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쉐 영국연수기_8]
*2019년 8월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우리는 이후 LFM 소속 파머스마켓을 두 곳 더 갔다. 먼저 노팅힐마켓 Nottinghill Farmers’ Market 은 관광지이자 여러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한 포토벨로 마켓 인근의 서점 주차장에서 토요일마다 열린다.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의 뽀송한 모습이 담긴 무려 20년 전 로코 영화 ‘노팅힐’의 바로 그 거리라고 하던데, 우린 정말 마켓만 보고 왔던 것이다! 뭐... 후회는 없어요….
이곳은 런던의 오래된 파머스마켓 중 하나이고 많은 생산자들이 20년 정도 꾸준히 나오며 고정된 판매 공간을 제공받는 시장이다. 따라서 오래된 단골 손님이 많고 노인층 고객이 많은 것도 특징이라고 한다. 시장과 함께 나이드는 손님들이라니… 천천히 안부를 묻는 손님들과 농부들을 보니, 왠지 줄리아와 휴의 사랑 못지 않게 낭만적이랄까!
시장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싱싱한 해산물부터 고기, 채소와 과일, 달걀, 유제품, 빵, 핫푸드까지 다양한 생산자들이 있었다. 오래된 시장의 노하우가, 웬만한 마트 안가고 장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그 알찬 구성에서 딱 엿보였달까. 런던의 많은 파머스마켓들이 신선한 해산물을 팔고 있는게 한국과 또 다른 특징이었는데, 이렇게 싱싱하게 바로 살 수 있는 해산물들이 정말 인기가 많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로 보이는 손님들이 커다란 바구니 수레까지 끌고 본격적인 장을 보러 나온 모습이 많았는데, 우리도 한쪽에 앉아 간단히 식사를 하면서 평화로운 농부시장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그러다 장 볼 겸 시장을 점검하러 나온 LFM의 대표, 셰릴과 우연히 만나 반갑게 인사도 나누었다. 역시 스스로 장보고 싶은 시장을 만드는 것이 시장 기획자들의 마음이구나.
우리는 셰릴이 가장 오래 참여한 농가라고 알려준 나이젤팜 Nigel farm의 농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손님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와중에 오래 이야기를 하자니 죄송하기도 했지만, 시장의 역사와 함께 해온 이 농부님과 꼭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곳은 유기농가는 아니다. 인증 받는 게 어렵고 비용도 들어서 굳이 유기농 인증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스프레이케미칼 (화학적 살포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농장은 런던에서 63마일(100km) 떨어져있는데 서울로 치면 천안이나 충주 정도의 거리겠다. 1에이커(1200여평)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데 고용인은 없고 가족 3명이서 매일 아침 6시부터 밤 8시까지 14시간 정도 일을 한다고 한다. 한 계절에 최소 30종 이상의 채소를 기르며, 예전에는 겨울에 채소를 파종하지 않고 밀을 길렀는데 요즘은 농부도 쉬고 땅도 쉬도록 겨울에는 쉬고 채소에 집중하고 있다고.
마르쉐에 나오는 다품종 소량생산 소농들과 비슷한 규모와 구조이니 영국에서는 정말 소농에 속하는 것일 게다. 매주 마켓에 참여하는 농부들이 많으니 다들 꽤 큰 농가일거라 짐작했는데, 이런 작은 농부가 오래 참여하고 있다니 새삼 LFM 마켓들이 다시 보였다.
마르쉐 시장 일을 하다보니 소농의 다품종 소량생산과 직거래 시장 참여의 상관 관계를 보게 된다. 특히 자본과 기술이 없는 귀농인들이 대부분 영농 구조가 작은 소농, 외부 인력 투입없이 가족이 스스로 농사짓는 가족농들이다. 이런 작은 농부들은 작은 농지를 쪼개어 다양한 품목을 키우며 자급을 충당하는 한편, 수확에 대한 위험분산을 시키고 적은 노동력을 순환시키며 연중 농가 소득을 만들어내야 한다.
대량 생산에 맞추어진 유통업에는 이런 소농들이 아무리 좋은 먹거리를 생산해도 그 양이 적어 납품할 수가 없다. 그래서 농부와 농부의 가족이 직접 판로를 찾게 되는데, 그중에 소비자와 직접 만나 대화하며 신선한 농산물을 바로 판매하고 관계를 맺어가며 생산물에 대한 반응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농부시장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농가는 새로운 작물도 실험 재배해보며 농업에 활기도 얻고 농부로서 지속가능성을 꾀할 수 있다.
