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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Mar 23. 2024

김대중 대통령과 911

02. 초보 컨벤션기획사의 역사적인 첫 행사

제자의 끈질긴 구애를 외면하지 못하신 교수님은 함께 현업에서 일하고 계시던 분에게 나를 추천해 주셨다. 그분은 서대문에 위치한 컨벤션대행사에서 실장직을 맡고 있었다.


며칠 뒤 곧바로 면접을 본 나는 인턴쉽 계약직을 제안받았다. 보수는 100만 원이었다. 나에게는 황금 같기만 한 기회였다. 나 말고도 함께 일을 하게 될 6명의 인턴이 더 있었다. 나처럼 컨벤션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막차를 타게 된 나까지 총 7명이 최종 1 자리의 정규직을 두고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다음 주 나의 인턴쉽은 시작됐다. 내가 처음 맡은 업무는 2001 세계산업디자인대회의 참가자 등록이었다. 나머지 6명은 해외 커뮤니케이션, 행사장 세팅, 학술 업무, 문화 행사, 식음료, 숙박 및 수송 등 각각 다른 업무를 배정받았다.


교수님이 3D 업종이라고 강조하신 대로 첫날부터 야근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전철을 타고 집에 들어가도 컴퓨터에 앉아 리스트를 정리하는 날이 종종 있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는 날에는 집이 먼 동기와 함께 회사 근처에서 숙박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나는 9월에 열리는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현 한국경제인협회) 행사의 등록 업무를 맡게 됐다. 창립 40주년을 맞아 열리는 행사로 정재계 인사들과 VIP 가 참석하는 행사였다. 기대치 못하게 VIP 행사에 투입되면서 난 바짝 긴장이 됐다. 초청 대상자 명단을 받았을 때는 긴장을 넘어 흥분이 됐다. 각 기업의 총수들부터 삼부요인까지 빼곡히 명단을 채우고 있었다.


초청장 발송용 명단을 정리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초청장 봉투에 붙일 라벨을 만들기 위해 이름과 주소, 우편번호를 일관되게 정리하는 일이었다. 정리된 리스트는 액세스 프로그램을 이용해 라벨로 만들었다.


행사에 대한 간략한 개요가 담긴 초청장과 함께 R.S.V.P. 참가 회신서가 나왔다. 초청장을 받은 후 참석 여부를 회신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참석자를 미리 파악해 좌석 배치를 포함한 의전 계획을 만들고 참석자 규모에 맞춰 식음료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VIP 행사에서의 RSVP는 필수다.


불어 Répondez S'il Vous Plaît의 약자인 RSVP는 'Please Reply'라는 뜻을 갖고 있다.

 

행사에 직접 투입되지 않은 직원들까지 합세해 우리는 밤늦게까지 초청장 작업을 했다. 초청장 안에 참가 회신서를 넣고 봉투에 담아 라벨을 붙이는 일이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이 일은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점점 속도가 붙었다. 작업이 끝난 초청장들은 박스에 담아두었다가 다음날 우체국으로 가져가 모두 우편으로 발송됐다.


며칠이 지나자 참가 회신서가 팩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참가 회신서에 담긴 정보는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여러 번 확인해 가며 리스트에 입력했다. 개인 정보가 포함된 내용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참가자 리스트의 보안 유지에 많은 신경을 썼다. 회신을 해 오지 않은 분들께는 직접 전화를 해서 참석 여부를 확인하기도 했다. 커뮤니케이션 상대는 그분들의 일정을 담당하는 기획실장이나 비서 등 참모진들이었다. 더러 초청장을 못 받았다고 하는 분들이 있었다. 비서가 직접 초청장을 받으러 오기도 하고 퀵 서비스 기사를 보내오기도 했다.


참가자 명단을 정리하면서 현장에 나갈 스텝들의 명단도 취합을 했다. 우리 직원들 뿐만 아니라 행사장에서 설치, 운영, 식음료 서비스를 담당할 직원들의 명단이 모두 포함됐다. 참가자 명단과 스텝 명단을 따로 분리해 정리를 했고 일련번호를 매겼다. 그렇게 정리한 명단은 신원조회를 위해 청와대 경호실에 보냈다.


참가자와 현장 스텝의 규모가 정해지고 신원조회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비표 제작에 들어갔다. 비표는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가 참석하는 행사에 사용되는 명찰 또는 식별로 지정된 제작업체가 있다. 디자인이 확정되고 발주가 나간 후 제작업체가 위치한 관할 경찰서에 협조요청공문을 보냈다. VIP에 대한 경호와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에 비표를 수령하는 당일 경찰관이 입회를 했고 인수인계하는 비표의 수량을 확인했다.


신줏단지 모시듯 비표를 품에 안고 회사로 돌아왔다. 손바닥만 한 크기도 안 되는 종이 한 장이 주는 책임감이 엄청 크게 느껴졌다. 비표에 인쇄할 참가자와 스텝 이름의 라벨 작업을 마친 후 출력하는 은 인턴 2명이 도와줬다. 인쇄 작업이 모두 끝나고 작업을 도와준 인턴들은 퇴근을 했다. 나는 최종 명단을 놓고 비표를 순서대로 정리했다. 그리고 공비표(비상용으로 소량 추가 제작하는 이름 인쇄가 안된 여분의 비표)수량을 확인했다.


