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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 Sep 30. 2023

라따뚜이를 좋아해

내가 첫 회사를 그만둔 이유

왓챠플레이가 서비스하기 전부터, 오로지 영화 리뷰어 기능만 제공하던 초창기 시절부터 ‘왓챠’를 썼다.      

‘이제부터 자기소개 취미란에 “영화”라고 적어도 될 것 같아요!      

영화 리뷰를 적는 ‘평가’란에 위와 같은 문구가 표시될 만큼, 꽤 영화를 즐겨본 편이다.      


엄마는 나에게 종종 묻는다. 누구랑 제일 친하니?      

영화 라따뚜이에 빠져 교환학생 때 몇 번은 시도해 봤던 라따뚜이

‘제일’이라는 말엔 항상 말문이 막힌다. 좋아하는 것들에 관한 글을 써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가장 먼저 쓴 것이 친구일 만큼 친구들을 좋아하는 나지만, 제일을 꼽으라면 우물쭈물한다.      

제일? 그걸 어떻게 고르지?      


막장 드라마의 쓰레기 같은 배우자가 불륜상대와 배우자를 두고 너도, 걔도 사랑해! 라고 외치는 것처럼, 얘는 이래서 좋고, 쟤는 이래서 좋다. 누구 하나를 꼽을 순 없다.     


영화, 책, 음악 등, 콘텐츠를 즐기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인생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거다.      


요즘처럼 스트리밍 사이트가 난립하던 시대와 달리, 내가 어릴 적에는 먼 곳을 이동하면서 영화를 보려면, 몇십분의 다운로드 시간을, 또 몇 십분의 인코딩 과정을 거쳐 PMP에 옮겨 담아야만 했다. 그런 귀찮음을 감수해야했기 때문에 당연히 담을 영화를 고를 때는 신중히, 또 한 번 담은 영화를 새 영화로 바꾸기 귀찮다고 보고 또 보곤 했다. 그 중 하나가 라따뚜이다. 거짓말 안 보테고 한 스무 번쯤 보지 않았을까 싶다.      


어릴 적에 봤던 이유는 만화니까. 재밌으니까. 혹은 그것 밖에 볼 게 없으니까였다면, 지금까지도 종종 잊지 않고 찾아보는 이유는 뭘까.     


라따뚜이를 관통하는 주제는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다. 가장 위생적이어야하는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가장 있어서 안 될 쥐가 요리를 한다는 것이 픽사다운 발칙한 상상이란다.      


라따뚜이 중 주인공 레미가 처음으로 스프를 만드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그 장면에서 ‘souped up’이라는 ost가 흘러나오는데, 이 ost역시 상당히 좋다.      


발길에 채이며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레미가 처음으로 스프를 만드는 장면을 보다 언젠가 문득 울컥한 적이 있었다. 슬픈 장면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당시는 몰랐다.     


즐거운 듯 웃으며 정신없이 몰입하며 스프를 만든다. 심지어 사람에게 들킨 순간까지도 스파이스 한 줌을 뿌리며 요리를 끝낸다. 

왜냐고 물으면 아마, 그래야만 하니까. 그렇게 해야만 했으니까 라고 답하지 않을까.     

 

나이를 먹을수록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내 인생을 책일져야하는 게 나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두렵다.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나를 어린아이로 봐주지 않는 나이인데도, 나는 왜 아직까지 이 모양일까.   

민음사 일력. 하나 하나 뜯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선택의 순간에 놓일 때면 나는 딱 한 가지만을 생각한다.      

나이를 먹고, 만약 당시 나의 이 선택의 순간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렇다 해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까.    


나는 항상 결국 ‘그래야만 하는’ 선택을 하게 됐던 것 같다.      


까페 '텅'. 회사에 그만둔다 말한 뒤 이곳에서 엄마에게 퇴사 사실을 고백했다.

<엄마, 내가 어리석어?>     


첫 회사를 패기롭게 그만두고는 가슴이 뛰었다. 평생을 모범생으로 살아온 내가 무언가 일탈을,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두려움인지 설렘일지 모르는 감정에 가슴이 뛰었다. 불안했던 것 같다.     


네까짓 게 뭐라고. 다들 참고 살아가는걸, 조금만 더 참지. 네가 어디 가서 여기보다 더 나은 처우를 받을 것 같아?    


힐난 받았던 말들이 머릿속을 소용돌이치고, 알 수 없는 근자감에 둥실 떠올랐다가도 끊임없는 자기혐오와 불안감에 바닥까지 치닫는 나날의 시작이었다.      


<왜?>     


엄마가 되물었다.          


<그냥... 남들 다 하는 대로 그냥 살지를 못하잖아.>     


심적으로 지치게 만들었던 환경은 분명했으나, 그것이 인터넷에 도시전설처럼 돌아다니는 ‘블랙기업’들에 비할 바 한지는 모르겠다. 어떤 이가 보면 배가 불러서, 이래서 요즘 젊은이, mz들은 끈기가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엄마가 뭐라 답해줬는지 모르겠다. 대답해 주지않았던 것 같다. 위로를 하였던, 힐난을 하였던 아무 상관 없었기에 이 글을 쓰는 지금 기억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회사를 나가겠다고 말하고 나서 꽤 여러 사람들과 커피 챗을 하였다. 주니어인 나에게는 과분할 정도의 오프보딩이었다.     


