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검사에게 사건 기획은 유치원생 손목 비틀기보다 쉬웠다.
기소된 혐의로 수사를 하는 것이 법치주의 원칙이지만, 김정남은 기소를 해 놓고 사돈의 팔촌까지 먼지를 탈탈 털어 없는 죄까지 만들어서 처벌하는데 선수였다.
영국의 여동생네. 그러니까 택시회사에 다리를 놔주었던 동서 준식은 도박 중독이었다.
초반에는 동료들 간의 소셜 활동에 불과했다. 수컷들의 세계에서 내밀한 정보를 교환하고 친분을 쌓기 위해서 흡연을 배우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일정 금액 정도는 잃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고스톱을 쳤다. 실제로 대부분 잃었지만, 재미있기도 했고 워낙 푼돈이라 아쉬울 것도 없었다. 사람들과 같이 어울린다는 게 중요했다.
때로는 끗발이 따라줘서 용돈 벌이가 된 적도 있었다. 그러다 점점 간이 커져 판돈이 올라갔다.
어쩌다 택시 승강장에서 기사들끼리 잡담을 나누다가도. 어디에서 판이 벌어졌다는 소식만 들으면 엉덩이가 간지러워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소문 듣고 찾아간 도박판은 과연 판돈이 컸다. 그러나 준식은 동네 바둑 기원에서 네임드급 도박사로 이름 나있었다. 기고만장해져서 기세가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준식은 원정도박에서도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다만 초반에 배팅한 판만 승률이 따랐고, 끗발이 좋아 배팅을 올리고 나면 꼭 빈털터리가 되었다.
속담에 '이 판에서 누가 호구인지 모르면 바로 자신이 호구'라고 했던가.
준식은 본전 생각에 생업도 뒷전으로 미룬 채 그 길로 도박에 빠져 들었다. 택시 사납금도 꾸준히 연체되었다.
그럼에도 준식은 집요하게 본전 찾기에 사활을 걸었고, 번번이 깡통을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식은 분별력을 잃어갔다.
급기야는 회사에서 지급되는 LPG 연료를 도로 빼서 동료 기사들에게 헐값에 팔아넘겼다. 놀음판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마저도 다 잃고 나면 하는 수 없이 소 끌려가듯 택시 영업을 시작했다.
시내 곳곳을 들쑤시며 부지런 떨던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기차역 앞에서 장거리 손님 하나 걸리길 기대하며 시간을 죽였다.
방금 전까지 수백만 원이 오가던 화투판에서 패를 쪼으고 있었으니, 기본요금 700원으로 근로 의욕이 생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승객이 흘리고 간 지갑에 현금 맛을 본 게 시발점이 되어, 만취한 승객을 깨우는 척하면서 주머니를 뒤지는 아리랑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날도 먹잇감을 찾으며 심야영업을 하고 있었다. 거리에서 호랑나비 춤을 추는 듯 비틀거리는 손님이 절로 탑승했다. 준식으로서는 횡재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아쟈씨, 반포로 갑시다아."
그는 혀가 꼬이는 발음으로 목적지를 얘기하고 곧장 코를 골며 나가떨어졌다. 입김에서 알코올 냄새가 훅 끼쳤다.
만취 승객은 기피 대상이다. 예전 같았으면 예약 택시라고 핑계를 대고 줄행랑 아니, 승차거부를 했을 것이지만, 타락한 준식에게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했다. 차를 세우고 작전에 돌입했다.
"어이, 선생님 여기서 주무시면 어떡해요. 댁이 어디시라고요? 주소를 말씀하셔야죠."
익숙한 솜씨로 손님 안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묵직한 느낌이 들어 월척인 줄 알았더니 그게 하필 경찰 배치였다.
당시 기승을 부리던 택시 소매치기 함정수사에 걸려 버린 것이다.
거기다 증거 확보랍시고 준식의 소지품도 탈탈 털렸는데, 일명 다찌방이라고 일컫는 글로브 박스에서 삼베 재질의 상복 모자가 발견되어 잠복 형사들을 분노하게 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폭발적인 경제발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여가 문화와 낮은 민도 수준을 기록하고 있던 시절. 음주 가무, 회식, 접대문화가 만연했다.
