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쉐 영국연수기_5]
*2019년 8월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현재 농부시장 마르쉐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5명이다. 이제껏 4~6명의 규모로 일해왔고, 점점 더 시장이 많아지고, 비영리인 시장 사업을 위해 그리고 재미있을 것 같은 (사업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 중에 하나다. 즐거워야 한다.) 외부 사업들도 하다보니 일상 업무가 밀린다. 메일에 제때 답장을 못하기 일쑤고, 연락을 받아도 바로 답을 못하기 일쑤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했다. 런던파머스마켓London Farmers Markets(이하 LFM)과 미팅 약속을 잡기가 정말 어려웠지만,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달까.... 바쁘겠지.. 그 많은 시장을 운영하려면... 게다가 시차가 엄청 나니까! 암!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그리고 드디어 LFM의 대표 셰릴Cheryl Cohen을 만난 날, 우리는 잃어버렸던 큰언니를 만난 심정으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같은 마음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런던파머스마켓은 20여년 전에 시작되었다. 한국보다 10여년 앞선 셈이다. LFM 조직은 보증책임주식회사(Company limited by guarantee)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1999년 푸드 칼럼니스트 Nina Plank(니나 플랭크)에 의해 설립했고, 현재는 초대 멤버였던 셰릴이 대표를 맡고 있다. 런던 최초의 파머스마켓인 이즐링턴Islington 파머스마켓을 비롯하여 Notthing Hill, Blackheath, Peckham, Swiss Cottage 등 현재는 22곳에서 정기적으로 파머스마켓을 운영하며 총괄하고 있다. 전체 출점팀은 200여 팀에 이르며, 각 파머스마켓의 이름은 마켓이 열리는 지역의 이름을 붙인다. 홈페이지에서 모든 마켓의 정보를 볼 수 있는데 이후에 소개도 하겠지만, 런던에는 LFM 소속이 아닌 파머스마켓들도 운영되고 있다.
비가 내리는 오후, 약속된 장소에 도착해 바람에 엉클어진 머리를 진정시키고 있으니 셰릴이 들어왔다. 그녀는 19년 전에 영화학교에서 먹거리에 관한 영화를 찍다가 파머스마켓을 알게 됐고, LFM창립자인 니나 플랭크의 제안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친근한 인상의 그에게서 오랜 시간 여러 농부시장을 조율하며 끌어온, 부드럽지만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우리는 영국에 오기 전에 LFM의 엄격한 출점기준들을 미리 알아보고 온 참이었다. 마르쉐는 처음부터 생산자와 소비자가 ‘대화하는 농부시장’이 가장 중요한 약속이었고, 이에 따라 출점팀 기준도 이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였다. 다소 모호한 이 기준은 현장에서 가장 정확한 기준이 되어주었다. 아무리 좋은 방법으로 키우고 좋은 재료를 써서 만들어도 대화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생산자는 결국 시장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르쉐도 오래되고 규모가 커지면서 점점 더 명확한 출점 기준이 요구되고 있었다. 서로간의 약속은 서로 명확한 이해와 합의에 의해 지켜진다는 것을 깨닫고 그렇다면 얼마나 상세하게 만들어야 할지, 그 안에 마르쉐의 철학을 정확히 담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LFM의 세심한 기준들을 보니 놀라웠다. 시장의 오랜 역사와 고민이 엿보이는 규정들이었다.
우리는 질문이 많았고 그중에 하나는 그 많은 파머스마켓을 운영하는 사무국의 일 구조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LFM도 정작 사무국에서는 5명이 일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무릎을 쳤고 더러는 이마를 쳤다. 일제히 뱉어내는 탄식에 셰릴은 웃었지만, 우리는 동질감을 느끼는 한편 같이 체육복을 입고 뛰다가 졸업 후 몸에 잘 맞는 정장을 입고 빳빳한 명함과 함께 등장한 선배를 본 고3의 심정이었다. 우와… 5명이 20여개의 시장이라니…! 굉장히 큰 고비가 많았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계속 하는 이유가 있겠지? 우리도 시장을 계속 해온 그 이유!
LFM 사무국의 적은 인원으로 이렇게 운영이 가능한 이유 중에는 각 시장을 운영하는 매니저들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마켓 현장 관리와 안전 점검, 마케팅 등을 맡는 구조인 것도 있다. 실제 방문해 본 파머스마켓들에는 즐거운 기운이 전해지는 매니저들이 LFM 조끼를 입고 시장을 오가며 부스를 점검하고 농부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각 지역의 소비자들이 일상적으로 꾸준히 장보러 올 수 있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 모든 마켓은 매주 정기적으로 열고 있으며, 실제 대형슈퍼마켓 대신 파머스마켓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이 늘면서 지역 유동인구 및 지역 사업장의 거래량이 느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고한다.