<왜요? 왜 그만둬요. 아니... 그만 둘 이유야 많았겠지만... 그런데 그중에 어떤 이유로 갑자기 퇴사를 결정한 거예요? >     


모두가 왜냐고 물었다. 그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왜냐고. 똑같은 것을 물었다. 네가 힘들다는 것은 알았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이냐. 여태 잘 참다가 왜 지금 굳이 그만두느냐는 거였다.      


나는 그 왜냐는 질문을 다섯 번 정도 받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왤까.     


인사팀이라는 이유로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사정들, 알고 싶지도 않지만 알게 되어버린 나쁜 이야기들. 나를 알게 모르게 괴롭게 만들었던 몇몇이들. 막막한 커리어 성장의 길.      


나는 수많은 이유 중에서 결정을 내리게 된 <왜>를 찾았다.      


“...얼마 전에 pt쌤이 저에게 그랬어요. ‘회원님은 늘 화가 나 보이신다고.’요.”     


처음 그 말을 트레이너에게 들었을 땐, 그야 네가 돈을 낸 것에 비해 불성실하게 지도하니까 그렇지. 더워 죽겠는데 에어컨도 아깝다고 안 켜는데 짜증이 안 나겠냐. 짜증 섞인 얼굴로 그를 슬쩍 째려봤었다.      


하지만 왜인지 집에 가는 내내. 다음 날 출근길에, 이어서 회사 생활을 하는 내내 그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랬다. 나는 화가 나 있었다.      


하고 있는 일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더 화가 났었다. 하루가 다르게 불합리한 이유로 피해를 보는 동료들을 먼발치에서 지켜보았다. 결코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팀장에게 퇴사 의사를 밝혔을 때, 팀장 역시 물었다.      


<왜요?>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내가 꺼낸 첫 마디는 이것이었다.      


<하루하루가... 살 얼음장 위를 걷는 것 같아요.>     


내가 당한 일이 아니라 한들, 지켜보는 입장에서 마음이 편할 리가 없지않는가. 이해할 수 없는 조치들을 보면서 한편으론 늘 이런 생각을 했다. ‘다음엔 내 차례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웃고 다닐 수가 없었다.      


처음 회사에 왔을 때, 작년 즈음 술자리에서 어느 동료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정말 좋은 분이신 것 같아요. 회사에 있는 누구와 눈이 마주쳐도 항상 밝게 웃으면서 90도로 인사하시잖아요.>     


기뻤다. 사소한 내 노력을 누군가가 지켜봐 주고 좋게 봐줬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난? 항상 화가 나 

있어 보인단다. 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일까.      


“그래서 그만뒀어요. 점점 제가 제가 아닌 것 같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힘들었어요.”     


동료들과 간 작별 파티 술집. 어항 위 문구가 마음에 들어 술김에 찍었다.


수많은 왜 중에 나는 결국 저것을 골랐다. 부정적인 환경들에 휩싸여 휘둘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가 정말 별로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다. 난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대체 언제부터 사람이 이렇게 후져진거지?      

자각한 순간부터 그것이 너무 분했고, 하루하루가 굴욕적이었다.      


왜 그만두냐고, 수많은 퇴사자들을 붙잡고 나 역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여럿이 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답변은 두 개였다.     


하나는 나와 동갑인 어느 디자이너. 일이 없어 그만둔다고 하니 그렇다면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 후 그만두는 게 낫지 않냐 물었었다.      


조용하고, 회사 워크숍에서 울어버릴 정도로 마음이 여린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대로 있다간 제가 안주할 것 같아요.>     


나는 그날 조금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역시나 디자이너였는데, 그리 깊은 친분은 없었지만 쿨하고 털털한 성격 때문에 내심 속으로 줄곧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한 언니였다.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세 가지가 있어요. 돈, 사람, 일. 이곳은 나에게 그 어떤 것도 충족 시켜주지 못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퇴사를 결심한 것은 이미 6개월 전. 1년이 채워지길 기다렸다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당장 그만두면 돈은? 커리어는? 복잡한 생각들에 뒤엉켜 고여 있는 나에게 쿨하게 떠나는 그녀들의 퇴직은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나는 대체 왜 아직까지 붙들고 있는 거지? 생각 끝에 거기까지 도달했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굴욕적이면서, 매일 화가 나 있으면서. 대체 난 왜? 그리고 얼마 뒤 나는 그대로 팀장에게 퇴사 의사를 밝혔다. 평생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던 나였기에 말하기 전까지는 어쩐지 잘못을 저지르는 것만 같아 가슴을 졸였던 것 같다.      


지금도 문득문득.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 또 아침에 눈을 뜨며 생각한다. 

내가 미쳤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너 같은 주니어가 그만둔 거야?      

후회와 자책 두려움이 휘몰아칠 때마다 나는 그 생각을 이리 끝맺으며 눈을 감거나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냥. 그냥 그래야만 했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견딜 수 없어서. 내 맘대로 했을 뿐이다.      



늦은 밤 예약한 피티 시간을 기다리며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다시 천박해질 시간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은 내일의 우아함이 그 천박함을 가려줄 테니.’     


생각해 보면 난 언제나 어리석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해내야만 직성에 풀리는 사람이었다. 분명 후회할 거다. 돈을 벌지 못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괴롭다. 그렇기에 나의 선택은 어리석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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