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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말구 Feb 06. 2021

[서평] 쓸모없음을 깨닫다.

키요자와 만시, 『겨울부채』

  예기치 못한 좌절 혹은 절망에서 다시 힘을 얻는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사회생활 안에서나, 인간관계 안에서 겪는 상처와 아픔으로 가슴을 움켜쥡니다.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내 처지가 처량합니다. 남들은 저만큼 가고 있는데 나의 현실은 여전히 바닥에 머물러 있습니다. 저 높은 이상, 내가 정한 목표로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상하게도 힘이 나질 않습니다. 나는 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자기 비하,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인간에 대한 미움도 도무지 가시지가 않습니다. 

  하느님께 기대고 싶어도 마음이 동하지 않습니다. 그저 밍숭맹숭할 따름입니다. 어느 때엔 성경의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히브 12,12~13)와 같은 말씀을 읽고 힘을 내보지만 다시 주저앉고 싶습니다. 주변의 위로도 듣는 그 순간엔 달콤하지만 다시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공허함을 느낍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절망에 빠뜨린 하느님이 미워집니다. 남들은 아프지도 않고, 부족함 없이 다 잘 사는 것처럼 보여 배가 아픕니다. 나는 누구이고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묻게 됩니다.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내 인생의 가치는 빛나는 것일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위로가 그리워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공허한 채 남아 있습니다.

출처: pixabay.com

  다행히도 저는 공허한 마음일 때 위로가 되는 아주 고마운 책을 한 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승려 키요자와 만시(淸澤滿之, 1863~1903)의 『겨울부채』라는 책입니다.


  『겨울부채』라는 책은 조금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저자는 승려로서 불교에 관한 내용을 다루면서도 번역자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출판사는 까리타스 수녀회 출판사인 ‘생활성서’사이고요. 서로 다른 종교이면서도 이 책 한 권에 모인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번역가는 이현주 목사입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제자이자, 다양한 글로 많은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이현주 목사의 번역이 이 책을 더 매력 있게 만들어줍니다. 

  또한 ‘겨울부채’라는 제목에 눈길이 갑니다. ‘하로동선’(夏爐冬扇)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로동선’은 여름의 난로, 겨울의 부채처럼 쓸모없는 것, 그런 상태를 의미합니다. 『겨울부채』의 저자 키요자와 만시는 자신의 처지를 쓸모없는 ‘겨울부채’처럼 여기며 모든 것을 그저 부처님께 내어 맡기고 살아가고자 했고, 그런 마음이 이 책에 잘 담겨 있습니다. 


  저자 키요자와 만시는 근대 일본 불교학자 가운데 손꼽히는 인물입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1868~1912)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부는 시대적 상황에서 일본 불교의 참된 정신을 세우고자 했던 것이 그의 가장 큰 업적입니다. 그는 관념론적 사유에만 빠져있는 불교가 아닌 실천적이고 그 시대와 사회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불교가 되어야 한다고 주창했습니다. 또한 불교의 타력(他力) 사상을 재해석하고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타력 사상이란 외부의 초월적인 힘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불교의 성불, 곧 수행자 스스로의 노력과 수행으로 내면에서부터 시작되는 구원을 의미하는 자력(自力) 사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자 키요자와 만시는 인간은 부족하고, 어리석기에 홀로 노력한다고 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직 자신의 무지와 무용성(無用性)을 깨닫고 초월적인 힘, 곧 타력에 의지해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내적인 평화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의 이러한 가르침은 일본의 정토진종(淨土眞宗)에 의해 계승되고 있습니다.

출처: pixabay.com

  『겨울부채』에는 키요자와 만시가 타계하기 5년 전부터 쓴 짧은 에세이 7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자아의 쓸모없음’과 ‘무지’를 깨닫고 절대자에게서 오는 평안을 얻기 위한 안내서이기도 합니다.


  키요자와 만시는 ‘우리의 삶을 완벽하고 든든한 토대 위에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가는 과정을 ‘깨어있음’(spiritual awareness)이라고 부릅니다. ‘완벽하고 든든한 토대’는 무한자(無限者, the infinite) 또는 절대자(絶對者, the absolute)를 만난 상태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고요.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깨어있음은 스스로 충분히 만족함을 뜻한다깨어 있는 사람은 사물이나 사람을 얻으려 하다가 낙담하거나 실망하는 일이 없다어쩌다가 밖에 있는 대상을 얻으려 한다고 해도무엇이 부족하다는 느낌에서 하지는 않는다깨어 있는 사람이 어찌 불만을 느끼겠는가그는 사물과 사람의 유한하고 제한된 세계가 아닌 무한자 안에서 만족을 찾는다.” 27p


  문득 아빌라의 성 데레사의 기도이자 아름다운 선율의 생활성가로 더욱 유명한 『아무것도 너를』이라는 곡의 가사가 떠오릅니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다 지나가는 것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으로 만족하도다


  키요자와 만시의 말과 아빌라의 성 데레사의 기도 사이에 관통하는 신앙의 의미에 머물러봅니다. 모든 것을 절대자에게 내어 놓았을 때 자신이 욕심과 욕망이 자리할 곳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의탁했기에 더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신앙 안에서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 남의 불편과 불행을 보면서 그것보다 좀 더 나은 자신에 대해 안도하는 아주 유치한 감상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절대자에게 머물며 나를 가만히 놓을 때 비로소 차오르는 평화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온갖 잡다한 욕심과 욕망에서의 자유와 평화를 만끽하고 싶어 집니다. 


