건 처음부터 무리한 기대였음을인정한다. 그 가운데 눈에 들어온 BTS 자서전.이곳 주인도 아미인가? BTS의 세계적 위상은 한국에서 체감하는 것 훨씬 이상이다. 같은 한국인임에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는, 소위 '국뽕'이 오르게 해주는자랑스러운 청년들이다. 한글 서적은 없지만 BTS를 만난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 본다.
독립서점에서 만난 BTS 자서전
또 다른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애정하는 드라마 길모어걸스에서 할머니 에밀리 역을 맡았던 배우 켈리 비숍의 회고록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도 보인다. 이 서점 주인은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갖고 있나 보다.
돌아 나오는 길에 입구 쪽에 세워진'블라인드 데이트'코너가 보인다. 블라인드 데이트는 보통 '소개팅'이나 '맞선'이라는 뜻인데 단지8불이면 된다는 <Blind Date with a Book For Only $8>라는 제목과 시도가 흥미롭다. 분야와어떤 내용일지에 대한 간단한 소개만을 적어둔 채 책의 제목과 저자는 포장에 가려져있다.영주가 정성스레 적었을 듯한 표지글. 정서가 표지글을 쓰는 영주 옆에서 뜨개질을 했을 것 같고 민철이가 턱을 괴고 앉아 바라보았을 것 같다.
집에 돌아와 서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몇 군데 지점을 둔 독립서점이다. 출간기념 저자 사인회도 하고 저녁시간에 시와 독서에 관한 이벤트들이 있다. 캘린더에서 매달 있는 행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두었다.
최근 독립서점에 관한 여러 글을 보고 난 후 부쩍 관심이 생겼다. 한국에서도 이곳에서도 접해보지 못했었다. 상술이 앞서는대형서점과는 분명 다른 매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