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쉐 영국연수기_6]
*2019년 8월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우리가 런던을 방문하는 이유의 핵심은 결국 ‘좋은 먹거리’ 이다. 이 ‘좋은’이란 말은 해석이 분분하겠지만, 런던에서는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이 글을 통해서 다시 정리하려 한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번 편은 공부한 거 티내기 편입니다.
런던은 서울보다 2배 반 정도 크지만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서울시보다 70여만명 적은 904만여명이다. 1996년 광우병위기를 경험하며 먹거리 안전에 대한 사회의 경각심이 커진 후 사회주의자 켄 리빙스턴 Ken Livingstone 시장의 재임기간을 거치면서 건강하고 안전한 도시 먹거리 구조를 만들어가기 위한 논의와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2004년 런던푸드위원회London Food Board의 설치와 2006년 발표한 런던푸드전략The London Food Strategy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몇번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으나 먹거리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는 계속 이어져 2019년 런던 푸드플랜 비전이 선언되었다. 이는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시민사회가 건재하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런던에서 파머스마켓이 성장하기 시작한 시기가 1999년인 것을 보면 영국 시민사회의 먹거리에 대한 성찰적 움직임과 파머스마켓 사이의 연관성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런던 파머스마켓의 모습은 농업과 환경 보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지속가능한 먹거리에 대한 영국사회의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런던의 파머스마켓은 물론이고 이후에 얘기할 버로우마켓 같은 국제 푸드마켓과 메르카토 메트로폴리타노 같은 민간기업이 런던의 젊은 소비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실험하고 있는 다양한 가치들의 핵심 역시‘먹거리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2019년 런던 시가 발표한 푸드플랜의 런던 먹거리 6대 전략에 따르면
첫 번째, <가정에서 좋은 먹거리 보장>을 위해 런던시는 먹거리 관련 기업과 스타트업을 지원한다고 명시한다. 이를 위해 런던마켓위원회와 협력하여 신선한 지역 제철 먹거리를 공급하는 런던의 시장을 지원하며, 시장을 통해 모든 런던 시민들의 문화적 수요도 함께 충족되어야 함을 밝히고 있다.
두 번째, <좋은 먹거리 경제> 항목에서는 먹거리 선순환 체계를 만들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로 농부시장과 로컬 농산물 꾸러미 이용을 언급한다. 그리고 다섯 번째, <좋은 먹거리 재배하기> 항목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로는 로컬 농산물 꾸러미와 농부시장 먹거리 구매를 통해 도시 농장과 재배공간을 지원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런던 먹거리 비전 안에서 농부시장은 지속가능한 먹거리와 시민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소규모 근교 농가와 로컬 식품생산자들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플랫폼이다.
런던 도심에 자리한 50여 개의 농부시장 중 22개를 직영하는 LFM의 경우 소규모 보증책임주식회사(주로 비영리 성격의 기업들이 많이 채택하는 법인격) 회사이다. 이들은 정부에 직접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이들이 도시 공간을 점유해서 시장을 여는 방식은 다양한데, 토지 주인과의 계약을 통해 공간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행정과의 협의를 통해 보행자들이 다니는 길거리를 일시 점유하기도 한다. 어느 경우이든 안정적인 계약 관계 아래 매주 정기적으로 시장을 개최하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파머스마켓들이 열리는 공간은 다양했다. 대학은 물론 거리, 유휴 주차장, 초등학교나 교회의 마당도 있었다. 스스로 영리기업이라고 소개하는 LFM의 시장이나 이후 소개할 풀뿌리 시민조직 GC의 시장 모두 도시 먹거리 구조 안에서 농부시장의 중요한 역할을 인정받고 존중받으며 지역사회와 협력하고 있었다. 안정적으로 시장을 열 공간을 찾기 어려워 8년째 서울에서 마르쉐 시장을 열 때마다 매번 새롭게 허가 절차를 밟고 있는 우리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엄청!
