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연말정산이 도대체 뭔데
연말정산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포털사이트에 따르면, 연말정산이란 매월 소득에서 원천 징수한 소득세에 대하여 연말에 그 과부족을 정산하는 일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급여가 200만 원인 사람이 매달 20만 원의 소득세를 냈다면, 연말에 1년 동안의 급여와 성과금, 각종 수당 등을 합한 보수와 매달 낸 소득세를 계산해서, 급여에 비해 소득세가 과하게 징수됐다면 환급해 주고, 부족하게 징수했다면 환수하는 걸 말한다. 단순히 소득과 세금만을 계산한다면 담당자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으나, 세금 공제를 받기 위한 여러 가지 공제 요건들이 존재했다. 공제 조건들이 다양한데다 1년에 한 번만 하는 업무라 근로자에게도, 회계·세무 비전공자인 나 같은 담당자에게도, 매해 봐도 초면인 것만 같은 일이기도 하다.
사실 행정실에 일하면서 연말정산과 처음 만난 건 아니다. 전 직장에서도 매년 하던 일이었다. 다만 그땐 담당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안내에 따라 무지성으로 처리했던 기억만 있다. 서류를 보내라면 보내고, pdf를 등록하라고 하면 했다. 그러면 내가 할 일은 끝이었다. 아, 제출 내용이 맞는지도 확인해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봐도 모르니 그냥 맞는다 치고 넘어갔다. 그래서 급여 업무를 맡고부터는 연말정산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있었다. 선배들한테 연말정산에 대한 푸념을 들으면서, 걱정은 점점 두려움으로 변했다. 그에 대한 지식이 아예 없으니 다가오는 전 직원의 연말정산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무서움이 앞섰고, 좋은 사람도 돈 앞에서 얼마나 예민해지는지 여러 번 경험했기에 연말정산이 다가올수록 도망치고만 싶었다. 생각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성향이라, 연말정산 전에 빨리 그만둬야 하나 싶기도 했다. 물론, 극단적인 것 치고 겁이 많아서 한 번도 극단적인 결말로 치달은 적은 없지만.
상위기관의 회계 마감이 다가올수록, 결산 공문이 쏟아지는 탓에 연말정산은 우선순위에서 잠시 밀려났다. 아직 연말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그때 알아봐도 되겠지 싶었다. 그러나 언제나 방심이 문제였다.
“주무관님, 연말정산 교직원 교육자료 만드셔야 할 것 같은데요.”
“네, 네? 연말정산이요?”
“방학 전에 안내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실장님 말씀대로 방학 땐 교사들이 출근하지 않으니, 그 전에 안내가 되면 좋긴 한데…. 아직 12월도 안 됐는데요…? 그렇지만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아, 넵!”
국세청에서 제공하는 연말정산 안내서를 본 적이 있는가. 온갖 기호들과 알 수 없는 용어들로 빼곡한 3,400여 페이지의 안내서는 보기만 해도 갑갑했다. 순수보장성보험은 뭐며, 장기주택저당차임급은 또 뭔지…. 도대체 내가 읽고 있는 게 한국어이긴 한 건지…. 지침이나 매뉴얼을 보고도 이해가 안 갈 땐 역시나 포털사이트가 최고였다. 이미 나와 같은 질문을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러 전문가 선배님의 설명이 수두룩했다. 교육행정직 선배님의 블로그에는 연말정산 업무 후기들까지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전임자의 연말정산 자료를 기초로 정보의 바다에서 얻은 여러 정보를 간추려서 연말정산 교육 자료를 만들었다. 연말정산 간소화 시스템이 언제 열리는지 공지도 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대망의 1월. 연말정산이 시작되었다. 내 것을 미리 해보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선생님, 저희 아버지가 정년퇴직하시고 잠깐 다른 곳에서 일하셨는데 인적공제가 될까요?”
“인, 인적공제요? 일을 하셨다고요? 잠시만요!”
문제는 내가 1인 가구였다는 거다. 연말정산 Q&A에서 별별 사례를 보며, 에이 이런 경우가 흔하겠어!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비범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흔했다. 연말정산에서 인적공제는 가장 세금 공제가 높아서, 이와 관련된 가장 질문이 많았다. 간신히 인적공제의 늪에서 빠져나오면, 다음엔 의료비 공제의 늪이 기다리고 있었다. 몇몇 공제의 늪을 건너면 마지막으로 비교의 늪이 최종 보스처럼 서 있었는데, 여기서 비교의 늪이란 이런 거다.
“주무관님, 저 사람은 저랑 소득도 비슷한데 왜 환급액이 높아요?”
“선생님, 의료비는 제가 더 많은데 왜 저 선생님은 환급받고 저는 돈을 토해내야 해요?”
“주무관님!”
“선생님….”
학교에서의 연말정산이란 대상자가 국세청 pdf 파일을 받아, 학교 회계시스템인 나이스에 등록하면 끝이다. 국세청 pdf 자료에는 없지만, 세금 공제가 되는 자료는 직접 등록해서 증빙서류를 행정실 급여 담당자에게 제출하면 된다. 담당자는 연말정산 서류를 받아주고, 기본적인 자료를 검토해준다. 예를 들면 부모님의 소득이 있는데도 인적공제로 올라가 있거나, 부녀자공제 대상이 아닌데 체크 되어 있거나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뒤에 자료를 국세청에 신고만 하면 끝이다. 이후 전문 세무사들이 자료를 검토한다. 이 말인즉슨, 나는 세무사가 아니며, 세무직 공무원은 더더욱 아니라는 말이고, 정말 단순하게도 서류를 받아 기한 내 신고하는 업무를 하는 사람일 뿐이란 거다. 물론 다른 분들보다 약간, 아주 약간, 그러니까 종이 한 장 정도만큼 더 알 수도 있겠지만, 누구는 왜 더 받고, 누구는 왜 덜 받고, 누구는 왜 돈을 토해내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고, 이유는 셀 수 없이 다양하기 때문이며, 담당자가 무언가를 추가하거나 삭제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인 데다, 개인정보라 누설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몇 사람들이 의심하듯 내 호불호에 맞춰 누구는 돈을 더 주고, 누구는 돈을 뺏을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이런 사정을 설명해도 매번 누군가는 말한다.
“왜 나는 돈을 이렇게 많이 내요?”
“세금 적게 내는 방법 있어요?”
“아니, 왜 작년이랑(혹은 다른 학교랑) 다르지? 뭐 건드린 거 아니에요?”
처음에는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에 성심껏 대응하면서, 공격적이거나 무례한 사람을 만나도 꾹꾹 눌러 참기만 했다면, 이제는 머리 좀 굵었다고 대놓고 말한다.
“저도 몰라요. 제가 건드린 건 하나도 없거든요. 연말정산 안내서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