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사투리를 안 쓰는 줄 알았다. 전라도 사투리를 보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면 머리가 하얘질 정도로 사투리에 대한 감각이 나는 없다. 억지를 쓰고 하자면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아우르는 출처가 불분명한 사투리가 나온다.
첫 컨벤션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긴 용건이 아니어서 사무실에서 통화를 했다.
"아.. 그래.. 긍게 왜 그랬대.... 알았어 엄마, 끊어~"
전화를 끊고 나니 직원 한 명이 내 앞에서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 웃고 있다.
"왜 웃어?"
"아니.. 사투리.. 사투리 안 쓰는 줄 알았어요."
"내가 사투리를 썼다고? 언제?"
"ㅋㅋㅋ 방금요 ㅋㅋ 긍게.."
나도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입사하고 1년쯤 됐을 때 경복궁에서 야외 행사를 한 적이 있다. 전시행사였는데 관람객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저녁부터 시작해 야간 설치를 했다. 그런데 그날 밤 예고 없이 비가 쏟아졌다. 넘어지지 않게 그토록 부여잡고 애썼건만, 설치해 둔 부스며 무대가 쓰러져 가자 행사를 총괄하던 팀장님은 급기야 "이거 천재지변 맞죠?" 하며 울먹였다.
다행히 새벽에 비는 멈췄고 긴급히 복구작업을 마쳤다. 거짓말처럼 행사 날은 햇볕이 쨍쨍 내려쬤다. 우여곡절 끝에 행사를 마친 우리는 종로에서 뒤풀이를 가졌다. 2차까지 이어진 술자리로 시간은 어느덧 12시가 되었고 택시를 타고 당시 살고 있던 풍납동으로 가려던 찰나, 같이 일하는 직원(사장님 동생)이 혼자 가기 위험하다며 굳이 나를 데려다주고 가겠다고 택시에 올라탔다.
술을 거하게 마신 직원은 택시에서 잠이 들었고 아무리 깨워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풍납동에 도착했는데도 잠에서 깨지 못하는 직원을 혼자 보낼 수가 없던 나는 결국 택시를 돌려 서대문으로 향했다. 그 직원은 사장님과 같은 집에 살고 있었고 사장님이 몇 차례 집에 직원들을 초대한 적이 있어 집을 알고 있었다. 도착해 겨우 깨워 집에 들여보내고 난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아저씨 감사해요. 왔던 길 다시 고대로 가주세요."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아가씨~ 다 왔어요~"
"네..."
눈을 뜨고 서둘러 내리려다 주변을 본 순간,
"아저씨! 여기 어디예요?"
"고대요~"
"고대는 왜요?"
"아가씨가 고대로 가달라고 했잖아요~"
아저씨 감사해요. (왔던 길 다시) 고대로 가주세요.
아저씨는.. '고대로가주세요'만 들었다 ㅜㅠ
난생처음 고대 정문을 구경했다. 새벽 2시에.
출처 한국대학신문
'여기가 연고전을 한다는 그 고대구나...'
'우리 오빠가 가고 싶어 했으나 낙방했던 그 고대구나...'
'그런데 내가 왜? 왜? 여기 있어야 하냐고.. 이 시간에 왜?'
풍납동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앉아있었다.
"이번엔 다른 데 가지 마세요 아저씨!"
그날 밤 나의 택시 드라이브 코스는 종로 > 풍납동 > 서대문 > 고려대 > 풍납동으로 2시간 30분가량이 걸렸다. 나중엔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몸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새벽 2시, 내가 고대로 간 사건은 다음 날 모든 직원이 알게 됐다. 행사를 같이 준비한 협력사들에게까지도 소문이 퍼졌다. 한동안 고대로 가지 마~가 퇴근 인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