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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니 Oct 02. 2022

#1 업무공간에서 손톱 깎는 사람들

그게 뭐 어떻냐고?

 톡, 톡, 톡.     


 사무실의 평화가 깨지는 순간.

 '또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내지는 두 번. 사무실 자리에서 손톱 깎는 것이다.

 그의 주중 행사와 다름없다. 너무 더러워서 비위가 상한다.

 문제성 손톱이나 까시래기 정리하는 정도야 문제 삼을 수 없다.

 건강한 손톱 열 개를 다 부러트리면 얼마나 시끄러운지 모른다.

 손톱이 얼마나 굵고 건강한지 소리도 경쾌하게 울린다. 톡, 톡, 톡. 아마 그 울림이 아직도 저 깊은 골짜기에서 울려 퍼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산물을 바닥에 그대로 흘려버린다.

 애초에 공공장소에서 손톱을 깎는 사람에게 매너를 기대하기 힘든 일이지만, 청소하는 사람은 무슨 죄란 말인가.

 손톱은 집에서 깎으면 좋을 텐데, 회사에 가져와서 민폐를 끼치냔 말이다. 그것도 사무실에서 깎는 건 뭐람. 다른 사람들 업무 진도가 그대로 망가진다.

 내 키보드 위로 파편이 날아온 적도 있다. 너무 불쾌해서 경악을 했지만, 불평을 내뱉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소위 말하는 '높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요즘 표현으로 '할많하않'이다.     

 해외 유명 대학 출신인 한동식 차장.

 그가 싫다. 가장 큰 이유는 일을 페어 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어물쩍 발 빼거나 수월한 업무만 맡기 위해 기를 쓴다. 덤으로 사무실에서 손톱 깎는 만행까지 일삼는다(설마.. 미국식? 에이, 아니겠지).

 같은 이유로 동료 오 대리도 그의 비열함과 매너 없는 행동에 치를 떤다(특히 손톱 깎는 것에!).

 어쩔 수 없는 갑을관계로 한 차장의 비매너를 지적하긴 어려운 일이다.  

   

 "아, 차장니임! 또 바닥에 버리시면 어떡해요. 에잇 정말 못 산다, 못살아."

 신 사원의 비음 섞인 푸념이 들린다. 올해로 28살로 5년 차 막내 직원이다. 그녀의 표정에는 짜증이 서려 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와 투덜거리며 한 차장 몸에서 떨어져 나온 잔여물을 쓸어 담는다.

 나는 그녀의 용기 있는 발언에 응원을 보낸다(마음으로).

 그녀의 대표성 뜨인 지적에도 독신인 한 차장은 미소 지으며 사랑싸움이라도 하고 있다는 듯 너스레를 떤다. 눈치도 없다.

"아이 뭘 그래, 너무 깔끔 떠는 거 아니야?", "알겠어. 알겠어. 다음에는 바닥에 안 버릴게."

 별일도 아닌 것에 유난 떤다며 신 사원을 애 다루듯 어물쩍 넘긴다. 문제의식을 전혀 인식도 못한 채 말이다.

 한 차장은 나보다 입사 5년, 나이로는 3살이 많다.

 초면부터 말을 놓긴 했지만, 적의가 있어 보이거나 하대하는 느낌이 드는 건 아니었다. 때문에 회식 자리에서는 나도 가끔 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놀 때는 한 없이 사람 좋은 한 차장. 팀 메이트로는 낙제다.     


 언젠가 오 대리는 더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메일을 쓴 적이 있다.

 나에게 슬쩍 보여준 그 메일은 대강 이랬다.     


차장님.


안녕하세요? 바로 옆자리 오 대리입니다.

어떻게 말씀드리는 게 좋을지 고민하며 쓰다 지우길 반복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업무공간에서 손톱 깎는 걸 자제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지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 사안에 절충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 책상 위로 파편이 자주 날아듭니다.

차장님께서 서방국가에서 오래 체류하셔서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좋아하는 분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정중히 요청드리는 겁니다.

서로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야 좋지 않겠습니까?

최대한 진심을 담아서 글을 올립니다.(두 손 모아)

부디 언짢으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제가 모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시다면 이 글은 무시하고 현행대로 손톱을 깎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빌어요.


 그날 한 차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오 대리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그런 사정을 미처 알지 못해서 폐가 되는지 몰랐다고 핑계말을 덧붙였다.

 그러고는 한동안 잠잠했다. 평화를 찾은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톡, 톡, 톡.

 주위를 보니 오 대리는 퇴근하고 없었다. 한 차장은 오 대리만 없으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톡, 톡, 톡.


 고양이와 동거하는 분들은 아실 것이다. 배설물을 보고 나면 모래로 덮는다.

 야생에서 더 강한 포식자들에게 자신의 흔적을 숨기는 목적이다. 진한 냄새로 자신의 소재가 파악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먹이 사슬 최상단에 대형 고양잇과 동물들. 그러니까 호랑이와 사자는 배설물을 은폐시키지 않는다. 되려 잘 보이는 구역에 올려놓고 자신의 영역임을 널리 알린다.

 물론 그 쾌감을 나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군대에서 별로 춥지도 않은데 일명 '깔깔이'를 입고 다니는 이유와 비슷하다고 본다.

 짬밥이 달리면 내무실에서 깔깔이를 입는 것은 금지 사항이다. 병장의 특권이다(일종의 감투 같은 역할). 그러나 깔깔이를 입고 좀 거들먹거리기로서니 그게 타인에게 무슨 폐가 된단 말인가.

 사무실에서 손톱은 너무한 처사다.

 언젠가는 꼭 짚고 넘어가겠다(화내지 않고 정중하게 말할 수 있는 내면을 힘이 생겼을 때).

 그래서 오늘은 아니다. 무진장 화가 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도 든다.

 '무슨 손톱이 저렇게 빨리 자랄까?'


 톡, 톡, 톡.



The characters and incidents in this series, althouh inspired by actual events, have been fictionalized for dramtic purposes, and are not intended to depict actual individuals or ev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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