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일희일비하지 말자
종종 이력서와 프로필을 업데이트하다 보면, 나의 행적 중 논리적으로 말이 되고 실패하지 않은 구간들을 이어 붙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만이 내 자취였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그런데 가끔 새벽에 멍하게 예전 생각들을 떠올려 보면 내 인생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아쉬웠던 순간 - 다행이라 느껴졌던 순간 - 판단이 흐렸던 순간 - 그게 결국 내 한계였구나 생각되는 순간으로 범벅되어 있다. 그리고 그때 잡지 못했거나 실패했던 기회 덕분에 지금의 나로 연결되어 있다.
20대엔 스스로 걷어찬 복주머니도 있었다. 관심이 정말 많았던 미국 대학원 프로그램에 바로 박사과정을 갈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그보다 더욱더 관심이 많았던 뉴욕의 한 회사에서 인턴십을 할 기회도 있었다. 난 당시 미국에 살아본 경험도 없었는데, 그저 무모하게 대문을 두드린 열정(!)을 좋게 봐준 덕택에 가능한 일이었다.
짧은 미국 환상을 깨고 첫 회사를 5년 간 열심히 다녔다. 그리고 결혼 후 생계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을 갖고 새롭게 세 곳의 회사에 지원하게 되었고, 모두 불합격했다. 한 군데는 여전히 성장하면서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고, 한 군데는 당시에 비해 수십 배 성장한 회사가 되었고, 마지막 하나는 사람들로부터 거의 관심을 잃어버린 서비스가 되었다.
3연패 이후 우연히 네 번째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그 계기로 만난 사람들 덕분에 지금까지 월급 받는 직장인 생활을 지속해오고 있다. 정말 그저 '사람들' 덕택으로 이직과 안착을 반복하며 4년을 보낼 수 있었다. 우연과, 여러 사람들의 배려와, 내 몸부림이 만들어낸 감사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만약 과거의 꼭짓점마다 다른 선택을 했거나 혹은 다른 결과가 눈앞에 주어졌었다면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스쳐간 기회들의 가정은 내가 상상할 수 없으니 비교를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하나라도 쥐었다면 지금의 다채로운 인생은 알 수 없다. 그냥, '그때 그렇게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그게 최선이었기에, 지금의 나로 연결된 것도 결국 최선의 경로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지금의 성취에도 이유 없이 겸손해야 하고, 지금의 실패에도 어쩌면 까닭 없이 안도해야 한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알 수 없는 미래를 따져가며 웃고 울고 할 일인가.
오늘 우리 둘째 재주의 돌잔치를 한다. 엄중한 방역 규칙으로 양가 부모님만 모시고 짧은 행사와 점심식사가 예정되어 있다. 36년 먼저 살아본 아빠가 (꼰대처럼) 앞으로 어떻게 너를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든 생각은, 네가(그리고 물론 첫째 재주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많은 즐거운, 황당한, 아쉬운 그런 일들에 대해, 그런 순간들마다 '돌이켜보면 다 그랬던 이유가 있었을 거야'하고 말해줘야지, 떠올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