나이젤팜은 이즐링턴 파머스마켓을 시작했던 LFM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함께했다. 생산물을 도매상에 납품하던 시절에 지역에서 농부들끼리 작은 시장을 열었는데, 마켓을 준비하며 전국의 농부들을 만나러 다니던 LFM의 설립자 니나가 직접 찾아오면서 나이젤팜도 LFM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이 농장은 파머스마켓에서만 판매하고 다른 곳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머스마켓에 참여하는 이유는 우선 손님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인데, 이전에 도매상에 납품할 때는 가격이 많이 깎였지만 이곳에서는 제값을 받고 팔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농업에 투입비용은 계속 늘어나는데 판매 가격은 그만큼 올라가지 않는 상황에서, 파머스마켓에서의 판매수익이 많지는 않지만 농부의 가족이 딱 생활할 수 있는 비용을 벌고 있다고 한다.
나이 지긋한 이 농부님의 마지막 이야기가 감동을 주었다. “지금 파머스마켓에는 처음에 비해 굉장히 다양한 종의 채소와 먹거리가 나오고 있고, 사람들도 예전에는 파머스마켓에 대한 인식이 없었으나 이제는 먹거리에 궁금증을 가지고 찾아온다. 파머스마켓의 가치를 알고 내 먹거리가 어디서 오는지 관심을 가지고 묻는다는 것이 큰 변화이다.” LFM 역사의 산증인인 이 농부님이 이야기하는 바로 이 변화가 농부시장을 해나가는 힘일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도 매니저 커스티 Kirsty Mcewan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커스티는 원래 파머스마켓에서 장보는 것을 좋아하고 윤리적 소비와 환경에 관심 많았다. 최근 런던에서도 플라스틱 쓰레기 이슈가 많이 거론되면서 미디어 등을 통해 환경 문제에 관심 많아졌는데 실제 사람들의 생활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음식과도 연관되고 있다. 그녀는 예술학교 학생인데, 이런 분야에 관심 있는 예술학교 학생들이 파트타임으로 파머스마켓 매니저 일을 많이 한다고 한다. 더구나 매니저로 일하면 마켓에서 구입할 때 할인 받는다는 꿀팁!
매니저는 처음에 여러 마켓에서 훈련받고 숙련도가 쌓인 후 고정 마켓으로 배정된다. 기본적인 12문항의 마켓 체크리스트가 있어서 그걸 보고 현장을 관리하는데 그 외에도 매니저가 각 마켓과 팀의 특징을 잘 아니까 더 섬세하게 확인한다고 한다. 바람 등으로부터 천막이 안전한지, 생선과 고기들이 차갑게 관리되고 있는지, 라벨과 가격 표기가 빠진 건 없는지, 배치 문제나 고장난 부분이 없는지, 제철이 아닌 걸 파는게 있는지(농장에서 키운게 아닌 남유럽에서 사온 것이 없는지), 핫푸드 팀에 화재 위험이 없는지 등을 관리한다.
커스티는 그럼에도 파머스마켓이 여전히 모두에게 접근하기 쉬운 곳은 아니고, 가장 싼 먹거리는 슈퍼마켓에서 구할 수 있으니 계층적인 문제가 얽혀있다고 하면서 “각 농장들마다 투입 비용이 다르니 이곳에서 판매되는 가격이 합리적인 가격인지는 말하기 어렵다. 고기는 고품질로 하려면 고비용이 들고, 품질 높은 채소 등에는 가격을 더 내야하는 게 맞다.” 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마쳤다.
사실 가격에 대한 문제는 마르쉐도 늘 고민이 되는 부분이고, 늘 시장에서 농부들을 만나며 답을 얻는 부분이다. 셰릴이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싼 가격에는 숨겨진 비용이 있기 때문이다. 런던의 푸드바우처 정책처럼, 다만 이 좋은 먹거리를 어떻게 사회의 다양한 계층이 나눌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보완하는 구조가 한국에도 정말 필요하다. 물론, 농부시장이 안정적으로 정착이 되어야 이것도 같이 논할 수 있는 문제이니, 아직 갈 길이 멀다.
다음은 LFM 시장들 중에서도 규모가 크다는 메릴본파머스마켓 Marylebone Farmers’ Market 으로~!
글: 마르쉐친구들 쏭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를 운영합니다.
먹거리를 중심에 두고 삶을 연결하는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