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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May 01. 2024

번아웃으로 선택한 캐나다행

02. 모르는 사람들이 인사를 한다

"특별한 이상 소견은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니 다른 병원을 가보시길 권합니다."


"글쌔요... 아무래도 다른 병원을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은데요. 일을 쉬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컨벤션기획사 생활 11년 끝에 남은 건 원인 모를 증상들이었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혈관 곳곳을 타고 지릿지릿한 전기가 흐른다. 발을 내딛거나 몸이 어딘가에 살짝이라도 부딪힐 때면 전기 증상의 파장이 커진다. 심장은 제 멋대로 널뛴다.


도통 잠을 잘 수가 없다. 침대에 누운 채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아지고 몽롱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며칠씩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새벽녘이 되어 힘겹게 잠이 들고나면 잠에 취해 일어날 수가 없다. 나는 더 이상 내 몸의 주인이 아니다. 무기력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삶은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뜨겁게 컨벤션 일을 해 왔다. 일에서 손을 놓는다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더 이상 민폐를 끼칠 수가 없다. 회사 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워진 나는 결국 사직서를 냈다. 하지만 회사는 사표를 반려하고 대신 6개월의 휴가를 줬다.


내가 받은 처방은 일을 쉬라는 거였다. 처방대로 일을 쉬기로 하며 6개월이 생겼다. 뭘 할까... 갑자기 망망대해에 떨어진 듯 막연함이 밀려왔다.


캐나다에 가보자! 여행이나 해외 출장은 많이 다녔어도 철저한 한식주의자인 나에게 외국생활은 인생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UBC에서 운영하는 랭귀지 코스에 등록을 하고 학교에서 배정해  홈스테이에서 지내기로 했다. 랭귀지 코스는 비자를 따로 받지 않아도 되니 수속은 복잡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이민가방과 기초영문법이 담긴 트렁크를 끌고 캐나다로 왔다.




학교에서 배정해 준 홈스테이는 유대인 가정이었다.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홈스테이를 하며 홀로 지내셨던 할머니는 꼭 어릴 적 나를 키워준 외할머니 같았다. UBC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조용한 동네여서 같이 사는 하숙생들과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사람을 마주칠 일이 없었다.


저녁을 해 주시는 일라나 할머니


할머니의 음식은 소박했다. 하지만 맛이 있었다.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는 나를 위해 할머니는 무나 비트에 고춧가루와 소금 정도만 넣고 버무린 김치를 만들어 주고, 말수가 별로 없는 내가 빨리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저녁식사 자리에서 꼭 하루 일과를 물으셨다.


할머니가 만드신 스파게티
무에 고춧가루와 소금, 마늘을 넣고 버무려 사이드에 올려주신 할머니


캐나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이 시기 나는 한국이 많이 그리웠다. 비트 김치로 한국 음식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엔 부족했고, 할머니의 따듯한 환대에도 가족과 친구들은 그리웠다. 향수병이 올라올 때면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밴쿠버공항에 갔다.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내가 지내던 방


몇 달 후 나는 다운타운에 있는 스튜디오로 이사를 했다. 조용한 동네에서 지내다 다운타운에 오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한국과 같은 밤문화가 없어서 밤이 되면 여전히 무료하기는 했지만 홈스테이를 할 때보다 외로움은 덜 느껴졌다. 이 무렵 친해진 학교 친구들과 여행도 많이 다니고, 어느새 나의 스튜디오는 아지트가 되었다.


잉글리쉬 베이 입구의 어메이징 레프터 조각상
잉글리쉬 베이


걸어서 10분이면 잉글리쉬 베이가 있다. 이른 아침이면 갈매기들이 날아와 베란다에 모여 끼륵끼륵 울어댄다. 늦잠을 자고 싶은 날도 있는데 늘 같은 시간에 와서 울어대는 갈매기들이 가끔 귀찮기도 했다. 울다가만 가면 참 좋으련만 매일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인다. 과자봉지, 먹다만 음식, 담배꽁초, 출처를 모르는 양말들까지 턱 하니 내 집 베란다에 물어두고 간다.


잉글리쉬 베이를 따라 걷다 보면 스탠리 파크다. 스탠리 파크를 둘러싸고 조성된 도로에는 걷거나 뛰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린다. 공원 입구에 여러 개의 자전거 대여소들이 있어서 언제든지 자전거를 빌려 타고 스탠리 파크를 돌 수가 있다.


스탠리 파크
스탠리 파크


다운타운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는 활기가 느껴진다.


"Hello~"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한다. 처음엔 쑥스러워 살짝 웃기만 하고 시선을 피하던 나는 어느새 함께 기분 좋은 인사에 동참한다. 심지어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Hi, good morning!"


바쁜 아침시간에 스트레인저와 나누는 인사는 고작 이걸로 끝이지만 이 한마디가 나에게 주는 힘을 알았다. 햇살이 좋은 날 나누는 아침인사는 그 에너지가 더욱 크게 전해진다. 늘 허둥지둥 출근하기에 바빠 주변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던 나의 아침이 달라졌다. 어느새 나는 모르는 사람들과 나누는 아침인사의 예찬론자가 되었다.


캐나다 사람들의 친절함은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묘한 힘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건물을 들어갈 뒤에 누군가가 따라오면 항상 문을 잡고 기다려준다. 몇 명이든 개의치 않고 마지막 사람이 들어갈 때까지 문을 붙잡고 있는다. "Thank you~"라고 말하면 "No problem!" 하며 씩~ 웃어준다.


맑은 날, 구름 한 점 없는 스카이 블루색의 밴쿠버 하늘도 참 좋다. 습하지 않아 햇볕이 강하게 쏟아져도 따가운 느낌만 들뿐, 지치지가 않는다. 뜨겁다 싶어 나무 그늘 아래로 숨어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선선한 바람이 간지럽다.


캐나다의 느긋한 문화는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무얼 하든 기다림이다. 은행 계좌를 만드는 것도 약속이 필요하다. 약속을 잡고 일주일을 기다렸다 계좌를 오픈했다. 은행 ATM이 돈 1000불을 먹었을 때는 돌려받는데 열흘을 기다려야 했다. 나름 인내심이 강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캐나다에 와서야 '참된 인내'를 배운다.


인사가 주는 힘 때문이었을까?

푸른 하늘, 쾌적한 기온 덕분에 부족했던 에너지가 충전되어서일까?

아니면 항상 쫓기듯 살다 이곳에 와서 느긋~한 캐나다 사람들을 보니 내 마음도 느긋해졌던 걸까?


몇 년간 나를 괴롭혔던 증상들이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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