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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Jan 19. 2022

Seoulite - ii

 

 서울살이 3년 차쯤 되니 나는 광주 사람도, 서울 사람도 아니었다. 이따금 사투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분위기를 깬 적도 있고, 광주에 남은 친구 중 대부분과 소원해진 지 오래였다. 가끔 광주에 가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나는 이제 광주 사람이 아닌가 봐'하는 생각이 들면 정체성을 잃은 느낌에 괴로워졌다. 난 아직 서울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어디 사람일까. 속하는 곳이 없다는 건 돌아갈 곳도 없다는 뜻이었다. 정처 없이 표류하는 이방인이 된 느낌이 서러웠다. 뿌리 잃은 상실감이 나를 작아지게 했다.


 좋지 않은 버릇이 생겼다. 생존 비용을 계산하는 일. 그 버릇은 외로움이 길어지는 밤에 특히 기승을 부렸고 잠보다 은밀하고 꾸준하게 나를 두드렸다. 망망대해에 떨어진 기분으로 새벽을 표류했다. 이 질척이는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할지, 노를 저어야 할지, 구조선이 오기를 기다려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문짝만 한 뗏목에 실려 캄캄한 바다에 표류하는 내가 보였다. 눈을 감은 세상에서 나는 부레옥잠이 되기도 했다.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물에 둥둥 떠다니면서 어디로 갈지 몰라 그저 떠있는 부레옥잠. 그놈의 뿌리 뽑힌 감각은 자꾸 내 숨에 비용을 매겼다. 월세, 생활비, 등록금을 하루치로 나누면. 아무 데도 안 가고 먹지 않아도 숨을 쉬는 것만으로 돈이 드는 일이었다, 이놈의 서울살이는. 그럼 딱 죽고 싶었다. 엄마, 아빠의 노년에 쓰일 물적 자원을 뽑아 먹고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한심한 캥거루족.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그 잔인한 말이 나를 겨냥했다. 생존이 죄스러워지고 도리 없이 외로워졌다. 열 살이 되기도 전부터 나는 내 무대로 의심 없이 서울을 그렸는데 그런 순진함의 대가로 이렇게 많이 울 줄은 몰랐다.


  10대의 나를 키운 도시와 내가 욕망했던 도시 어느 곳에도 내 자리는 없었다. 이런 내 정체성에 대해 골몰하면 나는 부레옥잠을 떠올렸다.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다니고 있구나. 뿌리 잃은 상실감이 나를 작아지게 했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방에 가두기도 했다. 정처 없이 표류하는 이방인이 된 느낌이 서러웠다. 서울에서 몇 년을 살면 서울 사람이 되는 걸까. 나는 실패하지 않고 이 도시에 뿌리내릴 수 있을까. 나는 그때까지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나를 해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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