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마치 꿈을 꾼 듯, 일주일 동안 경험한 타슈켄트의 일상은 유럽의 그것과 너무나도 달랐다. 기온이 뚝 떨어진 꽃샘추위의 독일을 뒤로하고 6시간을 날아서 도착한 갑자기 한여름 날씨의 우즈베키스탄.
왠지 내 어릴 적 기억 속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90년대 초 서울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거리들은 지금껏 여행한 어느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정겨운 분위기와 하나같이 선한 사람들. 알면 알수록 궁금해지는 이곳의 이야기들은 분명 유튜브에서 알려주는 실크로드의 역사 그 이상이다. 역사적인 명소를 찾아다닐 필요 없이 그냥 그들의 보통의 일상이 큰 영감을 준다. 길 위에서, 상점 안에서, 사람들 사이로 지나치는 하나하나가 새롭고 그래서 큰 자극들을 받는다.
거리의 간판들과 정감 넘치는 재래시장과 동네 음식점, 아이스크림이 담긴 스티로폼 가판대와 낡은 보도블록, 레트로한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수동으로 창문이 열리는 택시.
말 그대로 빈티지가 일상인 그곳은 때로 오래된 것을 흉내 내는 여느 선진국들의 일상을 촌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타슈켄트에서 차로 한 시간만 나가면 우즈베크 사람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 느낌의 아름다운 대자연이 펼쳐진다. 사실 타슈켄트는 대다수의 우즈베크 사람들에겐 너무 정신없고 공기 안 좋은 답답한 도시이기도 하다. 조경이 잘 가꾸어질 여유도 없거니와 큰 녹지를 유지하기엔 너무 어려운 날씨를 가졌다. 빽빽이 들어선 자동차들이 뿜는 매연과 질서 없이 늘어선 건물들 사이에서 그들은 열심히 살아가지만, 늘 마음 한켠에는 아름다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겠지. 타슈켄트 남동쪽 소콕 이라는 지역으로 우리를 안내한 택시기사님도 단순히 장거리 운행으로 돈을 버는 것 보다도 하루종일 그곳을 만끽할 수 있음에 즐거워하셨다. 그곳으로 가족들과 휴가 왔던 사진들을 꺼내 보여주시며 아주 만족해하셨다. 구석구석 우리를 안내하면서 입가에 웃음이 끊이지 않으시던 참 순한 아저씨. 정말 소박하지만 소중한 기억.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어서 의미가 깊은 여행이 되었다.
우즈베크의 종교적인 색채도 나에겐 큰 배움을 주었다. 눈만 빼고 모든 걸 가린 무슬림 여성들과 과감한 노출의상의 신여성들이 아무렇지 않게 섞여서 걸어 다니는 곳을 처음 경험했다. 이슬람 사원들도 유럽의 여느 교회들처럼 쉽게 드나드는 문화적 공간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극단주의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진짜 이슬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적이고 온화한 것이었다. 이맘 사원은 또 새로운 건축적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시장 가판대에 서서 음식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환영의 의미로 튀김을 대접해 주는 현지인들이 있는 곳. 영어 한마디가 통하지 않아 친절히 구글 번역기로 여행정보를 알려주는 택시기사들이 있는 곳. 여기서 나는 처음으로 이슬람국가에 대한 종교적 편견이 깨졌다. 단순히 친절하거나 순수한 것이 아닌, 평범한 행복을 아는 어쩌면 가장 특별한 여유로움을 살아가는 곳. 나에게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한 서유럽과 동아시아, 그 둘 사이를 잊는 중앙아시아 문화의 경험은 어쩌면 너무 늦게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여행이 가져온 선물은 단연 우즈베크 전통문양이 빽빽하게 들어간 접시들, 그리고 빈티지 시장에서 건진 러그와 다양한 앤틱 오브제들. 오랜 시간 간직될 이 물건들 속에 수많은 기억들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