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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쉐친구들 Apr 28. 2020

지속가능한 가치로 되살아난 시장,
버로우마켓 2

[마르쉐 영국연수기_13]

* 2019년 8월에 다녀온 영국 연수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버로우마켓에 대한 강의 및 질의응답을 마치고, 대런과 함께 마켓을 둘러보려 회의실을 나섰다. 계단으로 내려가다 보니 한쪽 벽에 버로우마켓의 대표 품목인 차, 치즈, 빵, 영국 최초 자연 방목 돼지 등의 생산자와 시장 관리자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여러 사람이 같이 만드는 마켓이니 마켓 출점자들로 구성된 대표 회의도 있어서 매달 1회 대런과 함께 회의하며 의견을 내고 개선해나간다고 한다.


밖으로 나오니, 점심때가 되어 사람들이 꽉 찼다. 인파를 비집고 다니며 대런은 버로우마켓의 대표적인 부스들을 소개해주었다. 마켓은 사람들의 전체적인 동선을 고려한 세밀한 디자인을 거쳐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앞쪽은 유럽 먹거리가 모여있는 구간이고, 그 안은 국제적 음식을 파는 구간이다. 버로우마켓은 26개 정도 되는 빌딩에 걸쳐 있다는데, 인파를 뚫고 따라다니다 보니 어디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크다. 마켓을 둘러싼 건물 곳곳이 <브리짓 존스의 일기>,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등 유명 영화의 촬영지이기도 하다고.



재밌는 것은 이 큰 마켓 안에서 소리 지르며 호객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가한 가게는 딱 두 군데인데, 과일가게와 생선가게라고 한다. 옛날부터 있던 가게들이라 오래된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대런은 미슐랭 셰프들이 찾는 비싼 과일가게부터, 이렇게 큰소리로 호객하면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전통적인 과일가게까지 이 모든 부스들이 버로우마켓의 퀄리티와 다양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버로우 마켓 안에서 정기적인 파머스마켓은 운영하지 않지만, 디저트 등을 주로 판매하는 그린마켓 Green Market 안의 일부 매대를 농가에 내어준다고 한다. 농사짓기에도 바쁜 농민에게 높은 품질과 동시에 상설시장 출점을 요구하긴 어려우니 주중에 며칠만 나오는 농가 출점팀의 매대는 평소에는 비워 둔다고.



다양한 채소와 과일, 해산물, 축산물, 유제품과 육가공품 등 온갖 먹거리 중에서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곳은 버섯 가게! 엄청 비싸지만 최고의 질을 자랑하는 버섯이라는 대런의 말을 듣기 전부터 우리는 이미 눈으로 먹고 있었다! 다양한 품종의 버섯들은 그 색과 모양과 향으로 벌써 풍부한 맛을 전해주고 있었다.


마켓 안에는 정육점이 다섯 군데 있는데 전통적으로 키운 소의 모든 부위를 판매한다고 한다. 이것이 한국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영국에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사례라는데, 보통 부산물은 사료로 쓰이기 때문이라고. 이렇게 모든 부위를 다 사용하는 것이 기존 영국의 식문화에서 혁신적인 변화라는 것은, 연수기 후반부에 소개할 레스토랑과 농가의 협업 사례에서 이야기하려 한다.



여러 팀을 둘러보며 시장 전체를 돌고, 마지막으로 유기농 견과류 버터를 만드는 신규팀 부스에 들렀다. 대런은 여기 비건 버터는 정말 맛있다며, 이렇게 맛있는 제품을 만들지만 판로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작은 생산자들에게도 마켓이 판매의 기회를 마련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한국의 작은 먹거리 생산자들과 비슷한 입장인 이 팀의 상황이 궁금했다. 팀의 대표는 1년 정도 파머스마켓과 연결된 일을 하다가, 2년째 버로우마켓에 참여 중이라고. 지금도 계속 실험을 거쳐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는데, 허가받은 생산 설비를 직접 갖추지는 않았고 지자체나 기업이 운영하는 유료 공유주방 등을 이용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이런 공유주방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작은 생산자들이 자기 속도대로 안전하게 실험하며 길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마르쉐도 이런 생산자들과 계속 함께해나가는 꿈을 꾸고 있다. 



