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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Aug 04. 2023

다시, 일하러 갑니다.

굿바이 경단녀

어디서든 무얼 하든 제법 금방 익히고 적응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일에서 자아실현감을 맛보는 사람이었기에, '엄마'라는 직업은 나랑 맞지 않을 거라고 지레 생각했다. 그랬기에 '엄마'가 되기로 결심하기까지 결혼 후에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일을 뒤로 한채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에 전념할 수 있을까? 나에게 묻고 되묻는 시간이 기약 없이 이어졌다. 


어쩌면 병행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었다. 양가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거나, 도우미를 구하거나. 하지만, 내가 '엄마'가 된다면 그런 방식이고 싶지는 않았다. 오랜 고민을 한 이유 또한 경험해 보지 못한 그 세계를 내가 오롯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나의 가능성과 마음가짐을 진지하게 타진해 보기 위함이었다. 나의 결정이 온전히 타인의 삶에 직결되는 문제였기에 그 어느 때보다 신중을 기했다. 


그리고, '엄마'의 길을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나는 '육아'에 잘 적응했다. 아이를 돌보면서 나의 지난날을 어루만졌고, 마음의 창을 넓혀갔다. 아이와 함께 있는 순간순간이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 모든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고 깊게 만들어줬다. 육아를 하며 마주한 예기치 못한 힘듦 또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겼으며, 아이와 함께한 모든 희로애락이 내 삶을 지탱해 주었다.  


다만 '전업주부'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육아와 분리할 수 없는 범위였음에도, 아이에게만 집중할 때와 가사를 할 때는 마음의 온도가 달랐다. 늘 조바심이 났고,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도대체 무엇으로부터의 도태란 말인가..) 아이를 통해 나도 세상에서 빛나는 사람이라는 마음이 들다가도, 집안일을 할 때면 세상에서 점차 흩어지는 존재처럼 느껴지곤 했다. 4년 차 정도면 다른 직무에서는 날아다니면서 신나게 했을 텐데, 당최 가사 기술은 투자 시간 대비 아웃풋이 좋지가 않다. 솔직하자면, 나의 기술이 사실 평타 이상은 쳤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른 보상이 자가 생성이 아니고서야 외부에서 받을 길이 없기에 제 풀에 꺾였을 뿐.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상황에,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고독함으로 매번 솟구치는 '분노'때문임을 고백한다. '나'를 위한 거라고 정신 승리를 해보아도, 그뿐이다. 


고맙게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해 주기에, 살 길을 찾아 나설 용기를 내어본다. (사회적 인정만이 지금의 욕구불만을 채울 유일한 탈출구리라). 육아하는 엄마는 기꺼이지만, 내가 좀 더 잘하는 일을 신나게 해보고 싶다. 신명 나게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일잘러' 소리를 꽤나 들었다.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일이 간절해지면 자신감 또한 비례해서 올라가는 듯하다. 물론, 이 많은 건물들 속 내 자리가 있다면. 몇 개월 간 구직활동을 적극적으로 해보았으나, 그 결과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경단녀'라는 이유 하나로, 일반 회사로의 재진입 기회는 쉽사리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 회사 입장에서는 사회적 단절 기간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 가고 싶지 않겠지.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런데, 그래도, 나 잘할 자신 있다고! 일단 우리 면접이라도 봐요! 내 얼굴 보면 마음이 바뀔 거예요. 일단 만나서 얘기해 봅시다 우리!


말이 단절이지! 한 생명을 돌보고 책임지는 일이 그 어떤 프로젝트 수행 업무보다 난이도가 얼마나 높은지 알고는 경단녀 경단녀 하는 거예요? 


하루에도 마음이 롤러코스트 타듯 요동치다가, 부글부글 끓는다. '그래, 정직원이 어렵다면 파트타임부터 워밍업 해보자!' 그리 생각하니 조급한 마음이 한 풀 꺾여, 다시 희망을 엮는다. 다행히 파트타임은 그래도 두드려볼 기회들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자리가 생겼다. 비록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12시 반까지, 딱 4시간뿐이지만. 


다시, 일하러 갈 수 있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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