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밖 사람들은 늘 부드럽고 친절한 은주를 좋아했다.
그렇게 수다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과묵하지도 않은 성품이 사람들을 편안하게 했다.
그 사건이 은주를 나락으로 빠뜨렸다. 그리고 삶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은주는 남편 모르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림을 보태고 있었다.
허리띠 졸라매서 조금씩 돈을 모았다. 그리하여 결혼 5년 만에 작은 아파트를 한 채 마련했다.
뜨거운 솥에 데일 뻔한 아이를 좀 엄하게 단속했기로 서니, 극형에 처해야 마땅한 사이코패스가 되다니. 이건 너무 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은주는 자신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깨우치기도 전에 수형자 인파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은주는 맹세코 결백했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말문이 막혔다.
기본적으로 죄수는 흰색 명찰을 달고 있다. 강력범과 조직폭력배들은 노란 명찰을 배부받는다. 그 외에 파란 명찰은 마약사범을, 빨간 명찰은 사형수를 나타낸다.
은주는 초범이지만, 사회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 가중 처벌받았다. 그리고 노란 명찰을 배부받아 강력범 방으로 배정되었다. 일반 잡범 방은 길어야 몇 년 형인 죄수가 최고 장기수인데 반해 은주의 방은 전체가 형량이 열 배씩 뻥튀기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막상 감방으로 입소했을 때 노란 명찰을 단 수형자는 한 명밖에 없었다.
수감 시설마다 차이는 있지만, 한 방에 평균 10명 남짓 수용되어 있다. 그리고 방마다 대표자 명목으로 방장이 존재했다.
은주의 방은 노란 명찰이 방장이었다. 그녀는 오랜 징역 생활로 우월감과 특권의식이 몸에 배어 있었다.
감방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개인의 사생활은 철저히 박탈당했다. 어떠한 존중도, 자유도 제공받지 못했다. 수형자 상호 간의 계층적 위화감은 말할 수 없이 팽배했다. 게다가 좁은 공간은 싸움 나기 딱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수형자 모두가 한 가닥씩 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방장 앞에서는 최대한 납작하게 엎드려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애를 쓰고 있었다.
방장 밑으로도 상황은 비슷했다. 제2의, 제3의 방장이 있었다. 누구는 누구에게 강하고 누구부터는 누구에게 고개 숙이고 감방은 그야말로 아부와 비굴 그 자체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방장 김성미를 진성으로 두려워했다.
김성미는 한 번 꼭지가 돌면 피작살을 내고 나서야 끝냈다. 그리고 그녀에게 적당히 매수당한 간수가 모르쇠로 일관해 절대적인 비호까지 받았다. 그녀와 대적하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삶의 의지가 꺾인 은주도 맞아 죽는 건 싫었다. 따라서 은주도 바닥을 기는 굴욕도 마다하지 않고 감수했다.
그러나 은주는 감방 생활 초년생이었다. 여러 방면에서 허술하고 어설픈 일면이 김성미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런 점은 방장의 측근들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김성미의 모든 히스테리가 은주에게 집중되는 사이 자신들은 숨통이 트이는 빈틈이 확보되었다. 따라서 은주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적극적으로 부추겼다. 딱히 거슬리게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이간질한 것이 원인이라고 봐야 마땅했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