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몸소 느낀 변화들
오늘로 아들이 태어난지 75일이 흘렀다.
야심차게 브런치에 매거진 제목까지 지어놓고, 첫 글을 쓸 때의 의지와는 다르게 시간을 내기가 참 어려웠다. 그러다 최근 회사 동료들이 육아일기를 권했다. 내가 커피마시면서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정말 꼭 초보 아빠 같아서 글을 쓰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나도 잊기 전에 바쁘다는 핑계는 그만하고 틈틈이 기록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간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일들과 몸소 느껴지는 변화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1.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첫 날
산후조리원에서 2주 간 전문적인 관리를 받으며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세 식구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오려다 우리가 미숙한 부모인지라 처가에 일주일 머물기로 했다. 장모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렇게 돌아온 첫날 밤, 밤 12시가 거의 다되어 잠들었다가 아이 울음소리에 처음으로 깼다.
피곤한만큼 깊게 잠들었던지 눈뜨기가 쉽지 않았다. 새벽 세시쯤 되었나 하고 시계를 봤는데 1시 30분이었다. 겨우 한시간 반 자고 일어나는건가 하는 점이 당황스럽고 짜증도 났다. 이제 실전이구나 와닿는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새벽에 아기가 울어서 일어날 수 있다는 설정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요즘은 그렇지 않다. 아기가 코 막혀서 킁킁거리기만 해도 벌떡 일어난다.
2. 사진을 찍게 됨
내가 가진 기종은 아이폰 6s+이다. 사진을 찍으면 꽤 잘나와서 어디 가까운 곳에 나들이를 나가면 괜찮은 사진을 제법 남기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시때때로 사진을 찍는데는 별 흥미가 없었다. 2016년까지의 사진을 쭉 펼쳐보면 연 평균 50~100장 가량 찍는 것 같다.
그런데 아들이 나오고는 달라졌다. 그냥 아무런 특이사항이 없어도 매초 매분이 특이사항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잠을 자는데 입을 벌리면 찍고, 내 품에 잠들고 얼굴이 짓눌려서 찐빵이 되면 그게 또 웃겨서 찍는다. 평온하게 잘 때는 오롯한 얼굴이어서 찍는다. 분유병을 물고 있을 땐 와물와물하는 입모양이 그냥 재밌다. 벌써 짧은 동영상만 스무 개 가까이 되는 것 같다.
사진을 찍게되니 자연스레 관찰하게 된다. 관찰하면서 아이가 겪는 작은 변화도 알게 되고, 그 덕분에 아내와 수준 높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준이 낮은 대화란, '오늘 모유/분유 잘 먹었어?' 하는 것이고, 수준이 높다는 것은 '오늘 몇 미리 먹었어? 어제보다 20 더 먹었네? 꼭지는 스몰사이즌데 20분만에 다 먹은거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적고보니 아빠의 육아참여는 당장 오늘부터 관심 갖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자명해보인다. 내 주변을 둘러보면 요즘 또래 아빠들은 다 능숙하게 잘하는 것 같다.
3. 양가 부모님과 새로운 관계로 진입
공식적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네 분의 관심과 사랑은 예상치 못한 수준이다. 나와 아내를 낳으신 이후 근 30년 만에 새로운 혈육이 등장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나도 낳고 보니 얼추 짐작은 된다. 온라인에서는 카톡방에 사진과 동영상을 끊임없이 공유하고, 오프라인에서 손주를 만나게 되면 정말 눈을 떼지를 않으신다.
아이를 매개로 소통하고 접촉하는 빈도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는데, 한 집에 모이고 대화가 많아지면 끈끈함과 애착이 느는 반면 오해가 생길 확률도 함께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아무 문제 없이 연애 잘 하던 연인이, 둘이 서로 의지해야하는 여행을 떠났을 때 더 깊이 알고 이해하고 대응하는 과정과 비슷한 것 같다. 그 과정의 두번째 단계라는 생각이 든다. 쉽게 이야기하면 시댁과 처가식구로 사소하게 웃고 우는 일이 생긴다는거다.