  저자는 각자의 실존을 무한자의 섭리에 맡긴 채 자신을 그저 현재 있는 상황 그대로 가만히 두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함과 멸시, 고통과 절망, 그리고 생과 죽음까지도 모두 절대자에 맡겨져 있는 것이니 거기에 근심하고 있지 말라고 말입니다. 근심하고 걱정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뿐더러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니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불만족’한 태도에서 벗어나길 촉구합니다.


  만일 네가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네가 믿지 않는다는 표시가 아니더냐하늘이 너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지 않았더냐네가 만일 하늘이 내려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겠다면하늘이 명()한 것 아닌 다른 무엇에서는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은가불안감 때문에 괴롭거든나아가 자신을 수양하여 천명에 만족하는 법을 배울 일이다.” 44p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가르침이 떠오릅니다. 세상의 재물과 세상 걱정에 몰두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나라를 바라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 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1~33)


  이런 말씀을 듣고도 왜 내면의 상태를 가꾸기 위해 노력하지 못하고, 바깥 사물과 다른 사람들에게 매달리게 되는 걸까요? 하느님의 의로움 같은 가치는 저 멀리 내어둘 뿐, 나에게 현실적 이득이 되는 것들에 대해 골몰합니다. 물론 어느 때엔 이 말씀에 젖어 하늘이 주신 것에 만족하려 애쓰기도 합니다. 허나 다시 세상의 것에 눈을 돌립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내 처지를 비교하고, 부족함에 우울해하고, 탐욕을 부리고, 나아가 분노하기까지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처지를 생각해보면 앞서 저자가 말한 대로 ‘깨어있음’이 마음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받들고 있는 든든한 토대인 하느님에 대해 성찰하지 않고서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저 역시 이 책을 읽고, 또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어 맡긴 채 평화를 바랐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 뜻대로 이뤄진다는 마음은 한결 제 자신의 내면을 가볍게 해 주더군요. 하지만 막상 격정을 불러일으킬만한 사건을 다시 대하고 나면, 주체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는 것을 막기 어려웠습니다. 우리의 나약함과 한계 때문이겠지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제 자신을 바라보며 매일의 ‘깨어있음’, 지속적인 성찰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그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겼다는 순간의 감상이 아닌, 나의 삶과 건강, 소유물 모두 하느님의 것이라는 진심 어린 성찰은 아주 깊은 단계에서 매일 이루어져야 몸과 마음에 넉넉히 적셔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처: pixabay.com


  저자는 독자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도, 절망할 필요도 없다고 말합니다. 아예 실패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실패란 객관적 실재로 존재하는 물건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스스로 규정하고 스스로 짓누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절대자에게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긴 사람에게는 내가 규정한 실패든 성공이든 모두 그분의 영역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책임, 과오, 후회까지도 모두 절대자의 놀라운 역사이기에 거기에 주저앉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절대자의 뜻을 겸허히 따를 뿐입니다. 


  “‘자아를 초월하는 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의 삶은 이와 같다그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조금도 불평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는다일상생활 속에서 어떤 일을 당하든지 부처님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간다이렇게 살아가는 사람과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살아가는 사람의 차이는 실로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 자아를 초월하는 힘의 이끄심을 받아 이루는 행위는 부처님의 일’(Buddha’s work)이라 하겠다.” 55~56p


  그리스도교 신앙의 눈으로 위의 문장을 읽을 때 성경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 가슴에 파고듭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요한 6,28~29)


   그렇습니다. 신앙인의 몫은 나의 것을 모두 하느님께 내어 맡긴 채 그분을 믿는 것뿐입니다. 이 단순한 진리를 마음에 품고 실천하기란 어렵습니다. 하느님보다는 나의 꿈, 노력, 애착, 어떤 결과에 대한 기대가 훨씬 큽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크면 클수록 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절망과 고통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과감히 나의 것을 하느님의 일로 내어 맡길 수 있을까요? 그 어떤 결과든 모두 하느님의 뜻이므로 그저 담담하게, 평화롭게 다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절대자에게 나를 내어 맡기고 얻는 평화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실제적인 체험이 아니고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고, 또 내 꿈과 희망이 산산조각 나더라도 모든 것은 하느님의 이끄심이자 섭리임을 깨닫는 지혜를 청해봅니다. 그때 진정 마주하는 하느님의 따뜻한 은총을 가까이하고 싶어 집니다. 


  키요자와 만시의 『겨울부채』는 막무가내식으로 자기를 버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차분하면서도 아주 명료하게 모든 것을 초월자에 내어 맡겨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모두 자기만의 꿈을 꾸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원하는 것을 성취할 때 얻는 기쁨은 얼마나 큰 것인지요.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절망과 고통, 그리고 상처를 받고 몸부림칠 때가 훨씬 많습니다. 절망과 삶의 고통이 모두 뒤엉켜 허덕이기도 하고요. 『겨울부채』는 그런 상황에서 종교와 초월자가 주는 힘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어 맡긴다는 의미를 『겨울부채』를 통해 조금 더 선명히 가슴에 새겨봅니다. 완전한 겸손과 자기 비움이 세속적 시선에서는 실패에 불과하겠지만 내면에서는 가장 큰 평화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 책을 통해 세상의 것에 목매달지 않은 채, 주어진 매일의 일상을 꾸벅꾸벅 걸어 나가는 힘을 얻습니다. 그 길은 무(無)를 향한 여정이 아닌 충만을 위한 하느님을 향한 여정입니다. 오늘도 내가 꿈꾸고, 바라는 것을 이루지 못해 실패와 절망,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갑갑함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겨울부채』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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