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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Apr 24. 2024

만나서는 안될 곳에서 만난 사람들

01. 프롤로그

아침부터 마음이 부산하다. 입을 옷을 어젯밤 미리 준비해 두고 잤건만 스텝은 꼬이고 계속해 헛짓만 하고 있다. 원피스를 주섬주섬 챙겨 입고 평소에는 잘 들지 않는 가방과 신발을 꺼낸다. 한국에서 가져오기는 했지만 어쩌면 캐나다에서는 입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여름 코트도 꺼내 입는다. 한동안 보지 못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다른 날보다 신경이 쓰인다. 조금이라도 더 예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푸석푸석한 얼굴도 매만지고 머리도 다듬어본다.


회사에 출근을 해 일을 하지만 마음은 온통 친구를 만날 생각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잠깐의 짬을 내어 친구에게 전해 줄 편지를 써본다. 생각해 보니 한 번도 친구에게 손편지를 준 적이 없다. 캐나다 생활 10년 8개월. 그중 7년을 함께 한 가장 오래된 친구다. 우정이 변곡점을 넘어 평생 인연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7년이라고 한다.


블리야~~ 이거 봐봐.
주말에 훈제오리 세일하는데 사러 안 갈래?

블리야~
이사한 집 근처에 타이레스토랑이 있는데
거기 얌운센 너~~무 맛있더라.
먹으면서 너 생각났어. 우리 같이 안 가볼래?

블리야~
이거 내가 써보니까 너~무 좋은 거 있지.
그래서 너꺼도 하나 사 왔지~

블리야~~ 캉구댄스 안 해볼래?
로히드에 학원 오픈해서 가봤는데 진짜 재밌어.
운동량도 장난이 아냐.
내가 동영상 보여줄게 봐봐..
재밌겠지? 응? 우리 같이 안 다닐래?


나보다 먼저 캐나다에 온 친구는 열정이 넘친다. 넘치다 못해 활활 타오른다. 나눔이 많아서 좋은 건 아낌없이 나눠야 한다. 솔깃한 정보를 알게 되면 마음이 급해져 빨리 알려줘야 하고, 맛집을 발견하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당장 가자고 한다. 기대치 않게 좋은 제품을 만나면 혼자 쓰지 못하고 덥석 하나를 사다 안겨준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운동을 알게 되면 같이 하자고 떼를 쓴다. 인간관계가 좁은 나와는 달리 인맥이 넓은 친구는 주변 사람들도 아낌없이 소개해준다. 뒤늦게 캐나다에 온 나에게 많은 걸 알려주고 늘 새로운 걸 경험하게 해 준다.


햇살이 좋은 아침이다. 한 시간 만에 사무실에서 나온 나는 좋다 못해 눈이 부시기까지 한 햇살을 거슬러 성 김대건 성당으로 향한다. 냉담자로 지낸 지 오래지만 캐나다에 오고 난 후 언젠가 약해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한번 와봤던 곳이다. 늘 지나는 길인데 성당이 이곳에 있었다니.. 한번 다녀간 이후로 와보지 않았던 터라 새삼 놀랍다.


금요일 오전인데도 성당은 수많은 차들로 주차할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빠져나가는 차를 기다렸다 겨우 구석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주차를 한다. 한참을 앉아있다 다시 한번 거울을 들여다보고 입술에 틴트를 발라본다. 거울 속 내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러 번의 큰 숨을 몰아쉰 후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 차에서 내린다.


가슴이 두근두근.. 아침부터 흔들리던 다리를 붙잡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본다. 언제나처럼 친구가 밝게 웃으며 맞아준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유난히 큰 키의 리암이 보인다. 리암을 안자마자 꾸역꾸역 삼켜왔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온다. 이 큰 키에 제법 체격이 좋았던 아이가 살이라고는 만져지지 않을 만큼 부쩍 홀쭉해졌다. 더 이상 흘릴 눈물조차 남지 않은 것처럼 초점을 잃은 건조한 두 눈에는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수년만이다. 친구 부모님을 보는 건. 아버지는 넋이 나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두 손을 덥석 잡은 채 어떻게 왔냐고 묻는다.


절대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서는 안될 곳에서 만났다.


내가 캐나다에 오지 않았다면 이 순간은 내 인생에서도, 친구의 인생에서도 없었을까.. 억울함이 한없이 북받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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