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머리가 복잡해서 시작한 글쓰기였는데, 매일 쓰다 보니 생각의 곳간이 거진 비었다. 이제 머릿속엔 ‘점심 뭐 먹지?’와 ‘저녁 뭐 먹지?’뿐이다. 일을 안 하니 제일 번거로운 건 밥을 차려 먹는 일이다. 회사에 다닐 땐 거의 식사를 회사에서 해결했는데, 집에 있으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식재료를 사놔도 금방 동이 나고, 식재료보다 식수가 줄어드는 속도를 보면 ‘내가 진짜 백수긴 백수구나’ 싶다. 내가 물을 이렇게 많이 마시는지도, 휴지를 이렇게 많이 쓰는지도 몰랐다. 돈이 없으면 오히려 돈이 더 드는 순간들이 생긴다.
직장에 다닐 때는 식비나 생활비에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그만두고 보니, 식당에서 밥 한 끼 먹으면 만 원이 훌쩍 넘고, 생필품 하나하나가 꽤나 귀한 존재라는 걸 새삼 알게 된다. 회사를 다니는 건 1+1+1 같은 일이다. 월급도 주고, 밥도 있고, 물과 휴지도 늘 그 자리에 있다. 그래서 다들 회사를 붙잡고 사는 걸까.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만큼은 덜 고민해도 되니까.
나트륨이 잔뜩 들어간 점심을 먹은 지도 오래다. 회사에 있을 때는 매일 먹을 수 있었는데, 그 짠맛이 가끔 그립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운동도 꾸준히 할 수 있고,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마음껏 보고, 일본어 공부도 하고, 봉사도 나가고, 자격증 공부도 한다. 지금처럼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생겼다. 시간의 속도가 전보다 조금 느려졌고, 그 덕에 하루를 내 손에 쥐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회사를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월급일 것이다. 반복되는 경제 활동과 더불어 매달 들어오는 월급. 이게 있어야 비로소 사는 기분이 든다. 가고 싶은 공연, 갖고 싶은 소품, 보고 싶은 전시 앞에서 망설이지 않게 하는 힘. 그게 월급이다. 통장을 스쳐 가는 돈이지만, 다음 달의 나를 신뢰할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장치이기도 하다.
백수가 바라는 월급의 조건은 의외로 소소하다. 연봉에 퇴직금, 식대, 교통비, 야근수당이 포함되지 않으면 좋겠다. 늘 포함된 급여 구조의 회사에 다녔는데, 막상 계산해 보면 최저시급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 생활이 빠듯할 때가 많았다. 월급과 노동 시간이 비례했으면 한다. 나는 늘 그 반대인 환경에서 시간을 보내왔다. 그래서 내 쌀통과 생필품은 한 달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집에서 밥을 먹을 틈조차 없으니, 살림이 줄어들 기회도 없었다.
조급했던 작년과는 달리 언제 이렇게 쉬어보겠냐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내 나이 이제 서른 중반을 향해 가는데, 어디든 내 자리는 있겠지 싶다. 앞으로의 삶이 대부분 일로 채워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수록, 지금 이 시간은 더 귀해진다. 모아둔 돈이 거의 다 떨어져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회사에 다닐 때보다 훨씬 마음이 가볍다. 나를 쪼아대는 업무도 사람도 없고,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런 삶을 접어두고 다시 성과를 요구받는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우습게 느껴진다. 바라지 않던 방식의 삶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내 모습은, 멀리서 보면 희극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할 줄 아는 것 중 당장 돈이 될 만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나는 다시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쪽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틈틈이 작은 기쁨을 챙기고 월급에 기대어 살면서 알뜰하게 돈을 모아 언젠가는 내 몸을 온전히 뉘일 집 하나쯤 갖고 싶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오늘의 백수 생활을 야무지게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