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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인 이세린 Nov 10. 2021

03. 마카롱 사장님과 돈지루

당구장에서 디아스포라를 헤아리다






   근무 시프트가 야간으로 바뀌었다. 마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주고 인간의 다리를 얻은 아리엘처럼, 주말 데이트를 사수하기 위해서 밤낮을 바꿨다고나 할까. 나는 인어공주고 땡초는 문어마녀인 건가. 뭐 어쨌든. 인생은 길고도 짧고, 고로 이세린은 주말엔 꼭 데이트를 해야 했는데, 사람은 원하는 걸 다 가질 수는 없기에. 11월의 공휴일이 지난 당구장의 밤은 고요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공 헤는 밤’을 낮에 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었다며, 본격적으로 제시간에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나란 사람 참 긍정적이지? 위로를 해본다. 이차선 도로의 차 소리만 들리는 밤의 적막을 깨고 낙민 아저씨, a.k.a. 마카롱 사장님이 혼자 오셨다. 아무도 없냐? 네, 오늘은 빨간 날 끝나서 조용-하네요. 매일 당구 치다 큰소리로 싸우는 삼총사 친구분들이 있는데 오늘은 휴업이시란다. 삼총사 멤버들에게 연락 돌리기를 포기한 마카롱 사장님이 나랑 한 게임 칠래? 도전장을 내미신다.


   당구장이란 건 원래, 혼자 오신 손님과 한 게임 정돈 같이 쳐줘야 하는 게 국룰인데, 고백하자면 내가 그걸 잘 ‘안’한다. 당구를 못 치기도 하거니와 엄청난 낯가림쟁이라서. 어찌 보면 당구장에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권고사직이 있다면 지각 외의 이유는 그게 아닐까. 이러다 짤리겠다 위기감이 들 때 가끔 큐대를 잡지만 열정이 없고 끈기가 없어서 여전히 실력이 늘지 않는다. 못하는 건 하기 싫은 완벽주의자라서 되도록 잘하는 것만 하고 싶다. 그런 이유로 당구랑 점점 멀어지는 중인 거 같다.


   그게 어제는 간만에 평화롭기도 했고, 그냥 문득 당구가 치고 싶어서. 그럴까요? 했다. 나는 50을 놓고, 낙민 아저씨는 100을 놓고. 빡도 있고 마지막 쿠션도 있다. 이 아저씨 되게 못 치시는데 그래서 나름 박빙이었다. 네 판 중에 한판은 마지막 쓰리쿠션까지 클린하게 마무리해서 이겼다. 매상에 약간의 도움도 됐고 나름 재미도 있었으니,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도 좋고, 우리 사장님이 제일 좋다. 게임이 끝나고 남은 하이볼을 홀짝이며 마카롱 사장님이 말문을 연다. 나도 딸 하나가 있는데. 일본에요? 응, 그르지. 한국말도 할 줄 알아. 다 알아듣고 쓰고 해. 근데 내가 한국어로 말하면 일본어로 대답한다. 이상하지? 집에서도 나는 한국말로 물어보는데, 걔는 일본어로 대답을 해. 딸 생각이 난다며 당구장에 마카롱 사식을 넣어주시던 마카롱 사장님이 이날은 어쩐지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부모와 다른 언어를 쓴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내 배에서 나온 내 새끼가 나와 다른 언어를 쓴다는 것. 벌써 40년도 더 전에, 똑단발의 어린 외동딸을 애월바다에 놔둔 채, 바랑을 짊어지고 홀로 오사카로 떠난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십여 년 전쯤에 도쿄를 찾은 엄마가 언니와 함께 오사카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온 적이 있다. 나는 너무 어릴 때라 사진으로 밖에 기억나지 않는 외할머니가 한편으론 궁금하면서도, 라멘집 알바를 빼기 힘들다는 핑계로 따라가지 않았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입을 모아, 넌 아직 그런 걸 알기에 어리다는 핑계를 둘러댔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스무 살의 아직 어린 막내였고, 기본적으로 그런 집안의 대소사엔 어린 막둥이는 늘 제외되는 법이다.


