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할 게 다음 끼니뿐인 삶

by July

누군가 내게 언제가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밥 먹을 때’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혼자 집에서 밥을 먹을 때이다. 자취를 시작하며 생긴 가장 큰 걱정도 결국 “뭐 먹지?”였다. 매 끼니를 생각하는 일이 귀찮아 아무거나 먹기도 했고, 며칠씩 같은 음식을 반복해 먹어보기도 했다. 그래도 만족감이 가장 높았던 순간은 언제나 먹고 싶은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었을 때였다.


나는 한식 중에서도 된장을 가장 좋아한다. 두부와 애호박, 팽이버섯에 청양고추를 듬뿍 썰어 넣어 팔팔 끓인 된장국을 특히 즐겨 먹는다. 가끔은 된장에 우렁을 졸여 쌈밥을 해 먹고, 고추나 고기에 된장을 찍어 먹기도 한다. 간편식 중에서는 오트밀을 가장 좋아한다. 시간이 없을 때는 물을 붓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고, 여유가 있으면 김치나 참치를 넣어 죽처럼 끓인다. 하나의 식재료에 빠지면 질릴 때까지 계속 먹는 편이라, 요즘 새롭게 빠진 것은 양배추다.


별일 없으면 하루 두 끼 정도를 먹고, 중간중간 간식을 챙긴다. 첫 끼를 먹으면서도 다음 끼니를 떠올린다.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은 대개 “저녁엔 뭐 먹지?”와 “내일은 뭐 먹지?” 정도다. 거창한 음식이 아니어도 간만 맞으면 충분하다. 자취를 하며 알게 된 사실 하나는 내가 밥을 꽤 천천히 먹는다는 점이다. 밥 반 그릇을 먹는 데도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급하게 먹고 나가야 할 때는 차라리 끼니를 거르기도 한다.


위가 약해 자극적인 음식과 과식을 피한다. 자주 체하고 만성위염을 겪으면서부터는 조금씩 자주 먹는 방식이 몸에 맞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번 탈이 나면 하루 일정이 전부 흐트러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 선택은 내게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하루를 유지하는 방법에 가깝다.


문제는 바쁜 일이 겹치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였다. 밥을 챙기는 일 자체가 부담으로 느껴졌다. 코로나 시기, 졸업논문을 쓰느라 집에 있는 계란을 삶아 끼니마다 먹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입던 옷이 눈에 띄게 커졌고, 대학원 시절에 체중이 크게 줄었다. 졸업 후에는 건강하게 회복하고 싶어 운동을 병행하며 다시 식사를 챙겼다. 그때 처음으로 흰쌀밥의 달콤한 맛을 새삼 느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입사와 동시에 그 생활은 다시 흐트러졌다. 회사에 급한 일은 없었지만, 야근은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여겨졌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였기에, 답지 않게 상명하복을 실천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몸은 금세 신호를 보냈다. 점심시간이 점점 부담스러워졌고, 주말 근무까지 이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동시에 지쳐갔다. 병원에서는 만성위염 진단을 받았고, 원인은 스트레스였다. 끼니를 놓치면 하루가 아니라 삶 전체가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요즘의 나는 하루의 가장 큰 고민이 음식뿐인 날들을 보내고 있다. 제때 먹기 위해 알람을 맞추고, 빠뜨리지 않고 끼니를 챙기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대견하다. 블로그에는 내가 먹은 식사 사진을 종종 올린다. 정성껏 차린 상은 아니어서 친구들은 가끔 부실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충분하다. 잊지 않고 먹고, 무탈하게 소화시키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나는 잘 살고 있다.


가끔은 밥 걱정 말고는 다른 걱정이 없는 게 어쩐지 허전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는다. 지금 고민이 끼니뿐이라면, 나는 별 탈 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 때문에 한 끼를 미루던 지난날들보다, 지금의 이 단순한 하루들이 훨씬 더 행복하다. 걱정이 끼니뿐이라는 건, 지금의 삶이 잔잔한 파도 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이전 05화백수가 뱉는 주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