동시에 농부시장은 수많은 소규모 가공생산자들의 무대가 되고 있다. 대영박물관 옆 대학캠퍼스 마당에서 열리는 LFM 소속 블룸스버리 마켓의 경우 일본, 스페인, 그리스, 이태리, 터키, 비건 푸드 등 다양한 즉석 조리식품(이하 핫푸드)을 통해 로컬 농산물과 시민을 보다 가깝게 연결하는 런치마켓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은 먹거리 생산자 인허가의 과정이 상대적으로 유연해서 파머스마켓은 물론 다양한 스트릿푸드 마켓이 계속 만들어지는 배경이 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먹거리의 다양성이 도시민의 문화적 욕구 충족은 물론 도시와 지역의 로컬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런던 먹거리 빈곤층의 먹거리 보장 문제는 런던푸드플랜의 가장 중요한 의제이다. 취약계층에게 보다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들이 2019 런던 푸드플랜에 포함되어 있다. 서스테인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취약계층 6만 명에게 지급되는 푸드 바우처(Healthy Start Voucher)가 런던의 파머스마켓에서도 사용 가능하다는 점이 주목할만한 점이다. 그런 정책효과가 크다고, 먹거리 보장을 위해 현장에서 노력해온 서스테인 활동가들은 말한다.
농부시장의 먹거리는 그 품질과 운영 특성상 도매 유통을 거치는 먹거리에 비해 늘 저렴하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취약계층에게는 농부시장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국 농부시장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런던은 도시의 농부시장이 신선하고 건강한 식품을 필요로 하는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정책의 전달 통로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런던푸드플랜이 정의하는 좋은 먹거리(Good Food)란 무엇일까?
2019년 6월 최종적 발표된 내용을 일부를 발췌하면 아래와 같다.
(1) 모든 문화와 수요에 걸맞는 건강하고 영양가 높은 먹거리
- 과일, 야채, 콩, 통곡물 등 / 불필요한 포화지방, 염분, 당분, 첨가물 섭취 최소화 / 건강한 식용유 사용 / 적절한 양 섭취 / 이해하기 쉬운 영양소 및 칼로리 정보 표시
(2) 공정하고, 포용적이며, 접근하기 쉬운 먹거리
- 사회적 혜택으로부터 소외되었거나 취약계층의 사람들도 접근할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 / 인간적인 근무 환경과 생활임금 / 먹거리 생산자 및 공급자에게 공정한 대우
(3) 숙련된 기술로 이익을 창출하는 먹거리
- 사업자, 사회적 기업가 및 활동가들이 좋은 먹거리를 재배, 분배, 가공, 요리, 판매 및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 / 소규모 지역산 등 다양한 공급자로부터 먹거리를 구매하여 먹거리 공급체인 다양화
(4) 지구 친화적이고 인간적인 먹거리
- 동물들이 먹는 사료의 바람직한 기준 설정 / 축산 농부들이 보다 높은 기준의 환경보호 및 동물복지를 실천하도록 지원
(5) 지속가능한 생산
- 국산 제철 먹거리 증진 / 보다 높은 윤리와 환경 기준을 갖춘 지역의 먹거리 생산 / 온실가스 배출, 항생제 사용, 제초제와 같은 화학물질 사용 감소
(6) 안전
- 먹거리 유통 체계 안에서의 안전성 보장
(7) 모든 시민들의 즐거운 참여
- 먹거리 재배, 장보기, 요리, 맛보기의 과정을 런던의 시민들이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만들기
단순히 사람들의 건강과 맛 뿐만 아니라 먹거리가 생산되는 환경과 소비되는 환경, 사회와 자연까지 다 포괄하는 개념이 ‘좋은 먹거리’이다. 거창해보일 수 있지만 이런 좋은 먹거리를 먹고 함께 키워나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농부시장에서 장보고 밥해먹기!
글: 마르쉐친구들 쏭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를 운영합니다.
먹거리를 중심에 두고 삶을 연결하는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