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일의 아침들, 2018.12.20~2020.02.19
재작년 겨울, 새로 이직할 회사에 입사를 결정짓고 다니던 회사를 관뒀다. 아내가 복직하고 잠깐의 맞벌이 기간이 있었지만, 곧 내가 한 달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동안 가까이 계신 장모님이 등하원을 도맡아 주셨는데, 새 회사로 출근하기까지 등하원과 육아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직장은 다행스럽게도 자유로운 출퇴근이 잘 정착된 곳이었다. 그래서 아침 등원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고, 작금의 코로나 사태와 다니던 어린이집 졸업을 하기까지 186일의 아침을 분주하게 보냈다. 계산기로 대강 계산해보니 공휴일, 주말, 어린이집 방학, 아파서 못 간 날, 코로나 가정보육을 제외하면 250일 정도의 '등원 가능일수'를 산정할 수 있는데, 여러 날들을 도움을 받아가며 아이와의 아침시간을 책임질 수 있었다.
지나고 보니, 250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등원하고 하원 하는 전국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들에 비하면 '황제 등원'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경험자로서 모든 그들의 일상에 경의를 바친다! 아무튼, 그간의 아침은 나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등원을 시작하고 매일 아침 사진을 남겼다. 매일 아침 아이가 자는 모습만 보고(급할 때는 그러지도 못했지만) 세 시간을 출퇴근해야 했던 아내에게 인증샷을 보내주었다. 그래서 '오늘 어린이집 잘 갔어?' - '응/아니/하...(짜증과 탄식)'으로 서로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몇 시에 일어났는지, 일어나서 엄마를 찾았는지/아니었는지, 깨서 울었는지/웃었는지, 아침밥을 얼마나 잘 먹었는지/안 먹었는지/못 먹이고 나왔는지, 선생님한테 이거 이거 알려줬는지/까먹었는지 이런 류의 자잘한 내용들이었다. 마치 스크럼 데일리 미팅에 가까웠다! (정작 나는 회사에서 한 번도 해본 적은 없다)
그리고 이 과정들을 기록해두면 두고두고 좋을 것 같아 #재주랑아빠랑등원 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려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잊게 될 그날의 소소한 일들, 생각들, 짜증들을 남겼다. 아주 가끔 그동안 느꼈던 육아의 어려움과 '바로 그 당시의' 고민들도 적게 되었다. 엄마가 된 동네-대학 친구들, 아내 친구들의 따뜻한 조언과 공감도 받을 수 있어서 고마웠다.
대부분의 아이는 누가 뭐래도 엄마 껌딱지다. 우리 아이도 다를 바 하나 없다. 퇴근 후 엄마를 반기는 수준은 나를 대할 때와 현격히 다르다. 등원과 출근 과정에서도 말 안 듣고 생떼 부리고 우는 날도 꽤 있다. 이럴 때, 나름의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 때, 허무함과 서운한 감정은 당연하다. 아침마다 이걸 하소연하고 풀기 위해 전화기에 대고 출근한 아내를 조용한 회의실로 불러낸 날도 적지 않다.
그래도 아빠를 찾을 때가 있다. 엄마가 자리에 없거나 혼났을 때 안기는 걸 서먹해하지 않고 찾아온다. 차에서 잠들었다가 낯선 곳에 도착했을 때, '아빠 안아줘'라 말하고 한동안 고개를 가슴팍에 파묻고 있는다. 벌써 4살이 되었어도 뜨듯한 체온을 품고 있으면 참 좋다. 미동도 않고 가만히 있는다. 이런 순간에 아빠들이 갖게 되는 감정은 모두 똑같을 거라고 확신한다. 왜냐면 이 장면을 보던 아버지도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저럴 때 가만~히 있으면 참 좋지~'
사실 이 부분을 적어보기 위해 글을 시작했다. 아빠가 아이에 대해서 엄마처럼 생각하고 엄마처럼 이해하고 엄마처럼 공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작은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큰 도움이 되었다고 칭찬받은 적이 있는데, 고맙기도 했지만 참 기본적이고 당연한 이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안다'는 것의 범위는 매우 폭넓은데, 매일 평일 아침을 부대끼면서 당연히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우선 전날 밤에 몇 시에 잤는지 알고 있으므로 아침 기상시간을 봐서 몇 시간이나 푹 잤는지 알 수 있다. 거기에 어린이집 낮잠 정보를 더하면 얼마나 피곤한 하루일지도 가늠할 수 있다.
아침에 밥을 얼마나 먹었는지 알고 있다(왜냐면 내가 먹였으니까). 그리고 밥과 국을 말아먹기를 요구할 때도, 따로 먹기를 바랄 때도 있으므로, 절. 대.로. 먼저 말아서는 안된다.
좋아하는 옷과 아닌 옷을 안다. 그리고 옷을 안 입을 때 어떻게 꼬셔야 하는지 몇 가지 유효한 방법도 알게 된다(대단한 창의력이 아니라 나도 출근을 하려면 어떻게든 집중해서 묘수를 찾게 된다).
어린이집에 친한 친구와 덜 친한 친구도 알게 된다. 그래서 오늘 OO이랑 잘 놀았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이외에도 등등등. 참 별 것 아닌 전문지식이지만, 돌이켜보면 부부가 대화할 때 아주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대화를 위한 베이스캠프'가 높게 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엄마가 '오늘 왜 이렇게 밥을 안 먹냐ㅜㅜ'라고 할 때, 옆에서 거들기를 '얼마나 먹어야 되는 건데?'라고 되묻는 것 대신 '이 정도면 많이 먹었어~' 또는 '아침에 많이 먹어서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엄마가 '내일 OO이는 어린이집 안 온대'라고 할 때, '그렇구나' 하는 말 대신 'OO이 말고 OO이도 안 온대?'라고 이어가는 것도 큰 차이가 있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풍경과 하나 다를 것이 없다. 신입이든 경력직이든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 대화를 쌓아나가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 회사만이 가진 업무 용어와 기준, 인물정보와 관계도가 머릿속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과 꼭 같다. 매일 회사를 다니다 보면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혹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그런 것들이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처럼, 그저 붙어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많은 부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브런치에 매거진을 개설해놓고 인스타그램에서 놀던 사이, 둘째가 생겼고 이제 세상에 나왔다. 재주 1호와 재주 2호의 케미 기대 중. 몸은 힘들겠지만 마음은 한결 여유가 있다. 엄마와 아이들이 인정해주는 라테 파파가 되기 위해, 또 생각과 고민 정리를 위해 보다 자주 글을 남겨보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
#재주랑아빠랑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