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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May 08. 2024

한국에 쉼표를 찍어두고 왔다

03. 영어와 친해지기

캐나다에 와서 마냥 여유롭게 지내기만 한 건 아니었다. 뒤늦게 시작한 영어공부와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UBC에서 랭귀지 과정을 하는 동안 나는 문법과 단어 공부에 중점을 뒀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영어로 된 문법책과 한국에서 가져온 기초영문법을 교차로 보면서 기본을 공부했다. <나는 영어가 너무 싫어요>에서 소개한 것처럼 중학교 1학년때 처음 만난 영어선생님과의 일화로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던 나는 영어책을 쳐다보지도 않았던 덕에 기초가 없었다.



나름 바쁘게 지냈는데도 불구하고 알 수 없던 증상들이 사라진 건 정말 일을 그만둔 효과였을까? 거짓말처럼 증상들이 사라지고 나니 막상 한국으로 돌아가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몇 달 배운 영어 실력이 내 일에 큰 영향력을 미칠 것 같지도 않고 '이왕 온 김에...?' 하는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비즈니스 디플로마 과정을 마치고 가기로 했다.


다운타운을 걷다 눈에 띄는 한국인 유학원 간판을 보고 무작정 걸어 들어가 상담을 받았다. 유학원에서 추천해 준 여러 학교들 중 최종 두 곳을 놓고 고민이 됐다. 한 곳은 명성 있는 사립 컬리지였고 졸업 후 3년짜리 워크퍼밋(PGWP: Post Graduation Work Permit)이 지원되는 곳이었다. 다른 한 곳은 규모나 명성으로나 상대적으로 작은 사립 컬리지였다. 이곳은 PGWP를 한시적으로 지원해 줬었는데 파일럿 기간이 끝나서 나는 그 혜택을 받을 수가 없었다. 외국에 혼자 와서 몇 년씩 일을 할 생각도, 이민할 생각도 없던 나에게 두 번째 학교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교차 수강'이었다. 비즈니스 과정을 공부하지만 다른 과정을 수강할 수 있었고 더 배우고 싶은 욕심이 있던 나는 두 번째 학교를 선택했다.


유학원의 도움으로 학교 등록과 비자 신청을 마친 나는 2년간의 비즈니스 코업 디플로마 과정을 시작했다. 한 달쯤 지나자 비자가 나왔다. 유학원 직원은 내 비자가 안 나올까 봐 불안했다고 한다. 서른을 훌쩍 넘긴 여자가 혼자 학생비자를 신청하면 '몸 파는 여자'로 오해받기 십상이라는 거다.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기는 했지만 그런 일이 있나 보다.


비자가 나온 후 학교에 한 달간 브레이크 신청을 했다. 퇴직 대신 회사에서 제공한 6개월의 장기 휴가를 받고 캐나다에 왔던 터라 회사를 정리해야 했다. 오랫동안 비워둔 서울집도 정리를 하기로 했다.




몇 달 만에 돌아온 한국. 그리웠던 내 나라. 짐을 찾아 나오니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벅찬 감정이 밀려온다. 공항리무진을 기다리는데 기를 쓰고 들어야 들리는 영어 대신 가만히 있어도 귀에 쏙쏙 꽂히는 한국말의 소음들, 낯익은 얼굴의 사람들이 반가우면서도 어색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리무진에 올라 긴 여행의 피로는 미뤄둔 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다본다.


잠실에 내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 10시가 되었다. 오랫동안 사람 없던 집 티가 난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집은 모든 게 건조하다. 어느 곳에도 물기 한 방울 보이지 않는 이 집이 마치 사막인 것처럼, 낯선 느낌이 든다.


며칠 후 회사를 갔다. 정식 퇴사 절차를 밟고 책상을 정리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컨벤션기획사일이다. 2년이 될까 아니면 3년이 될까.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내 청춘과 열정을 바친 일. 11년의 커리어에 쉼표를 찍는다 생각하니 영광과 환희의 순간이 교차되면서 아쉬움이 물밀 듯 밀려온다. 번아웃이 아니었으면 난 여전히 이 자리에 앉아 신나게 일을 하고 있을 텐데...


