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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May 23. 2024

영주권을 받기 위해 살아야 하는 삶

05. 일머리가 없는 나

갑작스레 이민을 결정하며 비자가 급해진 나는 PGWP 지원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청을 했다.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해 봐야 했다. 그리고 고용주 찾기에 돌입했다. 컬리지 등록을 도와준 유학원을 통해 이주공사를 소개받고 고용주 찾는 일을 그곳에 맡겼다. LMIA를 통해 비자를 받으려면 한국 식당이나 아시안계 식당으로 가야 했다. 노동부를 설득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다는 허가를 받기에는 로컬 식당보다 용이하기 때문이다.


*PGWP(Post Graduation Work Permit): 4년제 또는 2년제 대학 졸업생에게 지원해 주는 오픈 워킹 비자. 고용주가 정해지지 않아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다.
*LMIA(Labour Market Impact Assessment):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도록 고용주가 노동부에 사전 허가를 받는 과정. LMIA 승인을 받은 고용주와만 일을 할 수 있다.


며칠 만에 연락이 온 이민 컨설턴트는 랭리에 있는 일식당 한 곳을 소개해 줬다. 이미 몇몇 사람들이 그곳에서 영주권을 받았고 진행 중인 직원들도 있지만 LMIA 한자리가 남아있다고 한다. 다운타운은 이미 외국인 인력이 꽉 찬 상태라 추가로 고용 허가 승인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굳이 하자고 한다면 자리가 생길 때까지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밴쿠버보다 상대적으로 인력이 부족한 외곽으로 가면 '지역 점수'를 추가로 받을 수가 있어 인비테이션 받기가 유리했다.


포트 랭리 Fort Langley


면접과 트레이닝을 같이 시작하자는 연락을 받고 다음날 랭리로 향했다.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버스에 버스를 갈아타고 편도만 3시간 가까이 걸려 일식집에 도착했다. 그곳은 벚꽃나무가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분위기 좋은, 다운타운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규모가 꽤 큰 식당이었다. 사장은 나를 앉혀놓고 대뜸 본인이 한국에서 펀드매니저였다는 것부터 시작해, 골프 얘기, 다른 지점이 있었는데 불이 나서 문을 닫았다는 얘기, 최고의 복지를 제공한다는 얘기, 그리고 거기서 몇 년째 일하고 있는 매니저의 수입이 엄청 많다는 얘기들을 한다.


"아.... 네...."


정작 일을 할 나에 대한 질문은 없다. 첫날이니 다른 직원들이 주문받는 걸 보고 배우라고 더니 바로 현장 투입이다. 스시집을 가도 늘 먹는 것만 먹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메뉴가 생소한데, 잘 나가는 음식이 뭔지, 사이드로 나가는 건  물어봐야 하는지, 주문받을 때 뭘 주의해야 하는지 등등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주문을 받으라고 한다. 식당은 외국인 손님이 상당히 많았다. 이런저런 요청을 내가 다 알아들을 리 없고 뭐가 되고 안되는지 더욱 모를 일이었다. 매니저도 직원들도 모두 자기 할 일에 바쁘다.


트레이닝이라는 명목으로 모든 테이블 정리를 다 해야 했다. 뜨거운 음식은 무거운 뚝배기를 쓰는 그곳은 서빙 카트가 없었다. 큰 네모난 식기 수거통에 잔뜩 쌓인 빈 뚝배기들이며 그릇들을 주방까지 들어서 옮겨야 했다. 시간이 갈수록 몸이 점점 무너졌다. 팔에 힘도 빠지고 다리도 후들거렸다.



직원들의 견제가 엄청나다. 하루동안 그 식당에서는 참 많은 드라마가 있었다. 팁을 받는 식당은 대부분 주문을 받은 직원이 서빙까지 한다. 잔뼈가 굵었다는 직원 하나가 음식이 나오자 본인이 주문을 잘못 넣었다는 걸 깨닫는다. 머뭇거리던 직원은 나에게 서빙을 미루고, 가서 손님에게 사과를 하라고 한다. 투고 음식을 잘못 포장한 직원은 은근슬쩍 꼬리를 내빼고 나한테 책임을 떠넘긴다. 결국 난 사장에게 불려 갔다. 경험 많고 캐나다에서 성공했다는 사장은 사람 보는 눈이 있단다. 나에게 '일머리'가 없단다.


직원들이 책임을 미루는 모습, 처음 온 직원에게 아무도 일을 가르쳐주지 않고 심지어 말조차 걸지 않는 모습에서 식당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직원들은 매서운 눈으로 감독관처럼 뒷짐을 지고 가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사장 눈치를 보고 있다. 직원들 간의 교류가 없다. 모두 바쁘게 자기 일만 하고 있다.




내가 근무하기로 한 시간이 다 됐다. 사장이 근무 기록표에 사인 아웃을 하라고 해서 시간을 적었다. 얼른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런데 고생했다며 굳이 밥을 먹고 가라고 한다. 끌려가다시피 식탁에 앉았지만 주방 이모님이 해주신 계란찜과 얼마 전에 담갔다는 살짝 익은 총각김치 맛이 괜찮았다.


저녁을 먹고 나니 또 일을 시킨다. 화장실 청소도 하라고 한다. 꾸역꾸역 남자화장실, 여자화장실을 다 치우고 가려는데 사장이 또 붙잡는다. 본인도 곧 나갈 건데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태워주겠다고 한다. 괜찮다고 여러 번 만류했지만 잠깐만 기다리라 신다. 결국 잔일을 이어가며 1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차를 얻어 탔는데 그분의 성공 스토리가 또 시작됐다.


길고 긴 '나 왕년에' 이야기가 끝나지 않자 다음 정류장, 그리고 그다음 정류장까지 갔다. 천신만고 끝에 벗어나 버스를 타고 겨우 마지막 스카이트레인을 탔다. 몸은 천근만근 녹초가 된 채 버라드역에 도착하니 새벽 2시다. 


늘 도착하면 '집에 왔다'는 생각에 반가웠던 버라드역. 런 생각조차 들 겨를도 없이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그렇게 멀 수가 없다. 하루 종일 날랐던 그 많은 뚝배기들이 내 몸에 겹겹이 쌓여있는 것처럼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집에 도착해 한동안 멍하니 식탁에 앉아 있었다. 하루가 10년인 마냥 너무 고단했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영주권 받으려면 몇 년은 걸릴 텐데.. 할 수 있을까?'


몸이 여기저기 아파오기 시작한다. 열도 난다. 이 하루는 나에게 영주권을 받기 위해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 날이었다.


결국 몸살이 났다. 아침에 겨우 몸을 일으키고 앉아 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는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민 컨설턴트에게 전화를 어제 하루 동안의 일을 이야기하니 사뭇 놀라며 미안해한다. 그 규모에 그렇게 체계가 없는 곳인 줄 몰랐다가지 말라고 한다. 다른 곳을 알아봐 주겠다고 한다.


이주공사와 통화를 마치고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대답은 심플했다.


"네~ 그래요~"


마치 익숙한 상황인 듯 두 마디만 남긴 채, 어제 하루 일한 것에 대한 페이를 얘기할 틈도 없이 전화는 뚝 끊겼다.


'그래 밥 한 끼 얻어먹었으니 그걸로 일당 받은 샘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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