그런데, 숫자가 맞지 않는다. 명단과 인쇄된 비표를 다시 대조하고 공비표의 수량을 여러 번 확인하지만 비표 2개가 부족하. 인수받을 때 분명 경찰관과 수량 확인을 했고 인쇄 전까지 손 덴 적이 없는 비표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실장님께 전화로 이 일을 보고했다.


비상상황이다. 실장님은 긴급히 청와대에 연락을 취했고 우리는 작업한 비표를 모두 폐기하고 다시 제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디자인도 바꿔야 하고 발주를 넣어도 인쇄에 걸리는 시간, 다시 이름을 출력하는 시간.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어디서 누락된 건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울 자격도 없는 나는 터질 것 같은 눈물을 꾹 참고 그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비상회의에 들어갔다. 최대한 빨리 수습할 방안을 만들어야 했다. 사라진 비표에 대한 얘기를 하자 한 인턴이 "어?" 라며 말을 멈춘다. 우리의 시선은 모두  곳에 고정됐다. '뭐야? 빨리 말해' 내 눈에서 뿜어내는 레이저가 그를 무섭게 쏘아댄다.


"어제 출력하다... 센터가 안 맞아서 버렸는데요.."

"어디에?"

"쓰레기통.. 이요.."


그 인턴은 꼬깃하게 구겨진 비표 2개를 쓰레기통에서 찾아왔다. 그 와중에 찢어서 버리지 않은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안도감에 참았던 눈물이 그제야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행사날이 왔다. 그때까지 제대로 된 정장 한 벌이 없던 나는 새벽에 급하게 동대문에 가서 구입한 옷을 입고 짐을 챙겨 행사장인 신라호텔로 이동했다. 호텔에 도착하니 설치되어 있는 안전검색대와 반듯이 빗어 넘긴 머리에 깔끔하게 떨어진 양복을 입고 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경호관들이 보였다. 비로소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실감이 났다.


안전검색을 마친 후 신분증을 제시하고 스텝 비표를 받았다. 가슴에 비표를 다는 손이 떨리고 있다. 행사장 로비에 준비된 등록데스크에 짐을 풀고 참가자 명단과 비표들을 순서대로 정리했다. 등록데스크에도 배정된 경호관들이 있었다. 참가자가 오면 어떤 절차로 비표가 나가는지 다시 한번 확인을 해 준다.


TV에서만 보던 인사들이 한두 분씩 도착한다. 이만섭 국회의장을 비롯해 정몽구 회장, 곧 이건희 회장이 도착했다. 비표를 받은 손님들은 리셉션이 진행되는 행사장 안으로 안내가 되었다. 참가자들이 거의 도착하고 등록데스크에 비표가 몇 개 안 남은 시점이 오자 경호관들이 현장 정리를 지시한다. 필요한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 모두 등록데스크를 떠나야 했다. 로비가 비워지고 현장은 적막과 긴장감에 휩싸였다.


곧 에스컬레이터에서 몇몇 경호관들의 모습이 올라온다. 이어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보인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환호를 참기 위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눈이 마주치자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김대중 대통령이 손을 흔들어 주신다. 뒤를 따르는 참모진함께 경호관들에게 둘러싸인 대통령 내외는 행사장으로 입장했다.


난 뒷문을 이용해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도면으로 봐왔던 내부가 어떤 모습이고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했다. 좌석 없이 스탠딩으로 진행된 리셉션장에는 수많은 참석자들이 칵테일 한잔씩을 들고 서 있다. 고문으로 다리가 불편하신 김대중 대통령을 위해 계단 대신 완곡한 슬로프가 설치된 무대는 특별한 영상장비 없이 간단한 백월이 설치되어 있다.



책을 보며 컨벤션기획사를 꿈꿔온 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믿기지 않고 가슴이 벅차왔다. 몇 달 동안 준비해 왔던 것들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아직 100분의 1도 경험하지 못한 초보 컨벤션기획사는 왠지 일을 너무나 사랑하게 같은 강한 느낌이 들었다.


행사를 마치고 친하게 지내는 인턴과 우리의 첫 행사를 자축하기 위해 종로에 갔다. TGI Friday에서 치킨 샐러드와 맥주를 들이키며 그날의 짜릿한 경험과 들뜬 기분을 한껏 즐겼다. 기분이 좋으니 맥주가 절로 넘어간다. 한참을 떠들다 TGIF 여기저기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나오는 화면에 시선이 갔다. 실감 나는 영화라며 감탄을 했다. 비행기가 빌딩을 뚫고 들어가는 장면이 너무 사실적이었다. 비행기를 품은 빌딩은 까만 연기를 뿜어낸다. 자막 하나 없이 같은 장면이 반복해서 나온다. 곧 다른 비행기 한대가 옆 건물을 뚫고 들어간다. 


실화였다. 믿지 못할 역사적인 첫 행사를 치른 나의 최고의 , 지구 반대편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한 최악의 비행기 테러가 발생했다.


2001년 9월 11일이었다.


출처 reut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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