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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 May 29. 2022

다정한 친구를 좋아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만 씁니다.

 훌쩍 떠나는 여행, 산미 있는 커피, 밤에 하는 러닝 등등 좋아하는 것들이야 많다. 하지만 그중에 제일을 꼽자면 역시 내 친구들이 아닐까. 혼자 하는 여행도 좋지만, 여행지 숙소에서 친구와 왁자하게 떠들며 마시는 소주가 제맛이다. 커피는 예쁜 카페를 찾아가 친구와 호들갑을 떨며 마셔야 더 즐겁다. 


 얼마 전 대학생 때 활동했던 달리기 동아리의 OB 러닝을 톡방에 초대를 받았다. 코로나 때문에 오랜만에 모임이라 그런지, 사회초년생, 공시생, 심지어는 강원도에서 공익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까지, 무려 15명의 졸업생이 한자리에 모였다. 



 스물네 살 때와는 달랐다. 뒤처졌다. 숨통을 조이는 KF-94 마스크, 자꾸만 풀리는 신발 끈을, 매일 4시간 가까이 걸리는 통근 시간을 탓하고 싶었다. 결코 내가 나이를 먹어 약해졌다거나, 승부욕이 없고 의지가 약해졌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숨을 크게 쉬어야 해요, 포기하지 마요. 지금 멈추면 더 힘들어요.’  


내 옆으로 바짝 붙은 친구가 턱짓으로 오르막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업힐까지만 뛸게요. 안 멈추고 계속 달려야 해요.’ 



 고개를 끄덕이고 이를 악물고 멈추지 않고 오르막길을 달려 나갔다.


 러닝은 그렇다. 밥 먹듯이 대회에 나가는 아이들이 팀에서 가장 앞에서 뛰거나 가장 천천히 뛴다. 크루원이 완주할 수 있도록, 시작하기 전에 정한 페이스로 꾸준히 달릴 수 있도록, 맨 앞에서 리드하고, 맨 뒤에서 뒤처진 사람들의 페이스를 조절해주기 위해서이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저 숨이 받힐 때까지,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달리기만 하는 지독한 스포츠라 생각했는데, 참 다정한 운동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공통분모인 내 친구들. 세상에는 자체만으로 즐거운 것투성이지만, 그 좋은 것들의 함께 하는 즐거움을 알려주는 내 친구들과 그런 친구들의 다정함을 사랑한다. 


배탈이 난 것 같아 점심을 거르고 일했다고, 그래서 피곤하다고 카톡으로 몇 마디 투정을 부렸더니, 아르바이트하고 있던 카페로 곧장 달려온 친구가 포장된 죽 봉투를 내밀었다.  


정말로 죽만 전해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듯, 친구는 쿨하게 가버렸다. 친구가 돌아가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받은 죽을 바라보았다. 카페 부엌에 선 채로 플라스틱 수저를 뜯었다. 어쩐지 가슴이 울렁거렸다. 내가 뭐라고?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이층에 있는 손님들이 언제 내려올지 몰라 꾹꾹 참았다. 


나를 살찌우는 친구들

진상손님에게 시달린 어느 날은 케이크를 사다 준 친구도 있었다.  


갑자기 왜? 하고 물으니, 친구는 ‘그냥, 망원동 갔다가 네 생각이 났어.’ 하고는 ‘근데, 여기 얼마나 인기 많은 곳인지 알지?’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마지막 남은 케이크 어렵게 산 거를 주는 거라며 생색은 냈으나 결코 힘들어 보여서, 힘내라는 등의 뻔한 위로는 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 친구 역시 케이크만 주고는 가버렸다.  


어디서 들었는데, 궁금해도 묻지 않는 것이 다정함이라 하더라. 배탈이나 진상손님 따위가 아니라 사실 정말로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무엇하나 묻지 않았다. 그저 불쑥불쑥 찾아와 먹을 것을 쥐여줄 뿐.


스물네 살에 처음 만났던 러닝 동아리 친구들은 스물일곱이 되니 하나둘, 자기의 자리를 찾아간 친구도, 또 아직 그렇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다. 이제 겨우 대학교를 졸업한 풋내기들. 얼마나 옛날이 그리웠으면 금요일 퇴근길에 노트북 가방을 맨 채로 한강에 나왔을까. 다들 이전보다 조금 삭고, 많이 지쳐 보였으나 구질구질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다같이, 혹은 혼자서 달리던 한강


 숨이 받쳐 슬슬 한계에 도달했을 때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파이팅!!’을 외쳤고, ‘발밑 조심! 장해물 조심!’ 앞서나가는 리드들은 따라오는 아이들을 위해 큰소리로 위험을 경고했다.


 "파이팅, 장해물 조심."  


그 무리에 섞여 함께 외쳤다. 좋았다. 앞으로도 이런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느낄 만큼, 계속 함께 달리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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