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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말구 Jul 02. 2020

[서평] 한스 큉, 『가톨릭의 역사』

한스 큉, 『가톨릭의 역사』


  비판과 비난은 상대방에게 아픔을 불러일으킵니다. 자신의 약점을 마주한다는 건 아픔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판’과 ‘비난’ 이 두 가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비판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 혹은 더 나음을 위한 애정의 표현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더 나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비난은 그저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뚜렷한 근거나 자료도 별로 필요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성숙한 사회란 옳고 그름에 관해 객관적 근거를 지닌 비판을 수용하고 상호발전을 꾀하는 사회가 아닐까요. 미성숙한 사람일수록 부족한 근거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혹은 반대로, 건설적인 비판도 감정적 분노로 대처하곤 하지요. 어느 경우에서든지 넓고, 열린 마음으로 사고할 때 건강한 의식을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다룰 책을 통해 종교적 의미에서 건강한 비판과 그것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려합니다.     


  이번에 다룰 책은 한스 큉의 『가톨릭의 역사』입니다. 저자 한스 큉(Hans Küng, 1928~ )은 20세기 교회 안에 다양한 신학적 화두를 던져 이름을 알린 저명한 신학자입니다. 현대신학을 공부하게 될 때면 결코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이기도 하지요.

  한스 큉은 1928년 스위스 루체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스스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가톨릭 도시인 루체른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말합니다.(12쪽) 이후 교황청 소속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사제서품을 받습니다. 이후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루체른에서 2년간 보좌신부로 사목활동을 합니다. 사목을 마치고선 학자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는 서른두 살이 되는 해인 1960년, 독일 튀빙겐 대학의 가톨릭 신학 교수가 됩니다. 1962년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의 신학자문위원으로 임명됩니다. 공의회를 마친 뒤 20년간 튀빙겐 대학의 신학교수로 줄곧 지냈으며, ‘교회일치연구소’(Institute for Ecumenical Reserch)를 설립하여 그곳의 소장을 역임합니다.

  1979년, 한스 큉에게 큰 시련이 다가옵니다. 개혁적인 내용을 담고 있던 그의 신학사상은 교황청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이에 ‘가톨릭신학 교수직’이 취소되어버리고 마는 상황에 까지 이른 것입니다. 물론 이 사건은 신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왔지요. 하지만 그는 ‘오랜 기간 비판적 충성심을 유지하면서 가톨릭교회에 확고하게 충실했고, 가톨릭 신부직을 유지’(12쪽)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후 튀빙겐 대학에서 가톨릭 신학 교수직이 아닌 교회일치 신학 교수로 머물게 되었고, 가톨릭 신부의 직분은 유지했습니다.

  한스 큉은 교황청과의 신학적 이견으로 공개적인 마찰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그래서 한스 큉을 평가하는 관점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가 가톨릭교회의 던진 여러 화두만큼은 결코 묵과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가톨릭의 역사』는 제목 그대로 예수로부터 시작해서 현대 가톨릭에 이르는 ‘가톨릭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근거를 촘촘하게 제시하면서도 한스 큉의 비판적 시각이 함께 버물려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 책에선 이천 년이 넘는 가톨릭 역사를 되짚어보며 그동안의 과오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가톨릭교회 입장에서 그의 비판이 아플 수 있겠지만 그것이 비방과 비난은 아니었습니다. 서론에서 한스 큉은 자신에게 가톨릭교회가 영적인 고향임을 밝히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책에서 내가 시도하는 비판적 ‘해체’는 ‘건설’, 즉 개혁과 갱신을 위한 목적을 지닌 것으로서 가톨릭교회가 제3천년 시대에도 생명을 유지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함이다.”20쪽


   더 나은 교회가 되기 위해 과거를 살펴보자는 것이겠지요. 있었던 일을 왜곡하거나 숨기면서 역사를 돌아보는 이는 제대로 된 미래를 준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의 과오를 똑같이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스 큉은 2000년간 가톨릭 역사의 흐름에 따라 중요한 사건과 인물들을 다룹니다. 그 사건과 인물들을 다루면서 그 안에 어떠한 명암이 숨겨져 있는지 밝혀내는 한스 큉의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이 책은 예수와 그를 따르던 제자들의 모습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대별 흐름에 따라 각 장(章)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부터 8장까지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각 시대별로 나눠 가톨릭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초기 교회의 모습부터 중세와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릅니다. 그리고 마지막 8장에서는 현대에 이르러 교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와 미래에 교회가 어떤 모습을 지녀야할 지에 대한 제언(提言)이 나옵니다.  

  가톨릭교회는 긴 시간 동안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일한 구원자를 중심으로 역사가 흘러왔습니다. 그러나 각 시대별로 인간의 한계로 인한 과오들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의 유착이라든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이들에 대한 폭력, 세속화된 성직자, 세상에 대한 비타협적인 태도와 같은 일들이 있었지요. 한스 큉은 이러한 교회의 과오에 대한 배경과 흐름을 명료하게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어떠한 이유와 근거로 교회 안에 검은 그림자가 들어섰는지, 세상을 바라보던 가톨릭교회의 시선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한쪽으로만 치우치진 않습니다. 교회 구성원들의 자선이나 영성적 흐름을 포착하기도 합니다. 어둡고 흐릿한 현실 안에서도 가톨릭교회의 본질과 중심을 잃지 않았던 인물과 배경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됩니다. 저자는 말 그대로 가톨릭의 역사 안에 어떠한 명암이 있었는지를 밝혀내면서 앞으로 교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매력적인 점은 아주 촘촘한 전개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 사건을 다룰 때, 그저 막연하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신학자들의 신학사상을 어렵지 않으면서도 주요 맥락을 놓치지 않은 채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역사적 사건이 단계적으로 꿰어집니다. 여기에 저자의 비판적 시각이 덧입혀지며 흥미로운 서술을 이어나갑니다.   

  이 책은 신학전문서적이 아닙니다. 읽기 어렵지 않은 설명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고 명쾌하게 서술됩니다. 그러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통해 가톨릭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고, 미래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설명합니다. 한스 큉은 무엇보다 가톨릭이 가톨릭(catholic)이라는 뜻 그대로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더 이상 갈등과 반목이 아닌 대화와 인정, 포용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한스 큉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과연 교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전적으로 교회만의 관심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더 광범위한 문제를 생각하는 일이다. 여기서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세계 교회로부터 세계 윤리’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 교회와 더불어 세계 윤리’로 나가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266쪽.


  한스 큉은 그리스도교가 예수를 따르기 위해서는 더 이상 상호간에 호전적 태도, 배타적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상호보완적이며 협력과 포용의 태도에 진정한 그리스도교적인 의미가 살아날 것이라 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교 내부의 배타성에서 미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시각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미래를 찾아야한다고 말입니다.

  이 책은 갈등이 아닌 포용을 희망하는 종교인, 신앙인들이 읽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보통 우리가 어떤 특정한 종교에 ‘혐오’를 갖는다는 것은 그 종교가 지닌 극단적인 배타성, 혹은 보편윤리에 부합하지 않는 모습을 발견할 때입니다. 종교가 평화, 사랑, 정의를 찾는 것이 아니라 폭력, 반목,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 말입니다. 이 책을 통해 가톨릭의 역사를 찬찬히 되짚어 보며 갈등과 반복, 그리고 폭력에서는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참다운 교회의 정신은 힘과 권력이 아니라 상호간에 이해에서 나온다는 점. 그리고 이것이 올바른 미래가 될 수 있겠다는 한스 큉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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