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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Mar 17. 2024

컨벤션기획사를 꿈꾸다

01. 프롤로그

내가 관광학과를 진학했던 이유는 어느 날 신문에서 보게 된 호텔리어에 관한 기사 때문이었다. 지문 한 켠에 난 짧은 글이 호텔리어의 삶을 다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왠지 마음이 끌렸다. 멋진 호텔에서 유니폼을 입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모습을 상상하니 즐거운 일일 것 같았다.


대학에 입학해 관광 경영에 관한 기초를 배우고 세분화된 과목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직업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여행사와 호텔은 내가 생각했던 이상과는 괴리가 있었다. 선배들의 소개로 주말이나 방학 동안 여행사와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실망감이 많이 들었다. 아마도 그때 직업에 대한 실체를 모른 그럴싸하게 들리는 '호텔리어'라는 타이틀에 이끌렸던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나 싶다.


나의 관심은 카지노로 바뀌었다. 카지노 딜러가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게 꽤 그럴싸했다. 문제는 내가 도통 게임의 룰에는 감이 없다는 거다. 나는 아직도 고스톱을 모른다. 공강 시간에 학교 앞에서 자취하는 동기집에 모여 친구들이 고스톱을 칠 때면 나에게 룰을 설명해 줬지만 내 머릿속에는 도통 들어오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교육을 받으며 카지노 기술을 배우기는 하겠지만 게임센스가 없는 내가 직업으로 카지노 딜러를 오랜 시간동안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었다.


어느 날 나는 지도교수님과의 면담을 위해 교수님 실에 찾아갔다. 강의가 아직 끝나지 않아 소파에 앉아 교수님을 기다리던 나는 책장에 있는 책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교수님이 집필하신 여러 전공서적을 비롯해 관광학계에서 유명한 학자들의 책이 다양하게 있었다. 익숙한 제목의 책들이었다.


수많은 책 사이에 낯선 제목 하나가 내 시선을 잡았다. '국제회의'라는 단어에 시선이 꽂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곧 교수님이 오셨다. 면담을 마치고 교수님께 그 책을 빌려가도 되겠냐고 여쭙고 집에 돌아가 그날부터 며칠간 그 책을 읽었다. 가슴이 막 뛰기 시작했다.


책을 교수님께 돌려드리면서 국제회의에 관한 다른 책을 또 빌려왔다. 겹치는 내용들이 있었지만 이전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부분들도 있었다. 당시 국제회의학과 또는 컨벤션학과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고 전공과목으로도 편성돼 있지 않아서 국제회의에 대해 알 기회가 없었던 나는 교수님께 빌려본 책들을 통해 '국제회의기획사' 즉 '컨벤션기획사'의 꿈을 키우게 됐다.


내가 알게 된 것들을 공유하고 얘기를 하다 보니 관심 있어하는 친구 몇 명이 생겼다. 불행히도 당시 IMF 가 오면서 여행사와 호텔 등 관광 업계에도 타격이 컸을 때였다. 고용도 일어나지 않았고 일하고 있던 선배들도 일자리를 잃고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는 날들이었다.


관심 있는 친구들과 소모임을 만들고 우리끼리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지도교수님께 숱하게 국제회의에 대해 물어보고 과목 개설을 요청해 온 우리는 4학년 1학기때 드디어 '컨벤션산업론'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당시 현업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이 교수님으로 오셨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환상을 심어주기 위한 얘기들은 하지 않으셨다. 3D 업종이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하셨고 현실적인 사례들을 많이 들려주셨다. 우리는 조를 편성해 기말고사 평가에 들어갈 행사 기획을 한 학기동안 하게 됐다. 교수님이 주신 아주 기본적인 내용을 토대로 행사 계획을 짜고 예산을 편성해 보는 일이었다. 행사 계획은 우리끼리 아이디어를 내가며 만들 수 있었지만 예산 부분은 힘에 부쳤다.


나는 호텔과 컨벤션센터에 직접 전화를 하고 찾아다니며 예산 편성을 위한 정보를 모아갔다. 현실성이 있는 예산을 짜기 위해서였다. 교수님은 우리의 도전을 높게 평가해 주셨고 기말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수업과 별개로 나는 교수님께 궁금한 것들을 직접 물어보기도 하고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내가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컨벤션에 열정이 많은 걸 아신 교수님은 반가워하면서도 선뜻  보라는 말씀을 안 하셨다. 마른 몸으로 두꺼운 책을 들고 캠퍼스를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이는 제자가 컨벤션 일을 하고 싶다 하니 걱정이 많이 되셨던 듯하다.


교수님이 나에게 해 주신 조언은 늘 같았다.


"이 일은 정말 힘든 일이에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름방학이 되고 늘 해왔던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컨벤션기획사의 꿈을 접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냈다.


'교수님께서 저에 대해 염려하시는 부분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제 체력이 강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직접 부딪혀볼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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