4. 아내를 이해하기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내는 출산휴가+육아휴직 기간을 1년 조금 넘게 가지게 되었다. 당연히 2달 전까지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 기간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수 밖에 없었다. 막연히 아이를 온전하게 돌보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고, 집에서 유유히 보내는 긴 휴가라고도 생각하는 부분 역시 있었다.
집에서 아기만 돌보는 그 생활은 정말로 힘들다. 사실 나는 매일 아침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주말에 이틀 만 아내와 함께 육아를 하니 그 생활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난지 50일 즈음에 휴가를 내고 5일 간 전방위적 육아에 참여해보니 정말 달랐다.
일단 3일이 넘어가자 내 생활 리듬이 완전히 깨졌다. 매일 새벽에 3~4회 일어나서 모유와 분유를 먹이다 보니, 4일째부터는 11시에 잠들어서 2시에 깨고, 5시까지 잠들지 못하다가 아기 울음소리에 한 번 더 밥을 주고 6시 넘어서 잠을 청하게 되었다. 그 리듬으로 다시 출근을 하니 업무시간에 다시 몸을 맞추느라 피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내의 시간은 세상이 24시간을 적절히 구분해주는 방법과 무관하게 흐르고 있다. 아침에 내가 출근할 때 자고 있을 때도 있고 깨있을 때도 있고, 저녁에도 자고 있을 때도 있고 깨있을 때도 있다. 점심을 먹을 때도 있고 못먹을 때도 있으며, 아점을 먹을 때도 있고 점저를 먹을 때도 있다. 만약 내가 육아휴직을 한다면, 내 리듬에 맞게 어떤 규칙을 만들어 살고 싶다는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마음가짐은 육아에 매우 부적합한 것이다.
더 어려운 점은 늘 집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외출을 하지 못하니, 병원 왔다갔다 하는 일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만 있을 수 밖에 없다. 내가 군대있을 때 외박/휴가를 나가지 못한 최장기간이 88일이었다. 육아는 어쩌면 그보다 더한 상황이다. 군대에서는 영외로 못나가는 것이지만, 육아는 생활관을 못벗어나는 것이다. 물론 가끔 외식을 할 수 있긴 하지만, 소중한 시간이니 만큼 열심히 써야한다. 이런 이유로 아이가 쑥쑥 크는 모습이 아쉬우면서도 얼른 커서 놀러 나가길 바라게 된다.
5. 이 짧은 기간에 또 다음 stage로
위 네가지 생각들은 지금도 유효한 생각이지만, 이 짧은 육아기간을 굳이 구분하자면 주로 50일 무렵까지의 감상이었다. 왜나면 50일 즈음 4번까지 글을 쓰다가 너무 졸려서 발행을 못했기 때문이다. 하루이틀 밤을 패는 건 거뜬하지만 피로가 누적되니 졸릴 땐 정말 졸립다.
아무튼 70일을 넘어선 요즘은 또 다르다. 그 전에는 패턴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먹는 양도 들쭉날쭉하고, 언제 잠들어서 언제 깨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한번 울면 끝도 없이 울때도 있는데 이유를 몰라서 그치지 못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자기만의 패턴도 잡아가고 있으며, 대부분의 표현에 대해 원인을 파악하고 있어서 예측과 대응이 가능해졌다.
또한 하루하루 커가는 것도 보인다. 이제 눈을 마주치면 활짝 웃고(특히 아침에 눈뜨고 웃으면서 인사한다), 옹알이도 끊임없이 하고(대부분 '에구', '우~', '이효'를 제일 많이 한다), 어제부터는 갑자기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색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하더니 샛노란 색과 청록색, 파릇한 색만 보면 함박 웃음을 짓는다.
아기가 아침 일찍 6시에 배고프다고 깨는 바람에 듬뿍 먹게 하고 다시 재웠더니 고요한 여유를 얻었다. 이 틈을 십분 활용하여 얼른 글 하나 발행해본다. 다음 편은 좀 더 타이트하게 쓰고 싶다. 오랜만에 몰아써도 기록을 잘 남길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때그때 느낀 것들이 너무 빨리 휘발되어버려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