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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드라이버 4

by 마르코니

사랑이 싹트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에 비해 결혼은 비교적 신속했다고 볼 수 있겠다.

두 사람은 3개월 후 혼인 신고를 했다.

영국이 어떤 날 막연히 서로의 장래를 기약했고 예상치 못하게 은주는 그 말을 프로포즈로 받아들였다. 은주의 반응에 영국은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거나 거추장스럽게 해명하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결혼식은 금전적, 정신적 낭비에 불과했다. 피차 가족도 없는 처지에 인생에서 불필요한 절차였다.

어떤 일이든 질질 끄는 법을 몰랐던 두 사람은 말이 나오기 무섭게 살림을 합쳤고, 짐도 별로 옮길 게 없었다.

혼인 신고를 하던 날, 은주는 태경 제작소를 나와야 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여직원이 결혼을 하면 퇴직 절차를 밟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결혼식도 안 올린데', '어머, 망측해라' 등의 수근거림도 은주의 등을 떠밀었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두 사람은 알뜰살뜰 행복하게 잘 살아갔다. 영국이 택시 기사로 이직하여 살림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둘째 아이 출산과 새 아파트 입주가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어 영국은 이제 좀 살만해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국민의 평균으로, 그러니까 중산층 반열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는 시점이기도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다지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둘은, 작은 것에도 너무 행복했다.


은주는 저녁 준비를 마치고 작은 아이를 씻기다가 까무러칠 뻔했다.

까불고 뛰던 큰딸이 주방에서 팔팔 끓는 추어탕 국 냄비를 엎질러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은주는 큰아이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리며 다그쳤다. 그 사이 욕조에 있던 작은 아이가 욕조를 넘다가 바닥에 머리를 찍는 사고를 당했다.

거듭된 사고로 당황한 은주는 구급차를 부를 새도 없었다. 두 아이를 이고 지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귀찮음에 절어 있는 당직 의사는 아이의 상처를 보고 사무적인 말투로 경위를 물었다.

"엄마가 때렸어요!"

큰아이가 분한 듯 말허리를 잘랐다.

유아기는 어휘력이 풍부하지 못하고 공감력이 발달 되기 전이다.

큰아이는 자신이 꾸중을 들은 사실을 의사에게 이르는 말이었다.

은주는 경황이 없던지라 앞의 두 사람 말을 귀담아듣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어이없는 실수를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잘 보고 있어야 했는데."


큰아이의 근거 없는 주장을 젊고 치기 넘치는 의사 이동국은, 아동 학대로 간주했다. 그도 그랬던 것이 의사는 대학생 시절 각종 데모와 사회 활동의 최선봉 주자였다.

설익은 의협심과 욱하는 성질이 농성에 딱 맞아떨어졌다.

그는 때때로 체포되기도 했다.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도망갈 시점에 혼자 남아서 패악질을 부리다 체포된 것이다.

그래도 신분이 농간을 부려 의대생 학생증을 보고는 경찰관들이 ‘공부나 열심히 해’라며 인심 쓰듯 풀어주어 전과 기록은 깨끗했다,

어쨌든 다수의 체포 이력은 동국에게 훈장이 되었다.

그는 무용담 삼아 시쳇말로 '빨간 줄' 몇 개가 그어져 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아이돌이 없던 시절, 동국은 대범함과 훤칠한 외모로 또래들의 선망을 한몸에 받았다.

실제 전과가 있던 다른 동기들은 취업이 물 건너간 셈이었다.

반면 동국은 찬란한 의대생이라는 직함과 타고난 두뇌로 의사 면허는 겨우 취득할 수 있었다.

동국의 기대와 달리 의사 생활은 너무 고단했다. 의료계에 환멸을 느낀 동국은 정치 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은주 사건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그는 당장 경찰을 불러 감빵에 처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도 아주 길게 말이다.

무능한 관료주의 사회였던 당시. 의사라는 권위는 꽤 쓸만했고, 경찰관들에게 고함치듯 은주의 만행을 설파했다. 그리고 자신의 부친이 당신네들 서장님과 아주 원만한 협력관계를 가지고 계시다고 덧붙였다.

은주는 사고였다고 결백을 주장했지만, 일거에 묵살 당했다.

경찰은 동국에게 경례까지 붙이며 은주를 연행해 갔다.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은주는 곧장 유치장 신세가 되었고, 경찰서 출입 기자에게 덜미를 잡혔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로 기획되었다.

이른바 'A동 세 모녀 사건'.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 악의적으로 편집된 큰아이의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눈 부분만 모자이크 처리되어 발언한다(목소리가 익살스럽게 변조되어서).

"엄마 가요. 막 화내고요. 먹을 것도 안 주고요('저녁 먹기 전에 간식은 안 된단다'라는 말은 빼고). 엉덩이도 때렸어요. …잉잉잉."

전체 인터뷰 내용은 1부터 10까지 들으면 전혀 상반된 내용이고, 정당한 훈육이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황색 저널리즘은 대중들의 원시본능을 자극했다. 잊힐 만하면 사건의 또 다른 후문이라며 페이크 뉴스를 퍼트려 대중의 관성을 더 해갔다.

무료한 대중들에게 그런 꼬십거리는 달고 고소한 안줏거리였다. '세상에 왜 이렇게 나쁜 놈들이 많은 거야' 라며 마음대로 씹고 뜯으며 즐겼다,

그 누구도 진실을 알려고 들지 않았다.

그렇게 프리미엄이 붙을 대로 붙은 사건은 정치권에서도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국회는 앞다투어 법안을 통과시켜 '저놈 죽여라'식의 '민지법'이 제정되었다. 아동학대 가해자는 엄중히 처벌하는 법안이다.

사건은 여야당 모두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던 스타 검사 김정남에게 배정되었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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