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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May 15. 2024

캐나다 이민을 결정한 계기

04. 두려움으로 다가온 커리어 공백

1년이 조금 넘는 공부기간이 끝나고 인턴쉽을 할 회사를 찾으며 나는 벽에 부딪혔다. 현지 경험이 없고 인맥이 없는 내가 일자리를 구한다는 건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두 달간 밤낮으로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보내고도 일을 구하지 못한 나는 결국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헤드헌터와 연결된 나는 버나비에 있는 캐네디언 회사와 면접을 보고 조건부 일을 시작하게 됐다. 나처럼 비자를 받고 일하는 직원이 없고 나에 대해 확신이 없던 사장은 2주간의 검증기간을 두고 결정하기를 원했다. 아쉬운 건 나였기 때문에 이런 기회라도 붙잡아야 했다. 일단 부딪혀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회사는 가전과 핸드폰 등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판매하는 업체였는데 나는 마케팅팀 업무를 하게 됐다. 2주가 지나고 내 업무에 만족한 사장은 1년간의 일자리를 제공해 줬다. 회사 자체 웹사이트에서의 판매와 아마존, 이베이와 같은 온라인 쇼핑몰에의 판매를 관리하는 게 주요 업무였다. 직원들은 모두 친절했고 회사 분위기도 좋았다. 사장졸업 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비자 지원을 해 주겠다고 했지만 난 이때까지도 이민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인턴쉽 기간이 끝나졸업식이 다가오자 두려움이 찾아왔다. 한국에 다녀오기 위해 그리고 인턴쉽 자리를 찾기 위해 몇 달을 소비해 2년 반 만에 졸업을 하게 된 나는, 그 긴 공백을 안고 업계에 복귀해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새로운 장비나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컨벤션업계가 2년 넘게 정체되어 있던 나를 반겨줄지도 의문이었다.


그즈음 한국에 있던 언니네는 비즈니스를 정리했다. 몇 달을 끊임없이 찾아와 구애하는 사람에게 홀가분하게 가게를 넘겼다. 언니와 형부는 거의 10년 만에 생긴 휴식을 보낼 장소로 아들이 있는 뉴질랜드 대신 내가 있는 캐나다를 선택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캐나다 여행을 한다는 이유였지만 형부는 오래전부터 이민을 생각해 오고 있었다.


혼자이던 이곳에 가족에 온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신이 났다. 다운타운을 비롯해 록키, 빅토리아, 토론토, 퀘벡을 아우르는 한 달간의 여행 일정을 짜고 필요한 예약을 했다. 차량이 필요한 날은 렌터카 예약도 미리 해뒀다.

 

언니는 여행가방 한가득 새로 담근 몇 가지 종류의 김치와 밑반찬, 말린 나물, 한국산 깻잎과 청양고추까지 챙겨 왔다. 나보다 더한 한식체질인 언니다운 준비성이다. 혼자였으면 몇 달을 먹고도 냉동실에 들어가 있을 양이니 다 같이 있는 동안 원 없이 한식을 먹을 수 있겠다. 요리사 둘이 생기니 비좁은 주방에 내 발을 디딜 틈이 없다. 명절날 집에 내려가면 식탐을 멈출 수가 없어 며칠 만에 포동포동 살이 오르듯 제대로 된 한식을 먹으니 볼이 점점 부풀어 오른다.


퀘벡시에서 만난 거리의 악사
온타리오 천섬
나이아가라 폭포


여행을 마치고 체류를 한 달 더 연장한 언니와 형부는 내가 갖고 있던 좁은 인맥으로 알게 된 놀스 밴쿠버 North Vancouver 교육청 관계자를 만나 뉴질랜드에 있는 조카의 전학을 상담하고 비즈니스 관련해 몇몇 사람들도 만났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간 언니네는 캐나다 이민을 결정했다. 덩달아 나의 이민도 결정됐다.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비자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옵션은 3가지였다.


첫째. 졸업한 컬리지는 PGWP(Post Graduation Work Permit, 대학 졸업 후 주는 워킹비자) 지원 대상이 아니지만, 밑져야 신청비만 날린다 생각하고 신청해 보는 것.

둘째. 고용주를 찾아 LMIA(Labour Market Impact Assessment, 외국인 근로자 고용 허가)를 통해 워크퍼밋을 받는 것.

셋째. 석사 과정을 밟는 것.


PGWP는 심사 기간이 있기 때문에 우선 비자 신청 서류부터 접수했다. 한국에서의 경력과 캐나다에서의 학업 성과, 그리고 코업으로 한 로컬 회사에서의 인턴 경력. 이걸 강조해 내가 왜 캐나다에서 일을 해야 되는지를 어필하는 '진심이 담긴 편지'를 비자 신청서와 함께 이민국으로 보냈다. 주사위는 굴려졌다. 도박을 걸었으니 남은 건 운명에 맡기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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