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어가 너무 싫어요
아니 영어 선생님이 싫어요
중학교를 들어가고 나서 생애 처음 영어라는 걸 배우게 됐다. 사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던 나는 첫 영어 수업이 참 많이 설레었다.
전주한옥마을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 나는 학교가 너무 예뻐서 신이 났었다. 운동장이 바로 보이는 여느 학교와 다르게 정문을 들어서면 인자한 표정의 성모상이 두 팔로 맞아주고 그 뒤로 드넓게 펼쳐진 동그란 모양의 잔디밭이 있었다. 그 잔디밭을 에워싸고 있는 형형색색의 튤립, 그리고 그 위로 마주 보고 자라 있는 쭉 뻗은 은행나무들은 입학하던 날부터 학교를 애정할 수밖에 없게 했다.
프랑스 신부님이 지으신 이 학교는 건물도 달랐다. 복도를 따라 교실들이 있는 게 전부인 다른 학교들과 달리 복도 맞은편에도 기다랗게 베란다가 있어서 모든 건물과 교실이 연결돼 있었다. 은행나무에 물이 들 때 교실에서 보이는 풍경은 넋을 놓고 바라보기 좋았고, 베란다에 나가면 한눈에 들어오는 푸릇푸릇한 잔디밭은 꼭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기분을 들게 했다.
가끔 잔디밭의 잡초를 뽑는 날엔 귀찮기도 했지만 현장 지휘 담당이었던 도덕 선생님은 항상 가장 많은 잡초를 뽑는 학생에게 '에이스' 과자를 상품으로 주셨다. 그 에이스를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열심히도 잡초를 뽑아댔다.
그런 낭만적인 분위기가 있는 학교에서 영어 공부를 한다는 게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영어 수업이 시작되는 첫날, 반곱슬 머리를 하고 얼굴에는 선한 웃음을 지으신 남자 선생님이 우리 반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진도가 나가는 중간중간 쪽지시험을 보겠다고 하셨고 우리는 알파벳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인사하기 편 '굿모닝 제인'을 배우면서 첫 번째 쪽지시험을 보게 됐다. 선생님이 읽어주는 짧은 문장들을 영어로 쓰는 거였으니 사실 받아쓰기였다.
"Good morning."
"Good afternoon."
"Good bye."
이런 문제들이었다.
다음 영어 수업 시간이 돌아왔을 때 선생님은 채점한 쪽지들을 한 명씩 이름을 불러가며 돌려주셨다. 내 이름이 호명되어 앞으로 나가자 선생님은 내 쪽지를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셨다. 그러고는,
"넌 벌써부터 남자 밝히냐?"
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쪼만한게 까져가지고.. ㅉㅉ"
돌려받은 쪽지에 내가 써 놓았던 '굿바이'는 'Good boy.'였다...
너무 창피해서 내 얼굴은 불타올랐지만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들 앞에서 "Good boy 란다 Good boy.." 라며 나를 공부는 안 하고 남자만 생각하는 아이로 몰아갔다.
창피한 걸 넘어 점점 화가 났다. 그리고 그날 이후 영어책이 보기 싫어졌다. 알파벳도 보기 싫었다. 영어 수업은 듣지도 않았고 오다가다 선생님을 마주쳐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놓고 째려보기도 했다. 내가 싫어했던 건 '영어를 가르치는 그 선생님'이었다.
여름방학이 될 즈음 진도가 제법 나갔는데 난 도통 영어가 하고 싶지 않았다. 영어만 생각하면 그날의 충격이 트라우마처럼 살아나 강력한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리가 없는 오빠는 어느 날 나를 앉혀놓고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제 '굿모닝 제인'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한 오빠가 그날 나에게 가르치려 했던 건 'be 동사'였다. 몇 시간을 한숨만 쉬고 점점 큰소리를 내던 오빠는 결국 나에게 be 동사 이해시키기를 포기했고 다시는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렇게 1학년이 끝나고 2학년이 되었다. 2학년 때 영어 선생님은 이제 막 사범대를 졸업하고 우리 학교로 첫 부임해 온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총각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등장하자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 모두들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영어 공부에 불을 켜던 그 시기에 기초가 전혀 없던 나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
시작 순간부터 영포자가 된 채 나는 3학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영포자의 길로 인도한 그 선생님이 아프다는 소문이 돌았다.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니 심각한 병에 걸린 것 같다는 말들이 오갔다. 그 말을 들으니 그동안 선생님을 미워한 게 조금 미안해지기는 했다.
나중에 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한 이유를 알게 된 나는 "에잇~ 쌤통이다"를 외쳤다.
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했던 이유는..
딸.. 꾹.. 질..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딸꾹질병이 나은 후 학교로 복귀하셨다. 일주일간 멈추지 않았던 딸꾹질 때문에 핼쑥해진 선생님을 보니 통쾌해하던 마음이 사라졌다. 이제 그만 선생님을 미움에서 해제하기로 했다.
딸꾹질 덕분입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