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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Nightcraw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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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Sep 24. 2021

둥글어져라, 둥글어져라.

 핸드폰을 하다 눈에 걸린 손톱이 거슬린다. 언제 물어뜯어 놨는지 새끼손톱은 뾰족뾰족 생선 이빨 모양에 빨갛게 살이 비치고, 검지부터 약지는 불쑥 길게 자라 있다. 지저분해 죽겠네. 속으로 중얼거린 말은 찌푸린 인상으로 나온다. 손톱 옆 희게 올라온 거스러미부터 시작해 평소보다 부은 손가락이며 종아리를 자각하는 사이 핸드폰 액정이 까맣게 점멸했다. 초췌하고 피곤한 인상의 얼굴이 비친다. 보기 싫어. 고개를 들면 이번엔 시커먼 지하철 유리창이 떡하니 나를 비춘다. 못난 나를 발견하는 건 언제나 새삼스럽다. 모르고 살고 싶다. 세상의 거울이며 유리를 다 없애 버리고 싶다. 초라한 나를 어디로든 숨기고 싶지만 10분 후면 회사다.


종일 키보드를 쳐야 하는 직장인이라, 들쑥날쑥한 손톱이 내내 거슬린다. 물어뜯은 새끼손톱이 키보드에 부딪힐 때마다 찌릿하고, 길게 자란 약지는 딱 딱 소리를 내며 부딪힌다. 타자를 치다 말고 키보드 위에 둥글게 놓인 손 모양을 본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타자를 꼭 피아노 치듯이 친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그러고 보니 피아노 친 지 오래됐네. 발악하듯 점심시간마다 내달려가던 피아노 학원도 가지 못한 것이 1년을 넘었다. 그러니까 손톱이 이 모양이지. 그나마 피아노라도 치면 손톱 정리 정도는 하고 사는데.. 정말 엉망으로 살고 있구나. 이렇게 열과 성과 온 시간을 다 바쳐 나는 손톱 자를 생각도 못하고, 피아노도 잊고 사는 하루와 하루를 얻었다.


 잠깐 정신 판 사이에 손톱을 또 물어뜯어 놨다. 이빨 모양 손톱을 두 개 더 달았다. 까실한 손톱이 창피해 손바닥에 괜히 문지른다. 둥글어져라, 둥글어져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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