살던 집에 짐이 모두 빠지고 횅한 모습을 보니 '나는 캐나다로 다시 가는구나'라는 게 현실로 다가왔다. 막상 한국에 돌아오니 그대로 주저앉고 싶기도 했다. 하루하루 시간이 가는 게 아쉽고 제발 출국날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캐나다에 다시 올 때는 처음과는 기분이 달랐다. 어떤 이유로 왔든 공부를 더 하기로 한 건 나의 선택이었는데 마치 등 떠밀려 온 것처럼 한동안은 마음이 몸살을 앓았다.


영어와 친해지기


컬리지에서 공부하는 동안은 학생으로서의 자유를 누리고 책임을 다했다. 공부와 과제 준비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 노는 자리도 가급적 빠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운 건 집에 돌아와 다시 정리를 하며 복습을 했다. 내용은 이해가 되는데 뒤늦게 배운 영어로 기술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나는 교과서와 필기한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영어와 친해지기 위한 방법에 대해 들은 조언은 가능한 다 시도했다. 누구나 다 아는 거지만 가장 많이 들었던 조언은 최대한 나를 영어에 노출하라는 거였다. 백그라운드에 계속 영어가 들리도록 환경을 설정하는 거다. 영어와 친해지기 위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 음악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학교는 집에서부터 걸어서 30분이 걸리는 워터프런트역 Waterfront Station 근처에 있었다. 그 길을 난 매일 걸었다. 리스닝을 위해 라디오를 들으며 매일 걸으니 다리에 근육이 생기기 시작했다. '새다리'라고 놀림받던 다리가 제법 튼실해진 건 덤이었다. 중얼중얼 따라 하며 꾸준히 라디오를 듣다 보니 조금씩 들리는 게 많아졌다. 앵커들의 발음이 또렷하고 말하는 인토네이션이 비슷해서 뉴스에 적응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는데 토크쇼 형식의 대화는 여전히 어려웠다.


실생활 속 대화에 익숙해지기 위해 집에서는 뉴스보다 시트콤 같은 티브이쇼를 틀어놨다. 그때 주로 나오던 게 '빅뱅이론 Big Bang Theory', '두 남자와 1/2 Two and a half men', 주말에는 캐나다 티브이쇼 '코너 개스 Corner Gas'였다. 빅뱅이론은 영상을 보면 상황이 웃겨 재미있기는 한데 과학용어가 많이 나와 사실 들리는 게 많지 않았다.

빅뱅이론의 한 장면


복습과 과제를 마치면 1시간은 영문 기사를 보며 필사를 했다. 영문 기사 필사는 최신 이슈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한국어도 시대에 따라 신종어가 나오는 것처럼 영어도 마찬가진데 트렌디한 단어를 배울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필사가 끝나면 테드와 유튜브에서 내 목소리 톤에 맞는 영상을 찾아 1시간 동안 쉐도잉을 했다. 쉐도잉은 목이 금방 잠기고 입이 바짝바짝 말라오기 때문에 한 시간 이상을 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잠을 자기 전 플릭스 시리즈를 봤다.


이 시기 넷플릭스에서 '길모어 걸스 Gilmore Girls'를 보기 시작했는데 말이 빠르긴 해도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재미있게 다루어져 전체 에피소드를 세 번을 봤다. 어린 로리의 단짝 친구로 나온 레인의 배경이 한국인이다. 레인이 엄마와 하는 대화에서 (한국인 배우들이 아니어서 우리가 들으면 웃긴) 한국말도 튀어나오고 한국문화를 다루는 에피소드가 있어서 흥미로웠다. 길모어 걸스를 보면서 작은 동네에서 이웃들과 부대끼며 사는 나 자신을 상상하기도 했다.



길모어 걸스가 지루해질 때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How I met your mother'보기 시작했다. '레전데~리'를 외치는 바니(닐 패트릭 해리스 Neil Patrick Harris)가 웃기기도 했지만 여주인공 로빈으로 나오는 코비 스멀더스 Cobie Smulders 가 참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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