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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Mar 31. 2024

사장이 나를 잘랐다

03. 3년 차 컨벤션기획사의 시련

"팀장님, 저 회사 그만두게 됐어요."


예비군 훈련으로 출근을 하지 않았던 팀장은 내 연락을 받고 퇴근 후 강남역에서 보자고 한다. 직원들 모두 침통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나는 퇴근을 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앉아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훈련복을 입은 팀장이 들어온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자초지종을 들은 팀장은 단호하게 말한다.


"블리야씨, 그만두세요."




2001년 첫 번째 VIP 행사 이후 세계산업디자인대회까지 마무리가 됐다. 인턴쉽 4개월 차가 되고 준비해 왔던 행사들이 끝났다. 7명의 인턴들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다. 4개월을 지나는 동안 나보다 더 절실하게 이 일을 해 왔던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저마다 저대로의 노력을 하고 업계에 뿌리내리고 싶은 의욕이 있었을 테다.


단 한 명만이 되는 정규직. 나는 아니었다. 경쟁에서 탈락한 인턴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회사를 떠났다. 정리할 것도 없는 책상을 정리하고 회사를 나온 나는 생각이 많았다. 4학년 2학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학교로 돌아가기에는 내가 간절히 원했던 이 일을 다시 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다른 컨벤션 대행사를 가자니 내 경력이 너무 짧기만 했다.


며칠이 지나고 사장으로부터 보자는 연락이 왔다. 정규직 제안이었다. 보수도 인턴 때보다 높다. 원래 정규직이 됐던 직원과 무슨 일이 있었던 듯하다. 그 아이가 있던 책상은 비워져 있다.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그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다시 일로 복귀해 팀장의 수족이 되어 지난 2년 2개월 동안 일을 했다. 그 사이 대리 승진을 했고 눈먼 돈을 회사에 물어다준 보상으로 목돈을 성과급으로 받았다.


언론 노출이 많았던 사장의 비서 역할까지 맡아왔던 나다. 감정 기복이 많던 사장은 기분이 좋으면 아낌없이 퍼주었다. 그리고 꼭 뒤끝이 있었다. 패턴을 알게 된 후 사장이 친절을 베풀면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컨벤션 일을 시작하고 난 두 번의 가족상을 당했다. 2001년 말 나를 키워주신 외할머니와 이별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다 갑자기 찾아온 심장마비로 쓰러진 할머니는 얼굴 가득 새하얀 비누를 묻힌 채 잠이 드셨다.


막내아들을 너무 사랑하셨던 걸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막내 외삼촌이 아프기 시작했다. 외갓집에서 자란 나를 목말을 태우고 데리고 다니며 아빠처럼 돌봐줬던 멋쟁이 삼촌은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할머니를 만나러 먼 길을 떠나셨다. 당시 나는 한국을 처음 방문한 '틱낫한 스님' 초청행사의 실행 책임을 맡고 있었다. 20일에 걸쳐 행사가 진행됐고 현장을 떠날 수 없었던 나는 외삼촌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지 못했다. 이 일이 두고두고 가슴에 맺혔다.


그리고 2003년 9월 어느 목요일, 세 번째 가족상을 당했다. 넷째 이모부가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뇌종양으로 투병을 해 왔던 이모부는 사이가 돈독했던 외삼촌이 돌아가신 후 의지가 꺾였고 급격히 병세가 악화됐다. 대학 때부터 오빠를 거둬준 이모와 이모부였다. 행사가 막 끝난 시점이어서 사장은 장례를 치르고 오라고 금요일 하루 휴가를 줬다.


목요일 밤부터 장례식장을 지키다 주말에 발인을 마친 후 월요일이 되어 출근을 했다. 아침부터 사장은 기분이 좋지 않다. 금요일 휴가를 주었기 때문에 뒤끝이 있을 거라는 예상은 했다. 출근하자마자 시작돼 한 시간이 넘도록 짜증을 내고 사무실로 들어간 사장은 인터폰으로 전화를 해 대뜸,


"목소리가 왜 그렇게 생겼어? 목소리도 마음에 안 들어."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곧 다시 밖으로 나와 내 앞을 빙빙 돌며 신경질을 이어간다.


"사장님, 저 가족 장례 치르고 왔습니다."


금요일 나에게 휴가를 준 이유를 상기시켜 줬다. 사장은 여기에서 멈췄어야 했다. 계속되는 난도질에 나의 인내심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제가 뭘 어떻게 해 드릴까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그만둬!"

"네, 알겠습니다."


나의 이런 반응을 예상치 못했던지 총총걸음으로 사무실로 돌아간 사장은 잠시 후 이메일을 보내 왔다. 3일 안에 모두 정리하라는 내용이다.




사무실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밖에 나가 담배 한 대 피우고 돌아와 묵묵히 일을 하던 팀장이었다. 누구보다 사장을 잘 알고 있는 팀장은 생각할 시간을 갖지도 않고 곧바로 그만두라고 한다. 내가 없이 앞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본인이 걱정도 됐겠지만 사장의 변덕을 막을 수 없는 팀장은 나에게 가라고 한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을 나와 엮어주고 싶어 수도 없이 구애를 해 왔던 팀장이다.


붙잡지 않는 팀장이 서운하기도 했지만 고마웠다. 컨벤션기획사 2년 2개월. 이직하기 가장 좋은 경력이다.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적기다.


3일 동안 정리할 일들은 아니었다. 다음 날 모든 업무 정리를 마친 나는 인수인계를 하고 회사를 나왔다. 좁디좁은 업계다. 말은 천리마보다 빠르게 퍼진다. 산업디자인대회를 같이 했던 곳에서 11월 행사에 합류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갑작스레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진로 결정을 할 시간이 없었던 차에 온 완벽한 기회다. 수입은 끊기지 않을 것이고 몇 달간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다른 회사를 알아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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