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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Mar 03. 2024

나의 살던 고향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유년의 기억

내가 살던 고향은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가 피어나는 산골이었다. 집 앞으로 유유히 흐르던 개울이 있고 철마다 색깔을 달리하는 산들이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시골에서 살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엄마도 아빠도 나에게 말해주신 적이 없다. 엄마가 산처럼 부푼 배를 안고 외갓집에 오셨던 날이 있다. 나는 외할머니의 뒤꽁무니에 숨어 '나에게 엄마'라는 분을 지켜보았다. 외갓집은 동네에서 중앙에 자리 잡은 꽤 큰 집이었고 본채 옆으로 있던 별채에는 방이 여러 개가 있었다. 엄마는 그중 아궁이가 제일 가까이 있는 방에 누워계셨다. 그리고 곧 아기가 태어났다. 나와 동생은 두 살 차이다. 내 기억을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외갓집으로 보내졌던 것 같다.


엄마가 내 어린 시절에 대해 얘기해 주신 것은 내가 많이 울었다는 거다. 내 위로 언니와 오빠가 있는데 우리는 모두 두 살 차이다. 엄마는 언니와 오빠를 돌보며 집안일을 하는 와중에 자주 울어대는 나 때문에 많이 힘드셨던 것 같다. 그렇게 울었다는데 노래를 잘 못하는 걸 보면 '어릴 때 많이 울면 노래를 잘한다'는 말은 그냥 속설인 것 같다.


언니, 오빠, 동생 모두 있는 백일사진과 돌사진이 나는 없다. 우리 집 앨범에 있는 나의 가장 어릴 때 사진은 초등학교 때다. 짧은 커트머리에 마르고 작은 몸, 누가 봐도 시골에서 갓 올라온 걸 알듯한 까맣게 탄 피부를 하고 무표정하게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나의 하루는 대부분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따라다니는 거였다. 산으로 칡을 캐러 가거나 찔래 줄기를 따러 가는 할아버지가 지게 위에 나를 태우고 산을 오르던 기억, 산에 주저앉아 할아버지가  따주신 찔래 줄기를 질겅질겅 씹어먹던 기억, 가득 채워진 지게 위에 앉아 노래를 부르던 기억. 아직도 이때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여름이 되면 집 앞 개울에서 또래 친구들과 물장난을 치기도 하고 미꾸라지 잡기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 미꾸라지들을 왜 굳이 집으로 갖고 갔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부드러운 촉감과 잡으면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 재미있어서였을까? 크고 나서 종종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날 때면 그때의 미꾸라지들에게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나는 추어탕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미안한 기억이 하나 더 있다. 동넷분들은 모두 가족처럼 지냈고 외갓집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어느 날 나와 잘 놀아주시던 할아버지가 외갓집에서 막걸리를 거하게 드신 날이 있다. 외할머니는 나에게 할아버지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오라고 하셨다. 기분이 좋으신 할아버지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비틀비틀 걸으셨다. 할아버지를 따라나서기는 했지만 가로등 하나 없이 칠흑같이 깜깜했던 그 길이 어찌나 무서웠는지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를 못 가고 할아버지를 길에 놔둔 채 그대로 외갓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날 밤 죄책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만난 할아버지는 전날 밤 일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할아버지가 또랑에 빠지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한 후에야 죄책감을 조금 내려놓게 되었다.


한 번씩 엄청난 장난을 치기도 했다. 장난감이라는 게 따로 없었던 시골에서 친구들과 역할놀이를 한다고 집에 있는 이불을 죄다 꺼내어 부엌의 흙바닥에 펼쳐놓고 신나게 놀았다. 너는 엄마, 나는 아빠, 너는 애기. 지금 내가 그 광경을 본다면 기절초풍했을 것 같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없지만 대신 나에게는 자연 속에서 맘껏 뛰어놀던 기억이 많다. 좀처럼 시골을 경험하지 못한 내 친구들이나 요즘 아이들에 비하면 내 유년시절은 다시는 할 수 없는 값진 경험들이 많다. 이 값진 유년의 기억은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종종 내 글쓰기의 소재로 활용됐고 어른이 된 지금도 좌절을 느낄 때면 '쉬어가는 것도 괜찮다'라며 나를 위로해 주는 근원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브런치 신입작가 단풍국 블리야입니다. 브런치 작가에 선정되었다는 이메일을 받고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요. 너무 좋기도 하고 믿어지지도 않아서 한참을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만 했습니다. 늘 꿈만 꾸어오던 글을 쓸 기회가 오다니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앞으로 브런치와 함께 할 저의 이야기, 그리고 다른 작가님들의 글, 저에게는 너무나도 설레는 일입니다. 단풍국에서 전해드리는 블리야 이야기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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