이렇게 큰 마켓이지만 대런은 공간 부족이 마켓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하며, 마켓 끝쪽의 널찍한 이벤트 공간을 소개했다. 이곳은 마켓의 중요한 가치인 지속가능성을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기둥의 통로로 빗방울을 모아 수직으로 걸린 화분들에 바로 물을 주고, 카페의 커피 찌꺼기로 만든 퇴비를 주는 이곳에 보리 맥아를 키워서 매년 버로우마켓 맥주도 만든다고 한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이 많으니 공간이 좁을 수밖에! 이곳에 오픈키친도 만들어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는데, 그날도 셰프가 와서 마켓의 식재료로 어떻게 요리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시식하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마켓과 협업하는 셰프들은 1주에 3회 정도 레시피를 공유하고 총 9개 레시피를 마켓 매거진이나 온라인채널에 공유한다. 그때 각 셰프들의 계정을 바로 연결해서 보여주는데, 셰프들도 식재료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레시피와 함께 그 식재료를 키운 농부의 가게도 공유한다. 대런은 셰프들과 마켓 생산자들의 협업으로 홍보와 모객을 서로 돕는 방식이 중요하다며, 마케팅의 주요 원천은 사람들이 마켓에 와서 대화하고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시장 안팎에서 셰프들, 농부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과 협업을 진행해온 마르쉐 역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기도 하다. 작은 농부들과 함께하고 싶고, 꾸준히 실험하며 성장하고자 하는 셰프들이 농부들의 생산물로 요리와 가공품을 같이 만들고 레시피를 나눈다. 모객만큼 중요한 것은 이렇게 기꺼이 서로 돕고자 하는 친구를 만드는 것, 커뮤니티를 넓혀가는 것이다.


우리는 성심껏 설명하고 답해준 대런과 감사의 인사를 나눈 후, 버로우마켓 입구의 한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거리에 차려진 테이블에 앉았는데 마침 비가 떨어지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해산물 요리는 신선하고 맛있었다. 


이렇게 버로우마켓 투어도 마치고 다음은 마켓에서 도보 15분 거리인 메르카토 메트로폴리타노 Mercato Metropolitano 로!



가기 전에 잠시… 여행 이야기 좀 하고 갈게요.

시장을 만드는 사람들이 시장을 보러 갔으니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만 다닌줄 알겠으나... 사건 사고란 제철이 없고, 늘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야 제 맛인 법.


앞서 이야기한 서스테인과 미팅 후 약속된 일정이 없었던 오후, 우리는 해크니 지역을 걸으며 브로드웨이마켓Broadway Market으로 갔다. 이곳에서는 매주 토요일에 다양한 먹거리부터 빈티지 소품까지 100여 팀이 참여하는 오래된 마켓이 열린다고 하는데, 예술가가 많은 이 지역 주민들이 사랑하는 곳이라고 한다. 우리는 평일 오후에 방문해서 마켓은 못 봤지만, 길가의 작은 가게들을 구경하며 여행 느낌도 좀 내고, 긴장을 좀 풀어보자 싶었다. 다 큰 성인들끼리의 집단생활은 뭐랄까 세심하고 절묘하게 피곤한 구석이 있었으니.... 타지의 낯선 환경이 주는 중압감을 깔고, 서로 자유와 배려 사이 적정선을 찾기 어려워 음식 하나 주문하다가 지쳐버리고 마는 그런… 아무튼 그런 것들을 좀 풀고 각자 흥을 좀 끌어올려 보는 시간이었달까.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길가에 테이블을 내어놓은 펍들과 작은 가게들만 보고도 흥이 오르기 시작했다. 각자 좋은 시간을 만끽하자며 일부는 카페로 일부는 산책길로 흩어진 후, 거리를 걷다가 데이빗 보위의 얼굴이 그려진 벽화를 만났다. 전에 잠깐 런던에서 만난 다양성을 이야기했었는데, 그는 다양하기로 말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영국의 뮤지션이다. 끝없는 실험으로 수많은 장르와 스타일을 시도하며 록 음악계의 카멜레온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는 노래 하나로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데에도 일조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그의 음악을 잘 모르는 내게도 그는 영국을 생각하면 앞서 떠오르는 것 중 하나다. 그리고 이제는 그를 떠올리면 바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헬리콥터 씬에 나오던 노래 Space Oddity를 흥얼거리게 된다. (비록 통신은 끊겼지만, 우주를 떠다니고 있을 것 같은 그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영국의 선물 같은 이 벽화를 발견한 날, 날씨가 무척 좋았고 많이 걸었다. 브로드웨이마켓의 상점에서 저렴하고 맛있는 햄과 와인을 사서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공원, 런던필즈에서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런던의 명물 빨간 이층 버스의 앞자리에 앉아 관광객 기분도 마음껏 냈다. 참 행복했는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래요, 그 불행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네요.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 마르쉐친구들 쏭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를 운영합니다. 

먹거리를 중심에 두고 삶을 연결하는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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