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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니 Jan 03. 2023

푸드스타일리스트 52

 그러나 뭔가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 같아 마냥 캐묻는 것도 곤란하겠다고 생각했다. 우진은 최대한 정중히 배경 조건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당시의 맥락이라도 알면 좋습니다. 그러니까, 그 음식을 접한 시간적 배경, 공간, 동반한 사람, 어떻게 먹게 되었는지, 맛은 어떠했는지, 당시 어떤 기분이었는지 같은 사전 정보가 필수적입니다. 이것들이 선행되어야만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뭔가를 떠올리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으실 겁니다. 예를 들자면 배트맨 영화를 보던 중 옆자리 관객이 내 무릎에 팝콘을 쏟아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칩시다. 대충 수습하고 다시 영화에 집중했고 세월이 지나 그 영화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때 팝콘을 연상하면 팝콘과 그날 본 배트맨의 기억과 연결된 신경망이 활성화되어 기억이 떠오르는 겁니다. 뇌는 정말 신비롭죠."

 "…허. 그렇군요. 조건이 필요하다…."

 "네. 드시고 싶은 메뉴가 무엇입니까?"

 "설렁탕이오만."

 "아, 그러셨군요. 그럼 이 집은 아닐 테고. 예전에 가시던 단골집인가요?"

 "아니외다. 나는 그 집이 어디인지 모르오. 누군가 주문해 준 음식을 얻어먹었소. 이후 그 설렁탕을 다시 먹고 싶어 서울 시내를 다 뒤졌소. 그러나 부질없었소. 설렁탕집이란 설렁탕집은 다 가봤소. 그런데 못 찾았소. 이미 폐업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만한 맛을 가진 집을 다시 찾지 못했소…."

 신진철의 어조가 점점 차가워졌다.

 "그럼 그 설렁탕을 주문해 준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지금은 물어볼 수 없는 입장이오."

 진철의 말을 듣고 우진은 목구멍까지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럼 언제쯤 드셨고, 드신 장소가 어디입니까?"

 "시기는 1998년 12월 3일, 구체적인 장소는 밝히기 어렵소."

 "네. 알겠습니다. 앞 작업이 좀 어렵게 되긴 했지만, 그날 드신 설렁탕에 대한 기억이 강렬하면 재현될 수도 있습니다. 너무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도 최대한 힘을 써 보겠습니다."

 우진이 고개를 숙여 말했다.

 "고맙습니다. 오늘은 이만하면 되겠습니까?"

 "네.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보충할 사항이나 문의하실 게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을 주시면 반영해 드리겠습니다."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남자가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명함에는 김재진 전무 이사라는 직함이 적혀있다.

 "네. 감사합니다. 최대한 빨리 일정을 수립해서 전무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부탁드리겠네."

 진철은 우진과 다시 한차례 악수를 했다. 그리고 김 전무와 양복맨을 데리고 홀연히 사라졌다.

 우진은 진철이 나갈 때까지 잠시 기다리며 생각에 잠기었다. 진철과 나누었던 대화를 복기했다.

 '대체 그 설렁탕이 뭐길래 이토록 베일에 싸여있는 걸까.'


 1998년 서울 소재의 설렁탕 맛집에 대해서는 구글도 뚜렷한 답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1998년 정보를 찾던 우진은 어떤 기사를 보고 뭔가 깨닫고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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