시장의 출점 기준은 홈페이지에 명시되어 있는데, 시장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원칙 그대로 로컬 농산물만 판매 가능하고, 보존식품 등의 부가가치 상품은 50% 이상 로컬 원재료로 만든 것만 판매가 가능하다. 모든 농산물이 유기농산물이어야 한다는 기준은 없으나 유기농가가 다수 출점하고 있으며, 가금육과 계란은 방목 사육 농가만 출점 가능하다. 최근에는 비건 식품, 저온살균처리를 하지 않은 우유 등의 유제품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고. 이러한 규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각 출점팀의 영수증을 점검하며 관리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기본 규정 이외에 시장 안에서의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영국에서도 굉장히 큰 이슈가 되고 있어서, 파머스마켓에서 사용하는 포장재와 플라스틱에 대한 소비자들의 경각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LFM도 개인 장바구니와 식기, 그릇을 가져오도록 장려하는 <Bring Your Own Bag> 캠페인을 마켓 전역에서 펼치고 있다. 그러한 노력 한편 포장재 없이 판매하거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어려운 생산자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하여 LFM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기보다는 플라스틱 사용 관련 생산자들의 입장문과 고충을 홈페이지를 통해 소비자와 공유하고, 생산자 및 소비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높이고자 힘쓰고 있다고 한다.
마르쉐는 일년에 2번 전체 출점팀들의 모임을 갖는데, 그 안에서 늘 논의되는 것이 환경 정책이다. 생산자 개인이 풀기 어려운 부분들을 중요 정책으로 같이 논의하면서 풀어가려 노력하고 있다. 처음부터 쓰레기 없는 시장을 만들고자 했던 마르쉐의 바람이 최근 제로웨이스트의 물결을 타고 선순환되고 있다. 장바구니와 개인식기를 챙겨오는 손님들이 마르쉐 고유의 풍경이 되었으니, 그간 출점팀들과 다같이 해온 마르쉐의 노력도 이 흐름에 잔물결 한두개 정도는 보태지 않았을까?
셰릴은 런던에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파머스마켓은 비싸다고 비판한다면서 파머스마켓의 역할을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는‘싸고 좋은 음식’이란 건 없다고 본다. 값싸게 팔리는 음식의 뒷면에는 토양 오염, 폐기물 문제 등 늘 숨겨진 비용이 있기 때문이다. 파머스마켓이 런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크지 않지만 우리는 LFM의 분명한 철학과 출점 기준 아래 매주 약속한 장소에서 파머스마켓을 꾸준히 여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매번 마켓이 열릴 때 마다 농부를 도우며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요리를 배우는 미래 세대 아이들과 가족들을 여럿 만나고, 그들이 파머스마켓을 통해 농업과 먹거리, 제철을 배워가는 것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마켓의 몇몇 농부들은 마켓에서의 직거래 경험을 바탕으로 런던 식당과 작은 델리숍 등에 진출하기도 한다. 마켓 참여가 계기가 되어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농부들이 생겨나고, 농부들이 자기 농산물로 요리, 가공에 도전해보기 시작한다. 꾸준히 열리는 파머스마켓 안에서 활발히 이루어지는 이러한 확장 속에 지속가능한 먹거리 구조를 만드는 파머스마켓의 역할과 비전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한번 더 무릎 탁, 이마 탁, 탄식 아!!! 마르쉐를 시작하고 해오며 경험으로 배우고 자연스레 정리된 철학들이 셰릴의 입에서 나오니 그녀와 얼싸 안고 반갑다고 말하고 싶었다!
앞으로의 도전이나 비전에 대해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비가 많은 런던에서 야외 시장을 매주 여는 것이 늘 큰 도전이지만, LFM은 크리스마스와 새해 그리고 정말 큰 위험이 있을 때만 닫고 그외에는 계속 연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도 젊은이들이 점점 농업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파머스마켓이 그 사이를 잇는 작업을 하고 있길 바라지만 실제로 그런 영향을 하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농지는 비싸고 농업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젊은 농부와 소외된 농부들을 지원하려고 힘쓴다고 한다.
우리는 무슨 대답이 나올지 알면서도 혹시나 싶어 시장 방문시의 팁을 물었는데, 많은 생산자들에게 재료와 제철에 대해 직접 묻고, 그게 얼마나 신선한지, 어떤 농법으로 키웠는지 최대한 질문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암~암~ 우리도 늘 이야기 하는, 마르쉐를 가장 즐기는 방법이다. 생산자와 직접 이야기 나누는 것.
마지막으로 런던에 스트릿푸드 포함 새로운 마켓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에 대해 묻자, 현재 파머스마켓들이라고 묶어부르는 마켓들 간에 품질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늘 고민과 우려가 있다면서도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든 시장은 위대하다.” 아침부터 비바람에 스산했던 마음에 열기가 확 퍼진다. 위대하다!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