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 Aug 05. 2023

스타트업은 처음이지만,

자연스럽게, 쿨하게 

새벽 5시, 아이가 깨지도 않았는데 눈이 저절로 떠졌다. 아주 개운하게. 

거실 커튼 사이로 어슴푸레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아직 해가 채 뜨기 직전, 모든 좋은 기운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기분이다. 출근 준비 해보자!


지난한 구직 활동 끝에 자리를 잡은 곳은 공공 기관에 IT 기기를 비딩 하여 납품하는 스타트업 회사였다. 그곳에서의 업무는 각 기관별 이용하는 입찰 사이트에서 공고를 확인 후, 입찰 견적 작업 및 낙찰된 곳에 IT 기기를 납품하는 일이었다. 직원이라곤 대기업에 다니다 창업을 갓 시작한 지 6개월 된 동년배 사장 1명, 20대 중반의 견적 및 납품 담당 직원 3명, 회계 담당 1명 이렇게 총 5명뿐이다. 근래에 업무가 많아져서 나 같은 파트타임 직원을 충원해서 입찰 보조 업무를 시키는 듯했다. 해외 공사 입찰 업무는 해보았지만, 컴알못인 내가 과연 IT 기기를 잘 익힐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하는 일은 없으니 차근차근 너무 느리지 않게 배워보자 마음먹어 본다. 


첫 출근. 사무실 앞에 도착하니 그 마음 온데간데 사라지고, 이제와 걱정이 새어 나온다. 


그래도 나름 경력이 있는데.. 근데 나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솔직히 쉬기는 오래 쉬었으니까.. 그새 다 까먹었으면 어쩌지? 더군다나 스타트업 회사라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20대던데 37세인 내가 가서 고장 난 로봇처럼 뚝딱거리면 어쩌지? MZ세대랑은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지? 


MZ세대가 외계인도 아닐 텐데 사회생활을 너무 쉬었는지 그들과 인사조차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집에서 쉬다 나온 세상 물정 모르는 아줌마처럼 보이면 안 되는데..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쓸데없는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아이도 낳아서 잘 키웠건만, 취직만 되면 뭐든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전혀 개의치 않았던 의외의 포인트에서 마음이 한없이 작아진다. 


정신 차려! 해외 전시 및 리테일 인테리어 코디네이션 경력만 도합 8년이야. 사람 상대에 기죽을 리 없다고. 쿨하게 나가는 거야! 마치 MZ세대가 친근한 것처럼 말이야!(이 말부터가 이미 나의 꼰대력을 증명하고 있지만..) 마침 오늘은 새벽부터 깨있어서 목이 제법 풀려 있겠다 가장 청명하고 경쾌한 목소리로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된 이제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 


비즈니스의 기본이라는 윗니 6개 오픈과 입꼬리를 힘껏 올리며 나름 통통 튀게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 예' 뿐이다. 낯설어서 대답만 간신히 할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면서도, 그다음엔? 이름은? 내가 해야 하는 업무는 뭐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질문만 줄줄이 회전한다. 10시가 넘어 사장이 오고 나서야 내 소개를 대신하고, 업무 설명이 이어지기 전까지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서 나온 '예'라는 대답 외에 내게 오는 말은 전무했다. 그래..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2021년도 스타트업 사무실에서도 예전 이직 경험을 하면서 느꼈던 가장 어색하고 불편한 첫날의 공기와 냄새가.. 잊고 있었던 그날의 그 기분이 되살아났다. 기억났다, 이 느낌. 6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가시방석 같은 친밀감. 


업무를 전해 주는 태도 또한 호감일리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6년의 굶주림을 배 속에 숨겨왔으니, 무르라고 해도 쉽게 수긍할 생각은 없다. 내가 여전히 일을 할 수 있는지, 실력이 녹슬지는 않았는지, 더 욕심내 보아도 되는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첫 발을 디디는 아이의 모습을 기다려 주는 부모의 마음으로, 나를 기다려 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일하러 갑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