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볼 생각하지 말라
2012년 즈음하여 법륜 스님의 책 '스님의 주례사'를 인상깊게 읽은 적 있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딱 한 문장은 기억에 남는데, '덕 볼 생각하지 마라'는 것이다. 결혼하면서 자꾸 배우자 덕을 볼 생각을 하니 욕심이 생기고 화도 나고 그런 것이다, 상대에게 더 베풀 생각을 하면 길가는 아무나 잡고 결혼해도 된다, 뭐 이런 뜻이었다.
물론 내가 이 글귀를 마음에 새겨 결혼을 결심한 것도 아니고, 또 현재의 부부생활에 부처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 이 문구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던 장모님의 한 말씀이 있었고, 그 날 이후 육아참여에 대한 태도가 많이 바뀌었고, 말싸움도 엄청나게 많이 줄었다.
피로도와 가사노동량을 정량화해보라고 한다면, 출산 이전에 100만큼의 부담이 있었다면 출산 후의 그것은 150~170 정도 된다고 생각한다. 두 배 바쁘고 힘드냐? 하면 그건 아닌데, 딱 이 정도의 강도가 매일매일 반복되며, 주중근무 후에 주말특근이 이어지므로 딱히 휴식할만한 틈새시간이 없다. 그래서 꿀잠 한 번 자는게 소원이며,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찌뿌둥한 피로감이 유지된다. 아이가 두 돌이 되기 전까지는 특히 그랬던 것 같다.
아내가 복직하고 난 뒤 진짜 맞벌이가 시작되면, 둘 다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양만큼의 힘듦이 기본적으로 주어진다. 둘다 출퇴근이 지치고, 돌아오면 저녁밥 제대로 먹기도 힘들고, 휴식없이 집에서의 업무를 시작해야한다. 퇴근 후 편의점 야간알바하러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몸이 피곤한 것이 다툼의 시작이 된다. 피곤하다고 싸우는게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그런데 싸우는 단계를 더 쪼개보면 더 유치해진다. 부부 사이 티격태격의 출발은 '아이가 나오기 전의 나'와 '아이가 나온 후의 나'를 비교하면서, 또 '아이가 나온 후의 나'와 '아이가 나온 후의 너'를 비교하면서 시작된다.
(나와 나) 나는 출산 전에 비해 최소 150% 이상의 노력을 더 하고 있다. 때때로 200%를 넘기도 한다.
(나와 너) 그리고 오늘 나는 170%를 찍고 있는데, 너는 140% 힘드네?
(결론) 억울하다. 짜증나는데 설거지는 내일하자. 짜증난 김에 한마디 쏘면 내 마음이 편해질듯.
즉, 나는 예전보다 힘들어졌는데 (물론 너도 힘든 건 머리로는 알겠지만) 내가 더 힘든거 같다, 는게 요지다.
돌이 지나서까지 이런 생각은 나와 아내에게 지배적인 공식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하루, 장모님이 투닥거림을 반복하는 우릴 보시고 한말씀 해주셨다.
'너 안해? 그럼 나도 안해~ 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오늘은 니가 안하니까 내가할게~ 해야 부부지.'
그 날 이후 자와 각도기로 노동량을 재는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또 다른 문제들도 있었겠지만) 다툼은 많이 줄어들었다고 생각이 든다.
위에 끄적인 내용들은 사실 1년 전 서랍에 넣어두고 발행하지 않은 글이다. 오늘은 둘째 태어난 이후 이제 열흘이 지난 시점인데, 그 때의 내가 하나를 이해했다면, 오늘의 나는 두 가지를 더 알게되었다. 이 내용은 다음 글에서 요약해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