어지간한 직장에서는 실무능력이 형편없어도 술 잘 마시고 접대에 능하면 출세 가도를 달렸다.
골목마다 노래방, 호프집이었다. 술자리에 차를 가지고 와도 ‘오늘은 운전하니까 맥주 두 잔만 마실게.’라는 멘트는 사회적 통념처럼 받아들여졌다.
대리운전이 도입되지 않아, 도처에 음주운전이 기승을 부렸다.
정부는 ‘음주운전 특별단속반’을 창설하여 단속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상습범들은 그렇게 호락호락당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라에서 규제를 만들면 시장에서는 대책을 만든다고 했던가.
상습 음주 운전자들이 ‘음주단속에 빠져나갈 비책 101가지’라는 책까지 저술하여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그리고 준식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술꾼이자, 직업으로서의 운전자가 아니었던가. 술만 들어가면 "얌마, 형이 베스트 카레라이스잖아. 짜식아."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준식도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그 화두에 깊이 가담했던 것이다.
근무를 마치고 동료 기사들과 대포 한잔 걸치는 게 큰 낙이었던 준식이 음주운전 단속을 피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은 참신했다.
도로에서 단속의 낌새를 느낀 즉시 '다찌방'에 준비해둔 삼베 모자를 덮어쓰고 초상집 유가족 행세를 했다.
80년 대는 가정집에서 병풍을 펼쳐 놓고 장례를 치르는 게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준식은 경찰관에게 장인어른 장례를 치르고 있다는 말을 시작으로 입을 열었다.
갑자기 조문객이 몰려와 손님상에 나갈 먹거리가 떨어졌고, 장모님께 ‘장을 봐 오라’는 특명을 받아 경황없이 급히 길을 나섰노라고 서슴없이 거짓말을 했다.
누구나 가슴속에 무덤 한두 개 정도는 지니고 살지 않았던가.
경찰관들은 유가족을 묶어둔 자신들이 마치 패륜이라도 저지른 듯한 기묘한 감정을 느꼈고, 어서 가시라고 측은하게 격려까지 했다.
준식은 이 기발한 방법을 무용담이라도 하듯 기회만 되면 떠벌렸다.
잘 먹혀들었던 만큼 모방하는 사람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뭐 하나 유행이 되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는 게 이치 아니었던가. 같은 사례가 도처에서 기승을 부렸고, 9시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 사건은 ‘A동 세 모녀 사건’에 이어 또 한 번 국민의 공분을 샀다.
김정남 검사는 준식이 저지른 다수의 별개의 사건을(도박, 상습 절도와 음주운전, 공무집행 방해) 연좌제라도 되는 것 마냥 ‘A동 세 모녀 사건’에 병합시켜 가중 처벌했다.
은주는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살인도 초범이면 4년 선고를 받기 힘든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무거운 형량이라고 할 수 있다.
은주의 모친은 준식의 불찰이 딸 사건에 영향을 미친 것에 크게 분노했다.
이게 다 근본 없는 집안으로 시집을 가 생긴 일이라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고 영국에게 화를 내며 나무랐다.
영국은 따지고 보면 사돈의 사돈인데, 족보를 따지는 것은 좀 애매한 게 아닌가 물으려다가 관두었다.
법원 판결이 나던 날 영국의 장모 계남은 거듭되는 우환을 견디지 못하고 격분해서 날뛰다가 뒤로 쓰러졌다. 법원 대리석 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은 계남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른바 ‘중풍’의 범주에 들어가는 지주막하 출혈 판정을 받고 가뜩이나 궁핍해진 영국의 주머니를 더 가볍게 만들었다.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병실에 연명치료를 하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던 계남은 은주를 부르짖다가 한순간 숨을 거두었다.
재판이 진행되던 날. 연행되는 은주를 보던 영국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취재 기자들의 아우성 속에 큰아이, 작은 아이도 엄마를 부르며 신경질적으로 울음을 터트렸다.
영국은 더러운 기운을 감출 수 없었다. 뭔가 도움받을 것이 절실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때 '소주'를 마신다는 걸 떠올렸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