   언니가 말하길, 할머니는 마치 ‘일본 사람’ 같았다고 했다. 너무 오래 고국을 떠나 있어서일까. 할머니의 말엔 오래된 제주도 사투리와 오사카 방언, 교포의 억양이 묘하게 섞여있었다. 어릴 때 상경해 제주도 사투리는 거의 기억나는 게 없고, 아는 일본어라곤 블루라이트 요코하마의 가사가 전부인 엄마와 그런 할머니 사이에서 더 이상의 통역은 무리였단다. 엄마, 할머니 보니까 어땠어?라는 내 질문에, 엄마는 한참을 일본 목조주택 특유의 다다미 냄새 돼지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돈지루*의 맛을 묘사했다. 어쩜 우리 엄마는, 된장국에 돼지고기를 넣는다니? 느글거려서 죽는 줄 알았어. 세월의 격차가 만들어 낸 그 괴리감이 어쩌면 엄마를 더 쓸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시절 ‘닛코리’라는 한일 교류 서클에서 꽤 오랫동안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니혼과 코리아. 한국과 조선을 모두 아우르는 의미의 코리아. 우리말로 활짝 웃는다, 라는 뜻의 닛코리 웃는다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아니 사실은 별생각 없이 친구 따라 나간 거긴 하지만, 나름 진지하게 서로의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나누는 시간이 이름만큼이나 흥미로웠다. 주에 두 번 정도는 모였던 것 같은데, 어느 날은 한국어를 공부하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독도나 ‘위안부’ 문제나 한국 전쟁, 지뢰 피해자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 중 가장 나의 흥미를 끌었던 건 재일 한국인, 재일 조선인이었다.


   ‘닛코리’ 에는 재일 조선인 선배가 한 명 있었는데, 나는 집요할 정도로 그들의 정의, 소속에 대해서 물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내 할머니가 우리 엄마의 조막만한 손을 붙잡고 현해탄을 건넜다면, 지금쯤 나는 재일교포 3세가 되었을 테니까. 뭐 이런 상상을 아직까지도 비자를 갱신할 때마다 하지만,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랬다면 어땠을까. 매번 힘들게 비자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이런 이기적인 마음에 기인한 호기심이 무례해서 였을까, 아무도 명쾌한 답을 내려주진 못했다. 삼겹살을 굽다가 만난 교포 언니에게도 꽤나 진지하게 물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냥 우리야!’ 우리라고? 언니가 말한, 그 ‘우리’에 대한 말의 의미를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면 내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를 아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리 엄마를 조금은 덜 외롭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강산이 바뀌는 동안 결국 내가 알아낸 건, 금희, 일음, 방미, 애령 같은 그들의 이름이 하나같이 예쁘단 사실이었고, 내면에 무언가 강한 스피릿이 존재한다는 것뿐이었다.






   감상에 지나지 않는 얄팍한 이해끝에 내린 결론은 아마도, 그들이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 조선인이냐에 대한 정의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여권이 푸른색이든 붉은색이든, 이미 그들은 하나의 디아스포라*였다. 이런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가지고 오랜 세월 고민했던가.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집단.* 그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름대로 규정짓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한국사회에서만 있었으면 몰랐을 것들을, 타향살이를 통해 가까이 느낀다. 내가 일본에 사는 한국인이라서 그들에게 어떤 페이소스를 느낀다기 보다는, 어쩌면 내가 이미 디아스포라에 가까워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카롱 사장님네 딸처럼, 먼 훗날 나의 핏줄과 일본어로 소통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 아이가 돈지루를 좋아하는 ‘일본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 돈지루(豚汁) : 돼지고기를 넣고 끓여낸 일본식 된장국. 나도 엄마딸이라 잘 못 먹는다.

* 디아스포라(Diaspora) :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또는 그들의 거주지.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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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디아스포라 기행(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돌베게, 2006

<디아스포라의 눈>, 서경식, 한겨레출판, 2012

<가나에 아줌마>, 후카자와 우시오, 아르띠잔, 2019

<GO!>, 가네시로 카즈키, 북폴리오, 2006  

<하얀 국화>, 매리 린 브락트, 문학세계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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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는 , 매주 N요일 연재(하려고 노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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